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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PA Sep 18. 2024

손 없는 날과 떡볶이 황금레시피

[노파에세이] 고우영의 삼국지와 축생 지옥



추석 연휴 동안 고우영의 <삼국지>를 8권까지 읽었다. 두 권 더 남았는데, 관우가 죽는 게 싫으므로 여기까지만 볼 생각이다.


내 삼국지에서 관우는 영원히 살아있어야 한다.


삼국지의 교훈은 ‘다 죽는다’인데, 곱게 죽은 자들, 그러니깐 관우처럼 목이 잘린 이들은 차라리 복이 많다고 하겠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코와 귀와 팔다리가 뎅겅뎅겅 잘려나간다.


심지어 유비한테 먹일 게 없다고 자기 부인 엉덩이 살을 잘라다 바치는 망할놈의 이야기도 나온다.


사흘 내내 그런 이야기를 보고 있자면, 뇌가 무뎌져서 '잘려도 별로 안 아픈 거 아냐?'하는 바보 같은 의문을 품게 된다.


그리고 나의 미친 인생은 내 의문을 바로 해소시켜줬다.


오후에 떡볶이를 해 먹으려고 양파를 톡톡톡톡 썰다가 손가락을 조금 잘랐는데, 잘리는 순간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사진 속 칼 앞에 놓인 흰 조각이 바로 잘린 내 손가락 살이다. 저울로 달아지지도 않는 아주 적은 양의 살이었다.


그러나 나는 통증으로 눈이 훼까닥 뒤집혔고, 얼굴엔 핏기가 사라졌으며, 손끝으론 얼마나 피가 뽈뽈뽈 샘솟던지, 화장실로 뛰어가 손에 집히는 대로 지혈을 해야 했다. 그래서 치실로 묶어놓은 것이다.


지혈한 지 네 시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도 피가 나온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피가 나와서 비닐로 묶어 버렸다.

이제 글을 끝까지 쓸 수 있게 되었다.


*

살이 요만큼 잘려나가도 이 난리가 나는데 사람 팔다리를 아무렇지 않게 자르다니...


특히 동탁이란 놈은 심심하다고 포로들의 발목을 한 자루씩 자르고 끓인 물에 삶아 죽인, 악질 중의 악질이다.


내가 믿는 종교에서는 이런 업보를 짓는 인간들이 가는 지옥이 있는데, 나는 그중 축생 지옥을 좋아하여 앞으로 베이컨 포장지를 뜯을 때마다 '동탁이로구나, 이것은 너의 뱃살이로구나' 하며 먹을 것 같다.

 


*

손가락 살을 조금 바쳐서 만든 떡볶이는 무척 맛있었다. 나는 정통 떡볶이보다 야채와 만두를 잔뜩 넣은, 전골 느낌의 떡볶이를 좋아하는데, 맛의 핵심은 바로, 굴 소스 두 스푼에 있다.


사람들은 흔히 떡볶이의 맛이 고추장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집에서 떡볶이를 만들면 실패하는 이유다.


굴소스나 간장을 넣지 않으면 떡볶이의 매운맛은 겉돈다.


간장베이스의 소스(쯔유 등등)를 한 스푼 넣어주거나 다시다를 조금 추가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당연히 설탕도 한 숟갈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그래, 이맛이야” 소리가 절로 나온다.


역시 명절의 마지막 날은 떡볶이로 해장을 해주는 것이 위장에 대한 예의다.

올해도 완벽한 추석이었다.


***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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