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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la Dec 17. 2015

내 생애 가장 극적인 여행

캐나다 Highway 1 위의 다섯 여자들


#17 내 생애 가장 극적인 여행:
캐나다 Highway 1 위의 다섯 여자들



연료 지침은 이미 0보다 아래 지점을 향하고...



연료 부족 경고등이 켜진 지 10분째, 주유소는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광대한 캐나다 땅 동쪽 끝과 서쪽 끝을 잇는 굵고도 깊은 한 획, Highway 1 위를 우리는 계속 달리고 있다. 눈 앞엔 끝없는 첩첩산중, 해는 속절없이 떨어지고 도로변에 가로등 하나 없으니 말 그대로 먹물처럼 까만 밤이다. 운수 좋게 이어졌던 여행의 끝에는 예정된 비극이 도사리고 있는 것일까. 우리 다섯은 제각기 마음을 졸였다.


이틀 전, 나는 밴쿠버로 가는 페리 선실에 앉아있었다. 예정보다 30분 늦게 출발한 탓에 배가 연착될 것임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약속 시간에 늦을까 나는 초조했다. 이메일과 메신저로만 연락했을 뿐 실제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이인 여자 다섯 명, 우린 그날 저녁 7시에 만나기로 약속했었다. 


애초 오랜 친구와 함께 가기로 한 캐나다 여행이었지만, 친구는 예상치 못한 임신으로 휴가를 취소해야 했다. 부랴부랴 동행을 구해 봐도 나와 꼭 같은 일정의 여행자는 없었다. 절박했다. 여정 중 이틀은 렌터카를 이용한 로드 트립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이것만큼은 절대로 혼자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왜냐고? 장롱 면허 9년 차, 실제 운전 경험 전무. 이런 내가 그것도 외국의 도로에서 운전을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내 또래 여자들이 흥미를 느낄만한 아이템이 필요했다. 궁리 끝에 설정한 이번 로드 트립의 셀링 포인트는 체리 농장 방문아이스와인 시음. 캐나다 유학생 커뮤니티 몇 군데에 모집 글을 올렸고, 다행히 운전자 두 명을 포함한 네 명의 동행을 예상보다 빨리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알게 된 그녀들과 곧 만날 참이었던 것이다.     


페리 옆자리의 남자가 집요하게 말을 걸며 귀찮게 굴고 있었다. 대화에는 관심 없고 오로지 약속 시간 걱정뿐인 내게 그는 솔깃한 제안을 해왔다. 페리에서 내리면 주차장에 자신의 차가 있는데, 약속 장소로 자신이 태워다 주면 7시까지 분명히 도착 가능하다는 것이다. 왠지 겁이 났지만 약속에 늦을까 두려웠던 나는 그 제안에 응하고 말았다. 차에 타자 남자는 슬며시 호구 조사를 시작한다. 남자 친구 있느냐, 나이는 몇 살이냐 따위를 묻더니 이따가 근처에서 기다리겠단다. 오늘 밤 맛집과 멋진 드라이브 코스로 안내한 후 숙소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것이다. 영혼 없는 대답을 하며 나는 그저 약속 장소에 빨리 도착하기만을 바랐다.     


드디어 동행하기로 한 네 명을 만났다. 처음 보는 사이지만 이틀간 알차고 재밌는 시간을 보내자는 마음이 통한 덕택인지 뜻이 잘 맞았다. 금세 필요한 준비를 다 마치고 창밖을 보니 그 남자는 여전히 거기 있었다. 이 불길한 예감을 자매들에게 털어놓아야만 했다. 그녀들은 마치 자기 일인 양 나를 걱정하며, 보이지 않게 뒷길로 빠져나가는 방법을 궁리하고 안전한 곳까지 함께 이동해 주었다. 믿을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을 만난 건 천운이었다.     






U PICK & WE PICK: 농장주 가족과 함께 수확하는 체리


이게 다 우리 것! :D



미리 정해둔 것도 아닌데, 우리 다섯 명은 일부러 짠 듯이 각자의 역할이 분명했다. 맏언니지만 권위 의식 없이 천진한 해영언니와 모두를 웃게 하는 유머 감각을 가진 선주언니가 번갈아 운전을 담당하고, 의리와 배짱이 넘치는 은정언니와 시원 솔직 담백한 성격의 빛나 두 사람은 카메라에 능숙해 포토그래퍼로 맹활약했다. 인간 내비게이션에 스케줄러를 맡은 나까지, 호흡이 척척 맞는 드림팀이었다.     


체리를 따기엔 아직 조금 이른 시기였지만, 운 좋게도 적당한 농장을 잘 만나 풍성한 체리 수확의 기쁨을 맛보았다. 즐거운 노동을 마친 후 체리 한 아름을 품고서 숙소로 가니 유럽, 북미 출신 대학생들만 득실득실하다. 아시아인 투숙객은 찾아보기 힘든 유스호스텔이었다. 뱃속의 소리에 정직했던 우린 아랑곳 않고 장 봐온 재료들로 일사불란하게 저녁 준비에 돌입했다. 


한국 여자 다섯이 분주하게 밥을 짓고 있는 광경에 그들의 호기심도 동했던 모양이다. 우리 식탁으로 독일 남자애 둘이 다가와 말을 걸었고, 고추장 한 입에 얼굴 벌개지면서도 꿋꿋이 쌈밥을 삼키며 관심을 보였다. 이스라엘에서 온 보아즈, 퀘벡에서 온 필립, 그렇게 하나 둘 안면을 트면서 가라오케 바에 함께 놀러 가 밤늦도록 파티를 즐겼다. 기대하지 않았던 이벤트였다. 


이튿날 들른 와이너리도 더할 나위 없이 멋졌다. 탁 트인 아름다운 풍광과 우아한 건축물들, 무엇보다도 끝내주는 와인 맛을 자랑했다. 그리스 신들의 음료, 꿀보다도 달콤하다는 암브로시아가 바로 이런 맛일까. 우린 그곳의 아이스와인을 나란히 한 병씩 사들고 밴쿠버로 가는 귀로에 올랐다. 행운이 연속됐던 행복한 여행에 취해, 주유를 충분히 한 건지 만 건지는 그때만 해도 안중에 없었다.



Dan's Karaoke Bar에서


와이너리 풍경






슬금슬금 내려온 연료 지침이 어느새 빨간 영역에 닿아 있었다. 주유소만 보이면 바로 들르자며 대수롭지 않은 척했지만 이내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캐나다의 고속도로는 역시나 한국과 달랐다. ‘하나쯤은 있을 거야’하는 긍정의 힘으로 달리고 또 달려도 보이는 건 곰 출몰 주의 표지판뿐, 민가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적막함만이 가득했다. 마침내 연료 지침은 0을 뚫고 내려가 바닥을 가리켰다. 연료 부족 경고등이 빨간빛을 발한다. 운전을 맡은 선주언니의 손과 발에 우리의 명운을 걸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선주야, 일단 기어를 중립에 놓고 달려보자. 그럼 조금이라도 기름 덜 먹지 않을까?”

 “알았어.”

 “선주 언니, 파이팅!”

우리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주유소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멀리 조그만 가게가 하나 보였다. 주유기가 있는 작은 가게다. 모두 기쁨의 함성을 내지르려는 순간, 이럴 수가 문은 닫혀 있었다. 억장이 와르르 무너졌다. 하릴없이 출발하려는데 불행 중 다행인 걸까. 사람 한 명을 근처에서 발견했다. 그는 한참 더 가야 주유소가 나오지만, 계속 완만한 내리막이니 중립으로 운전하면 문제없을 거라고 일러주었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그를 보낸 우리는 괜찮을 거라고, 주유소 나올 때까지는 차가 버틸 거라고 서로 격려하며 다시 달렸다. 


주위에 곰은커녕 움직이는 생명체의 흔적일랑 찾을 수가 없다. 아까는 마주 오는 차라도 드물게 있었는데, 이제는 앞서가는 차도 뒤따르는 차도 마주 오는 차마저도 아주 없다. 각자의 마음속에 절망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을 테지만, 우리 중 누구 하나 티 내지 않았다. 이번 여행 너무 재미있었다며 애써 다른 얘기로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몇 시간을 달린 걸까. 저 멀리 커다란 불빛들이 보였다. 조심스럽게 희망을 가지며 우리는 혹여 잘 안 보일까 눈을 부릅뜨고 불빛에 시선을 집중시켜본다. 맞을까? 맞을 거야. 맞았으면……. 간절한 마음으로 숨죽이며 다가간다. 신께선 우리의 기도를 조금 많이 늦게 들어주셨을 뿐 외면하지 않았다. 주유소였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가슴을 쓸어내린 우리는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고래고래 환호성을 질렀다. 배고픈 차에 연료를 서둘러 채워 먹이고, 바로 옆 패스트푸드점에서 맘 편히 저녁 식사까지 할 수 있었다.

 

 “무사히 주유소를 찾았으니까 말인데, 사실 아까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 별의별 상상 다 했어. 진짜 곰 나오면 어떡하지 싶고…….”

 “언니도 그랬어요? 저는 진짜 이 첩첩산중 속에 차 멈추면 911에 전화해야 되나 그 생각도 했어요. 다 같이 끌어안고 오들오들 떨고 있으면 어디선가 헬기가 날아와서 우리 구조해주려나 했다니까요.”

 “나는 갓길에 차 세워두고 히치하이킹하는 상상도 했어. 근데 이렇게 가로등 하나 없이 어두워서야 우릴 발견이나 하겠어? 차도 한 대 안 지나가는데 밤새 기다려야 되는 건 아닌가 싶어서 눈앞이 캄캄하더라고.”     


간신히 불행의 문턱에서 헤어난 직후에야 우리는 서로의 속마음을 앞 다퉈 털어놓기 시작했다. 말이 씨가 될까, 내가 걱정하면 다른 사람들도 불안해하지 않을까 싶었던 착한 마음들이 각자의 두려움을 애써 감추게 했던 것이다. 누구를 탓하지도, 재촉하지도 않고 서로를 염려했던 모두의 마음이 참 고마웠다. 이틀 전 처음 만났지만 이제는 의자매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동지애 같은 따듯한 무언가가 가슴속에서 차올라오고 있었다.


어느덧 시간이 5년도 더 흘렀다. 우리는 서로의 결혼식에도 참석하고, 아직도 종종 소식을 물으며 연락의 끈을 놓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 다시 뭉쳐서 미국도 유럽도 가보자며 여걸파이브라는 이름 아래 여러 번 의지를 다졌지만, 삶은 그런 극적인 여행을 쉽게 다시 허락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의 1박 2일이 더 값지게 느껴지는 거겠지. 지나 보면 어떤 재산도 인연보다 소중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날들을 공유하고 함께 추억할 수 있는 네 명의 동지가 있다는 것에 여전히 감사한다.  



5년전 우리들 :)




Mila의 또 다른 여행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https://brunch.co.kr/@mila/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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