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륜산 등반, 국보 마애여래좌상, 천백 살 나무, 개
20250529 해남 25일 차(마지막 날)
#1.
두륜봉을 갔다.
대흥사 스님들은 위 사진 석탑을 기준으로 오른쪽에 솟아있는 작은 봉우리를 부처님 머리로 보고 왼쪽 두 개의 큰 봉우리를 부처님의 오른손과 왼손으로 보아 비로자나불이 지권인 수인을 하고 누워있는 형상으로 본다.
암튼 그런 게 있는데, 역시 머리 쪽을 가야 할 것 같아서 두륜봉을 오르기로 했다.
가장 높은 봉우리는 왼쪽의 가련봉(오른손 봉우리)인데, 그걸 제일 잘 볼 수 있는 곳 역시 오른쪽의 두륜봉이다.
*
두륜산은 목적지만 보고 죽어라 가는 산이 아니라 중간에 여기저기 들러서 볼 데가 많아 다른 산보다 훨씬 오르는 맛이 있다.
나는 서산대사를 모신 표충사에서 시작해(대흥사는 서산대사의 의발을 모신 곳), 우리나라 차의 신이라는 초의선사의 일지암을 들렀다가, 국보 마애여래좌상을 모신 북미륵암을 들른 후 수령이 천백 년이 넘는다는 천년수를 보고 난 후 두륜봉에 오르는 코스를 택했다.
봉우리 하나를 오르는데 차의 성지와 천백 년 묵은 나무, 국보 부처님까지 볼 수 있다니, 가성비가 국보급인 산이다.
아침 7시에 숙소를 나왔다가 이것저것 다 참견하고 사진 찍고 중간에 개랑 놀고 나무 밑에서 점심도 먹고 내려왔더니 오후 3시 반이었다.
표충사를 기점으로 했을 때 이게 보통 3시간 반 걸리는 코스라고 하는데, 나는 이 엄청난 것들을 3시간 반 만에 보고 오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은 이 길을 7시간을 둘러보는 내가 이해되지 않겠지만.
#2.
두륜봉.
올라가서 쪼금 울었다. 그 감동은 절대 카메라에 다 담기지 않는다. 역시 케이블카 따윈 나를 만족시킬 수 없어! (그러나 두륜산 케이블카는 정말 타볼 만하다. 산을 그 정도로 누릴 수 있는 경험도 드물다.)
올라갈 땐 만만했는데, 내려오는 길은 4족 보행을 해야 했다. 디뎌야 할 바위들이 너무 커서 줄 잡고 내려오는 구간이 많다. 스틱이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없어도 앞발을 쓰면 된다.
#3.
천년수.
아아. 나는 나무가 너무 좋고, 이 나무는 내가 본 가장 오래된 나무고, 아니, 내가 본 생명체 중 가장 오래 산 생명체였으므로 나는 그저 숨이 멎는 기분이었다. .
천백 년을 살다니. 이 나무는 시간을 어떻게 감각하할까? 나무 옆에서 20분 정도 점심을 먹었는데, 나무에게 그 20분은 찰나나 다름없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무 옆에서 잠시 머물다 갔을까?
나무는 너무 거대했고, 너무 오래 사는 중이었다. 천백 년이라니. 내가 13번은 환생할 시간이다.
#4.
가는 길에 개를 사귀었다. 절에서 키우는 개 같았다. 졸졸 쫓아오면서도 경계심이 많아 만지는 건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경계하는 주제에 주는 빵은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었다.
같이 빵 세 개를 나눠 먹고, 두 시간 정도 함께 산을 올랐는데, 길이 너무 험해지면서 더는 나를 쫓아오지 못했다.
나는 개를 뒤로하고 혼자 나아갔다. 옆에서 토독토독 걷는 발걸음 소리가 귀여웠는데 잘 내려갔는지 궁금했다.
하산하고 절 입구에서 어슬렁 거리는 걸 봤다. 또 다시 쫓아오기 시작했다. 귀신 같은 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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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 25일 차
숙소 45,000
김밥, 초코바 7,600
대추차 6,500
오리탕 15,000
오미자차 6,000
샌드위치 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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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25일 차
다리 들어 올리기 108번
걷기 34,000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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