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에세이]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에 부쳐
한강 소설을 처음 접한 것은 2016년 그가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직후입니다. 러시아 문학을 공부한 저는 그 전까지 한국 소설을 많이 읽지 못했습니다. 러시아 문학은 너무 많고 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국 작가가 그리 큰상을 받았다길래 비좁은 원룸에 더는 책을 들이지 않겠다는 결심을 깨고 냉큼 사보았습니다. 이것이 큰상의 존재 이유입니다. 문외한에게도 한 세계로 들어가는 계기를 마련해 줍니다.
그리고 저는 잔인하고 충격적인 이 소설의 조사 하나까지 사랑하게 됐습니다. 지금껏 이 책만큼 저를 열렬하게 흔든 책은 <소년이 온다> 밖에 없습니다.
다음 해 겨울, 저는 일하던 방송을 그만두고 결혼생활도 그만뒀습니다. 그리고 32년 생애 처음으로 온전히 혼자가 되어 차가운 골방에 누워 있다가 문득 한강 책을 읽어야겠다며 도서관에 가서 빌릴 수 있는 한도만큼 전부 빌려왔습니다.
책을 이렇게 폭식해서 읽으면 모든 내용이 여기저기 엉겨 붙어 정확하지 않은 인상을 남기게 되므로 좋은 독서법이 아닙니다.
그래도 그 시기에는 그게 필요했습니다. 4.5평 육면체 골방에 처박혀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미친 듯이 읽다 보면 사는 게 조금은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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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읽었던 것 중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혈우병에 걸린 남자를 사랑하게 된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작은 흠집에도 삶이 끝나는 몸을 가진 사람의 주변에서는 모든 것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토록 섬세하고 연약하고 선량한 인간 유형은 상상해 본 적도 없기에 저는 한 자 한 자 신중하게 읽어내려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그 소설에 고래의 혈우병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던 것 같습니다. 저도 고래를 무척 좋아합니다. 너무 좋아해서 문신으로 새길만큼.
그런데 고래에게 혈우병 있었던가? 궁금해져서 한국해양과학기술원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혹시 고래에게도 혈우병이 있나요?”
그 질문은 그곳에 일하는 여러 사람을 당황하게 했고, 여러 곳으로 전화를 돌려줬으며, 마지막에 고래 전문가에게 연결된 저는 마침내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아직까지 그런 사례가 보고된 적 없습니다.”
그런데 이 연구원도 이날 기술원 전체를 귀찮게 한 여자의 정체가 궁금했나 봅니다. 어디서 전화를 주셨냐고 물었습니다. 이젠 제가 곤란해졌습니다. 그냥 개인이라고 얼버무렸더니 연구원은 제가 그랬던 것처럼 집요해졌습니다.
“혹시 어떤 직종에 계시죠? 기록을 해야 해서요”
앞서 말했듯 저는 당시 방송작가도 아니었고, 가정주부도 아니었고, 구직을 하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열흘째 집에서 한강 책만 읽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상태를 뜻하는 단어가 하나 있기는 했습니다.
“백수입니다.”
연구원은 당황함을 숨기지 못했고 전화는 어색하게 끊겼는데, 그는 아마 백수한테 전 기술원이 농락당했다고 분노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백수도 국민이니 어쩔 수 없다, 참아라.
그래서 한강 소설을 생각하면 혈우병 남자와 혈우병에 걸리지 않는 고래와 백수 시절의 내가 떠오릅니다. 지금 찾아보니 소설의 제목은 <바람이 분다, 가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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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병 남자처럼, 한강 소설은 연약한 사람들을 향합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그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죽거나 망가지는 사람의 고통을, 깃털 하나만큼의 무게도 놓치지 않고 낱낱이 보여줍니다.
마치 마음을 바닥까지 긁어내고 통째로 쥐어짜는 듯합니다. 그래서 읽는 내내 서럽고 분하고 고통스러운데, 그 고통이 환기시키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높은 것, 고상한 것, 존엄한 것, 인간성.
제 안에 그런 숭고한 게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소설은 도스토옙스키 소설과 함께 한강의 소설이 유일합니다.
그리고 한강이 도스토옙스키보다 잘 씁니다. 그건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한강은 영혼을 세공하듯 조사 하나까지 통제하는 글을 쓰지만, 도스토옙스키는 퇴고도 안 합니다.
신형철 평론가가 괜히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닙니다.
“언젠가부터 그의 새 소설 앞에서는 숙연한 마음이 된다. 누구나 노력이라는 것을 하고 작가들도 물론 그렇다. 그러나 한강은 매번 사력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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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종종 <채식주의자>를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실은 이 역시 그 이상의 층위, 즉 인간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딸을 억압하고 아내를 착취하는 것으로 유지되는 질서, 그 폭력의 사슬을 끊고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영혜는 폭력의 사슬 가장 말단에 있는, 동물을 착취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작은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영혜는 정신병원에 갇히고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받습니다. 마치 1980년에 광주와 1947년 제주도에서 단지 인간으로 살고 싶었던 사람들을 때리고 죽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5월 27일 새벽 군인들이 돌아와 모두를 죽일 것임을 알면서 광주의 도청에 남았던 한 시민군, 섬세한 성격의 야학 교사였던 스물여섯 살 청년의 마지막 일기를 읽었다. 기도의 형식을 하고 있는 그 일기의 앞부분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토록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 순간 내가 쓰려는 소설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어떻게든 폭력에서 존엄으로, 그 절벽들 사이로 난 허공의 길을 기어서 나아가는 일만이 남아 있다는 것을. (2017년 경향신문 인터뷰 중)
한강 작가의 수상으로 이제 온 세상 사람들이 5.18 광주 항쟁의 이야기를 하게 되어 기쁩니다. 조금 더 지나면 4.3 항쟁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게 이번 노벨상 수상의 가장 큰 의미인 것 같습니다. 가장 연약하고 억압받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 세계 사람들이 두고두고 말하게 만드는 것.
오직 문학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PS.
노벨상 상금은 비과세라고 합니다. 더더욱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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