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산도 넘었다 (버섯농장, 명량 축제, 달마산)
9/18 목
버섯 농장에 갔다. 여든이 다 되어가는 노인이 12만 그루의 버섯 나무를 관리하고 있었다. 비스듬히 서로를 향해 기대어 있는 나무가 끝도 없이 펼쳐진 풍경이 장관이었다.
노인은 우리를 보자마자 이 농장을 관리하며 매일 만오천에서 2만 보를 걷는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연 소득이 수억이라는 노인이 첫 번째로 자랑하고 싶던 것은 청남방을 청바지 안에 넣어 입을 정도로 군살 없는 몸인 듯 했다.
그 연세엔 군살이 있든 없든 보는 사람으로선 별 의미가 없으나 노인에게는 의미가 큰가 보다.
노인은 환갑이 넘은 아저씨에게 “이봐 젊은 청년!”이라고 불렀고, 마흔인 내게는 이렇게 젊고 예쁜 아가씨가 이런 곳엔 어쩐 일이냐고 했다. 이것이 해남에사는 장점이다. 환갑도 마흔도 젊은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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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노지에서 버섯을 재배해 온 노인은 버섯 포자 깨운다고 나무 두드리는 거 다 필요없다고 했고, 그저 하나님이 주시는 해와 물로만 키워도 충분하다고 하셨다. 심지어 농장에 큰 스피커를 설치해 버섯들에게 찬송가를 틀어주셨다.
갈 땐 성령이 충만한 버섯 가루를 선물로 받았다. 계란 후라이에도, 샐러드드레싱에도 뿌려 먹는 중이다. 성령은 맛있다.
9/19 금
명량 축제 1일.
묵을 팔았다. 묵무침, 묵제육, 묵보쌈. 도토리전, 묵밥, 묵국수.. 묵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음식은 다 판 것 같았다. 묵은 숙소 사장님의 누님이 직접 쑨 것이다.
이 집도 말 못 할 사정이 있는지 사장님의 부인은 거의 얼굴을 비추지 않고, 언제나 사장님의 누님이 함께 한다. 나로선 더 좋다.
누님은 양평에서 해장국 가게를 오래 해서 뭐든 쓱쓱 비벼도 음식 맛이 기가 막히고 뭣보다 시골스러운 순박함이 있다. 시골에 몇 달 있다 보니, 여자는 시골 여자가 좋고 남자는 도시 남자가 좋다. 그냥 그렇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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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을 직접 쑤려면 도토리 가루를 갠 물을 국자로 일정하게 저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아저씨 한 분이 30분 정도 젓고는 허리가 휘는 것 같다고 했다. 그걸 누님은 거의 반평생을 저었다. 몸도 나보다 작다. 허리가 얼마나 아플까.
그렇게 피 땀 눈물로 만든 도토리 묵과 공장에서 기계가 찍어낸 묵과의 맛의 차이를 애석하게도 나는 잘 모른다. 내가 뭘 알겠나. 콩이나 삶아 먹는 인간이. 아저씨들은 확실히 차이가 난다고 했다. 손님들도 정말 맛있다고 했다. 틈나는 대로 집어먹었더니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것이 맛있는 묵의 기준이라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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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저씨들은 정말 일을 잘한다. 그것은 우리뿐만 아니라 사장과 누님이 몇 번씩 이야기한 바다.
우리는 현장에 투입되자마자 요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알아서 주방으로,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알아서 홀로 나갔고, 주방인력이 불 앞에서 끝없이 전을 굽고 제육을 볶는 동안 홀 인력은 분주하게 간판을 꾸미고 호객을 하고 손님을 맞고 주문을 받고 상을 차리고 치웠다.
둘은 식당 경험이 있고 다른 둘은 영업 경험이 있고, 나는 그냥 연기를 잘한다. 오늘은 친절한 직원의 탈을 쓰고 방긋방긋 웃어가며 신속하게 민원을 처리해줬다.
새마을 총회 노인들 눈에 띄어 결혼은 했냐, 해남 남자를 만나야 하지 않겠냐 등의 말을 들을 때도 그러려고 왔나 봐요~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이제 해남은 끝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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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나의 결혼 여부에 집요하게 관심을 가지는데, 새마을 총회 노인들의 집요함은 차원이 달랐다. 그러나 이들이 정말 내 결혼에 정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책과 영화로 다른 세계를 접하는 일이 없다 보니 그저 결혼해서 애 낳고 서로를 증오하면서도 끝내 붙어사는 것 이외의 삶은 상상하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그들에겐 마흔의 여자가 글을 쓰겠다고 땅끝까지 내려와 혼자 사는 것은 너무나 이상한 일이어서 누구라도 붙여놓아 자신들에게 익숙한 삶의 모습으로 규격화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 시도들을 숱하게 겪을 걸 생각하니 벌써 질린다.
게다가 내가 이곳에서 만난 두 명의 현지인 남자 중 한 명은 매일 소주를 두 병 이상씩 마시고, 다른 한 명은 하도 담배를 피워서 입술이 이미 보라색으로 변해 있었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보지 못했다.
묵은 12시간을 팔았다.
9/20 토
종일 첫 문장 피드백을 썼다. 어제 육체적으로 학대당했다면 오늘은 정신적으로 학대당하는 기분이었다. 순서가 바뀌었다면 오히려 시너지 효과가 났을 텐데,.어제의 여파로 쏟아지는 잠을 떨쳐가며 글을 읽고 쓰느라 정말 힘들었다.
9/21 일
오늘 다시 묵을 팔았고, 다시 육체적으로 학대당했다. 그래, 이게 순서가 맞다. 홀을 부지런히 움직이니 어제 받은 정신적 고통이 모두 털어지는 기분이었다.
나를 반가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고통받으며, 간간이 주방에서 내주는 음식들과 손님들이 남긴 음식을 주워 먹으며, 역시, 정신노동보단 육체노동이 쉽다는 생각을 했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9/22 월
4시 반 기상에 성공하여 도솔암에 갔다
해남에 온 지 17일 짼 데 여태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지 못했다. 버스 기사님도, 도솔암에서 공사 중인 아저씨들도, 조심, 또 조심히 가라며 무운을 빌어줬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 미황산 가려고 재를 넘던 사람이 조난 당해 헬기에 실려 갔기 때문이다. 산은 정말 가팔랐고, 데크고 계단이고 문명의 손길이 일절 닿지 않은 야생의 모습이라 몇몇 구간에서는 정말 손에 식은땀이 났다.
그러나 흙도 많고 바람도 많아 걷는 내내 시원하고 무릎도 별로 아프지 않았다. 위험하지만 지리산의 무한한 돌계단보단 백 배는 재밌는 산이다.
이것저것 구경하며 가는 통에 도솔암 밑단에서 정상을 찍고 미황사까지 넘어 가는데 6시간이나 걸렸다. 그 동안 사람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오늘 달마산은 전부 내 것이었다. 황홀한 분방함! 그래, 이것 때문에 해남에서 살고 싶었던 거였지!
하산하고 잠깐 들른 마트에서 한 장년 남성이 날 보더니 큰 목소리로 “워매, 옷 입은 것 좀 보소! 혼자 산 다니는 것이오? 멋져부러잉~” 이 ㅈㄹ을 하셔서 나는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했다.
아저씨들 놀랄까 봐 타이즈 위에 바람막이를 둘렀건만 그래도 이곳에서 타이즈는 여전히 이른 패션인가보다.
오늘도 재밌었다.
사실 귀촌 생각만 안 하면, 해남에서 지내는 날들이 정말 즐겁다. 아무래도 나는 사람이 그리웠나 보다. 이 정도의 거리감과 이 정도의 관계, 정말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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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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