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평생 독서법>
2025.09.13 9일 차
# 종일 첫 문장 피드백하는 날
한 달, 두 달씩 떠돌아다닐 때마다 가장 먼저 눈여겨 보는 것이 숙소 의자다. 과연 내가 이 의자에 10시간 11시간씩 앉아 있을 수 있는가.
선영 작가님이 말하길 우리 숙소 의자는 냉면집 의자란다. 30분 앉아 있으면 통증이 시작되는 의자. 실로 그랬다. 아무리 집에서 엉덩이 방석과 허리 방석을 바리바리 싸들고 와도 의자가 구리면 다 부질없다.
이런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선영 작가님이 느닷없이 의자를 선물로 보내줬고, 이토록 지극한 다정함을 경험해본 적 없는 나로서는 깜짝 놀라 취소 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다정한 사람이 준 의자를 이곳에 두고 갈 수 없어!
그 다정한 사람이 이번에 여덟 번째 신작을 냈다. 아직 책 읽는 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최고의 독서 안내서가 될 것 같으니 많이 많이 사주십셔!!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7207617
작가님의 선물을 거절한 대가로 열 명의 글에 피드백을 쓰는데 금요일 2시간, 토요일 11시간, 총 13시간이 걸렸다. 당연히 내 허리는 작살났다. 이번 주에는 부디 11시간 안에 끊을 수 있기를.
허리가 아픈 대신 쓰는 내내 오직 풀 소리와 바람 소리, 그리고 귀뚜라미 소리만을 들을 수 있었다. 자동차 소음, 사람 소음이 없는 공간에 있다는 게 어떤 것인지 난생 처음 경험했다. 황홀했다.
2025.09.14 10일 차
# 귀촌 팁-폐가 고치는 돈이 신축보다 더 든다
남편은 카페를 운영하고 아내는 해남 군청 공무원으로 취직한, 성공적인 귀촌인 부부를 만났다.
1층은 카페, 2층과 3층은 집이었는데, 약 30평 건평에 건물을 짓는데 4억 이상이 들었다고 했다. 땅값은 7천. 역시, 성공적인 귀촌인이 되기 위해서는 이미 성공한 도시인이 돼야 하는 것이다.
아내는 건축 회사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고, 현재는 해남군의 건축 부서 공무원인데도 건물을 짓는 동안 시공사를 3번을 바꿨다고 했다.
그 말인즉, 아무것도 모르는 나같은 사람이 건물을 지으면 시공사에 야무지게 발라 먹힌다는 뜻이다.
그러나 폐가를 리모델링하는 것은 돈이 더 든다고 했다. 철거비용까지 추가되므로.
시골 가서 폐가 고쳐 쓰면 된다는 사람 누굽니까? 아파트 보일러에 익숙해진 유약한 몸으로 단열 하나도 안 된 흙벽과 슬레이트 지붕 집에서 어떻게 겨울 나시려고? 응? 철거 안 하고 어떻게 고치시려고?
전세는 안 나오고 월세는 비싸다니, 집에 대해선 그만 알아보기로 했다.
2025.09.15 11일 차
# 내가 찌개 끓여줄게요, 같이 가요.
꿈에 잘 생긴 남자가 나와서 찌개를 끓여줄 테니 같이 가자고 했다. 하필 알람을 4시에 맞춰놔서 그 아름다운 순간에 깨고 말았다.
간만에 일정이 없는 날이라 달마산을 가려고 알람을 일찍 맞춘 건데, 잠깐 눈만 감는 사이 한 시간이 흘러버렸다. 하루 한 대 있는 달마산 행 버스를 그렇게 보내버렸다. 이것은 시내로 나가서 잘 생긴 남자를 만나라는 계시인 건가?
그러나 아무 데도 가지 못했다. 며칠 무리했던 모양인지 가벼운 몸살이 몰려와서 내내 잠이 쏟아져서 조금 쓰다 자고, 조금 쓰다 잤더니 하루가 다 갔다.
혹시 잘 생긴 이가 연밭에 있을까 싶어 저녁에 연밭 둘레길을 걸어보았지만 염병할 모기와 어둠밖에 없었다.
# 시골의 어둠
시골 어둠에 잠기면 심해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우주를 걷는 것 같기도 하다. 정말 먹물을 풀어놓은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공간과 시간에 관한 감각까지 모두 잊는다. 아무리 걸어도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는 느낌이다.
그것은 시간 감각을 잃어서 그렇다. 실제로는 몇 걸음 걷지도 않았고 어두워서 속도도 못 내니 정말 제자리걸음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는 이 상황이 이성적으로 이해될 리가 없다. 저 앞에 숙소 불빛이 보이는데 아무리 걸어도 닿지를 않는다고, 내가 지금 뭔가에 홀린 게 틀림없다며 그 자리를 뱅뱅 돈다. 그러다가 지도를 켜서 겨우 방향을 잡고 숙소로 가면 마치 다른 차원에 있다가 온 느낌이다. 기이하고 상서롭다.
그러나 남들 보기에는 썩 좋지 않을 것이다. 내가 플래시도 켜지 않고 어둠 속에서 뱅뱅 도는 것을 아저씨 한 분이 보시고 “밤에 산책을 하시던데”하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 그거, 깜깜한 데 있으면 우주 속을 걷는 것 같고, 시공간 감각도 잃어서 재밌어요"라고 답했더니 역시 표정이 좋지 않다. 나도 모두에게 이해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골에 가면 꼭 밤에 산책해보십쇼.
내 두려움의 근원도 만나고, 우주도 만나고, 심해도 만나고. 도시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아찔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밤의 소리. 안 보이겠지만 한 바퀴 빙 돌면서 촬영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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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4006089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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