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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에세이] 사는 곳에 정 붙이는 법

고양누리길

by NOPA


내 고향 일산에 정을 붙이기 위해 새로운 취미를 들였다. 바로, 고양누리길 걷기.



고양시에서 발굴한 걷기 좋은 길 14개 코스 이름이 '고양누리길'인데, 함께 걷는 프로그램도 있어서 신청했다. 우루루 몰려다니는 거 딱 싫어하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이런 게 늙는 건가 보다.


아침부터 원당역으로 나가보니 중장년 여성 열댓분 정도 계셨고 그 중엔 초등학생 딸과 온 엄마와 성인 아들과 함께 온 엄마도 있었다. 대단한 아들이었다.


두 분의 해설사가 동행하는데, 생각보다 산길이 괜찮고 해설사의 설명도 좋았다. 무엇보다 음식점이 나올 때마다 이 집 맛집이라고 아낌없이 정보를 털어놓는 어머니들이 계셔서 좋았다. 중장년 여성들이 식당에 대해 하는 말은 흘려들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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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간식 시간도 있는데(각자 싸와야 함), 같이 온 사람들은 같이 먹었고, 혼자 온 나는 혼자 먹었다. 다른 분들과 어울려 먹던 아주머니가 내가 측은해 보였는지 과일이 담긴 타파통을 보여주며 몇 개 집어먹으라고 했다.


감을 한 조각 집고 바나나를 하나 드렸다. 그랬더니 너무 조금 먹는다며 다시 타파통을 들어 보이시길래 감 한 조각과 포도 한 알을 더 집고 내 초콜릿 두 개를 드렸다.


개인주의자가 불교를 믿으면 이렇게 된다. 먼저 먹으라고는 못 하지만 누가 뭘 주면 반드시 내 것을 내놓는다. 남의 것 처먹기만 하면 업보 쌓인다고 믿어서 그렇다.


순간, 너무 계산적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남의 것 얻어먹기만 하는 것보다는 나으니 이 정도 인성에서 만족하기로 한다.


그 와중에 어떤 여성은 가방에서 중국 술을 꺼내어 나눠먹자고 하셨다. 오전 11시에 빼갈이라니, 대단한 한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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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일산에 정 못 붙인 사람, 심심한데 혼자 다니는 것은 싫은 사람은 여기서 신청해서 같이 가면 된다.

https://nuri.goyang.go.kr/with/list3.do


보통 세 시간 정도 걷는데, 간식 시간도 있고 해설사분들이 중간중간 명소 설명하는 시간도 있어서 그리 힘들지 않다. 또 말하기 싫으면 혼자 묵묵히 걸어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자유로운 분위기다.


그러나 사람 좋아하는 사람들은 프로그램이 끝나자마자 바로 자기들끼리 카페에 가서 2차를 하고 다음 등산 계획도 세우더라. 역시 한 번 인싸는 중년이 되어도 인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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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인의 누나가 마두역에서 쭈꾸미 집을 한다고 해서 해산하자마자 쭈꾸미집으로 향했다. 한 그릇 팔아주려 간 건데, 너무 맛있어서 팔아준 게 아니라 그냥 맛집 탐방한 사람이 됐다.


직접 아는 분이 아니라 정체를 숨기고 있다가 계산을 하면서 "누구누구 누나시죠?"하고 말을 건넸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여느 자영업자처럼 지친 얼굴로 있던 분이 순식간에 환하게 빛을 뿜어냈다.


누군가와 알게 되는 순간, 방금 전까지 회색이었던 사람이 한순간에 생기로 찬연하게 빛나는 게 참 신기했다. 모르는 사람에서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은 그런 것인가 보다.


마두역 산야 쭈꾸미.

불맛과 탱글탱글한 식감이 살아있는 쭈꾸미를 맛 볼 수 있는 곳! 일산 호수공원 쪽 놀러오시는 분들은 꼭 맛보십쇼.

https://naver.me/GmbgFpvA


오늘도 즐거웠다:)

희릉과 허수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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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4059441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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