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를 봤더니 일산에서도 한강을 갈 수 있길래, 그런데 그 한강엔 심지어 독도가 있길래, 서울 태생인 나는 고향의 생명줄에 강한 끌림을 느껴 자전거를 타고 한강으로 떠났다.
한강은 끝내 볼 수 없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자전거도로에서는 한강을 볼 수 없도록 둔덕을 높게 쌓아 놨다. 멀리 북한이 보여서 그런가? 그래도 길은 환상적이었다.
안장 위 스카이콩콩 따위는 없었고, 어느 때는 대파밭이 나왔다가 어느 때는 벚나무길이 펼쳐져서 영원히 길 위를 달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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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좋은 길이다 보니 프로들도 많았다. 자전거 계에서 프로라 하면, 바구니 따윈 달리지 않은 자전거를 타고, 피부에 색을 칠한 것이나 다를 바 없는 탄력 좋은 옷을 입은 사람들을 말한다.
걸어 다닐 땐 그들이 워낙 빠르게 지나가서 옷이 그렇게 도발적인 줄 몰랐는데, 속도가 엇비슷한 자전거 위에 있으니 땀에 젖은 구체적인 실루엣이 계속 눈앞에 둥실둥실 떠다녀 절로 시선이 떨궈졌다. 이 맑고 건전한 날, 중년 남자의 땀 찬 엉덩이를 보면 안 되는 거니깐.
역시 프로는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속도를 위해 남의 시선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
남의 시선을 엄청나게 신경 쓰는 나는 검은 바지 밑에 엉덩이를 최대한 감추고 중국산 전기 자전거를 타고 느릿느릿 돌아다녔다.
그 도로에서 바구니가 달린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나는 그 바구니에 포도를 한 상자 실어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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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은 못 봤지만 땀 찬 엉덩이를 봤고, 세일하는 칠레산 청포도를 1.5kg이나 샀고, 가방에선 벚꽃 길을 달릴 때 들어간 게 분명한 벚꽃 잎이 한 장 나왔다.
이래서 자전거엔 바구니가 있어야 한다.
포도를 먹으며 이게 몇 달 전만 해도 칠레의 대평원 위에서 해를 받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칠레의 물과 바람과 흙을 먹는 중이지. 와작와작.
허튼 생각을 하다보니 왜 갑자기 한강이 보고 싶었는지 알게 됐다.
한강 작가랑 이름이 같잖아!
23일에 나올 그의 신작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중이다.
완벽한 4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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