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la Mar 10. 2016

목욕, 자주 하세요?

온천욕에 대한 고찰 - 上


목욕 이야기 - 온천욕에 대한 고찰 上, 中, 下
① 목욕, 자주 하세요? 
② 목욕의 기쁨, 우레시노 
③ 목욕의 멋과 맛 





1. 목욕과 샤워의 차이 

    

‘목욕’‘샤워’ 사이에 당신은 차이가 존재한다고 보는가? 장담하건대 두 단어의 뜻이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목욕은 머리를 감으며 온몸을 씻는 일이고, 샤워는 소나기처럼 뿜어 내리는 물로 몸을 씻는 일이라고 한다. 글쎄, 이 정도로 충분한가? 이것으로 목욕과 샤워의 뉘앙스 차이가 명료하게 정리됐다고 보는지?     


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욕조나 샤워부스를 갖춘 욕실이 딸린 집은 흔치 않았다. 동네마다 굴뚝 달린 대중목욕탕이 성업했다.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는 간단히 씻다가, 주 1회 일요일 새벽에 대중탕을 찾아 탕에서 몸을 불린 뒤 묵은 때를 밀었다. 한국 사람들이 이렇게 씻기 좋아하는 건 고려 시대나 조선 시대의 문헌에서도 엿볼 수 있는 전통이다. 아무튼 우리는 매주 한 번씩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모르는 사람 틈에 섞여 앉아 열심히 목욕을 했다. 와중에 엄마 따라 여탕 온 같은 반 남자아이를 만나는 피치 못할 사고도 종종 겪으며 말이다.   


출처: twospica.tumblr.com

  

그런 공동의 체험 때문인지 ‘목욕’이라는 말을 떠올릴 때는 더운 김이 오르는 욕탕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그림은 목구멍이 먹먹하도록 공기 속에 물기가 가득한 대중목욕탕의 풍경일 수도, 욕실 거울을 뒤덮은 뿌연 수증기 사이로 뜨거운 물이 채워진 욕조에 몸을 담근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다. 어찌 됐건 목욕이라는 말을 쓸 때는 탕과 자욱한 증기를 자꾸만 연상하게 된다.     


욕조에 받아둔 따뜻한 물과 샤워기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 이것이 우리의 관념 속 목욕과 샤워의 뉘앙스를 구분 짓는 지점이 아닐는지. 하나는 고여 있고, 하나는 흘러간다. 물이 가만히 머물 때 우리는 목욕을 하고, 물이 속절없이 흘러가버릴 때 우리는 샤워를 한다. 그렇기에 목욕은 물에 잠겨 느끼고 즐기는 풍류가 될 수 있지만, 샤워는 신속과 청결이 관건일 뿐 풍류가 되지 못한다.

 






2. 목욕, 얼마나 자주 하시는지?     


그럼 이번엔 이렇게 묻겠다. 당신이 가장 최근에 한 ‘목욕’은 언제인가? 단지 몸을 깨끗이 씻는 것 말고 탕에 몸을 담가 온욕을 즐기는 과정이 포함되는 그 목욕, 자주 하고 계시는지 말이다.    

 

대답을 듣기에 앞서 우리 한국인들의 씻기를 향한 유별난 열정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인은 참 씻기 좋아한다. 내가 십여 년 전 첫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 가장 놀란 건 외국 아이들에게서 풍기는 지독한 암내였다. 유스호스텔 등에서 만난 많은 외국 아이들은 우리만큼 씻는데 목숨 걸고 있지 않았다. 심지어 세수도 거르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인근 클럽에서 밤새 놀고 돌아와 그대로 침대에 엎어져 잔 뒤 느지막이 일어나 눈곱 낀 얼굴에 화장을 덧칠하고 홀연히 밖으로 나서던 미국 아이가 아직도 기억난다.     


해외에서 숙소를 잡을 때 샤워 시설을 민감하게 고려하는 사람들, 타지에서도 매일 부지런히 씻는 사람들은 단연 한국인이다. 터키 파묵칼레는 빨리빨리를 좋아하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반나절 여행 코스로 유명하다. 다른 지역에서 심야 버스를 타고 와 파묵칼레를 둘러보고 식사한 뒤 곧바로 떠나는 식이다. 그곳의 많은 숙소들은 이 패턴에 완벽히 적응했다. 숙박하지 않고 거쳐 가는 한국 관광객들로부터 조금의 돈이라도 벌고자 볶음밥 등 한식 메뉴와 서비스를 선보인 것이다. 특히 샤워비를 지불하면 샤워 시설을 쓸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가 한국인들 덕분에 성황리에 운영된다.    


파묵칼레의 호텔들


이렇게 씻기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이 목욕을 즐기는 횟수는 과거보다 퍽 줄었다. 집집마다 욕실 사정이 나아지면서 샤워하기는 참 편리해졌지만, 목욕은 상황이 다르다. 한때는 각 가정의 욕실마다 욕조가 있는 게 당연했는데 요즘은 그보다 샤워부스를 선호한단다. 대중탕은 진작 쇠퇴했고, 온천지역 또한 변모했다. 동래, 수안보, 유성, 온양, 덕산, 백암 등 고래로부터 탕을 즐겼던 우리 역사의 공간들이 시대의 변화와 맞물려 달라진 것이다.






3. 바뀐 한국 온천의 풍속도   

  

일례로 덕산 온천의 역사를 보자. 조선 시대의 여러 문헌에 이곳 온천수가 효능이 탁월한 약수였음을 알리는 기록이 남아있다. 탕을 즐기고 병을 치유하려는 많은 탕치객(湯治客)들이 예로부터 이곳에 몸을 담갔던 것이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한반도로 건너온 일본인들이 국내의 온천지 곳곳에 온천장을 지었고 이때 덕산에도 상업 온천 시설이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전국에 공식적으로 확인된 온천만 3,000여 개라는 일본이다. 그중 1,800여 곳은 온천 숙박 시설 등이 갖춰져 관광과 입욕이 가능하다. 이런 일본이 일제강점기 시절 한반도로 들어와 온천을 찾아내고 사업을 벌인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일본의 온천은 곳곳마다 지금도 전통적 숙박 시설인 료칸(旅館)들이 성업 중인데, 이들은 현재까지도 니쇼쿠쓰키(二食付) 즉 1박 2식 형태의 방식을 고수해오고 있다. 기실 이 니쇼쿠쓰키야말로 일본의 료칸 문화가 사라지지 않고 현대까지 이어지게 만든 원동력이다. 효능이 있다는 온천 약수에 몸을 담그는 온천욕이야말로 목욕에 있어 최고의 풍류요 사치다. 이런 호사를 즐기려 온천을 찾았을 때, 잘 정비된 숙소에서 극진한 대접과 함께 그 고장의 제철 재료로 만든 요리까지 맛본다면 세상에 더 부러울 것이 있겠는가.      


몸은 따뜻하고 머리는 서늘한 노천온천을 즐긴 후, 풍성하게 차려진 가이세키 료리를 코스로 맛본다. 나카이상(여종업원)은 그 사이 폭신한 이불을 방에 깔아준다. 다음날 일어나 개운하게 목욕을 마치면 이번엔 정갈한 아침상을 내온다. 이런 1박 2식 시스템의 료칸은 일본 관광 문화의 꽃이다. 전통의 가치를 계승하고, 지역 관광을 활성화시킨다. 음식 문화를 발전시키며, 심지어 그 음식을 담아내는 도자기 산업까지도 번성시켰다.     


유후인에서 묵었던 료칸의 노천탕
가이세키 료리의 예


일본인이 한국의 온천을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1박 2식 체계의 숙박 형태도 자연히 한국으로 수입되었다. 나혜석이 기거했던 곳으로도 유명한 덕산 온천의 ‘수덕여관’도 그중 하나다. 한국 근현대 미술의 거장 고암 이응로 화백이 이곳을 인수했고, 그의 부인인 박귀희 여사가 오랜 기간 안주인으로 지내며 온천여관의 명맥을 이어갔다. 그렇다. 한국에도 일본의 료칸과 같은 온천여관이 있었다. 고즈넉하게 온천 목욕을 즐기고, 정성이 담긴 음식을 맛보며 몸을 쉬어갈 그런 곳들 말이다.      


잘 먹고 쉬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육십여 년의 세월은 수덕여관에 풍류 그 이상의 것을 선물했다. 뒷마당의 바위와 우물에는 이응로의 암각화가 남겨졌고, 당대의 신여성 나혜석은 말년의 피폐해진 심신을 이곳의 방 안에서 달랬다. 근대 최초의 여류시인 김일엽이 불교에 귀의한 뒤 거처했던 절이 수덕사이기도 하다. 그 뒷마당이며 우물가, 방문 틈까지도 지나온 역사가 차곡차곡 서렸다. 세월의 깊이와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이런 곳에서 묵는 하룻밤을 그저 몸보신 잘 하고 온 시간으로만 기억할 이가 어디 있겠는가. 이런 앞서간 이들의 자취를 품은 온천여관들은 양양의 오색 온천 부근, 지리산 쌍계사 등에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지금은 없다. 단 한 곳도 없다. 마지막 남은 한 곳 수덕여관을 홀로 지켜오던 박귀희 여사가 세상을 떠나면서 여관이 경매에 부쳐졌지만, 이어받아 운영할 사람은 없었다. 2001년, 수덕여관은 그렇게 문을 닫았다. 드나든 많은 객들의 뱃속을 따뜻하게 덥혀주었을 그곳의 아궁이도 영원한 휴식에 들어갔다.      



수덕여관



안타깝기는 하나 이는 사실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본래 1박 2식이라는 방침 자체가 웬만한 의지가 아니고서는 고수해나가기 쉽지 않은 까닭이다. 1박 2식은 대접받는 입장이라면 누구나 매우 흡족할만한 서비스다. 뒤집어 말하면 대접하는 처지에서 매우 공이 많이 든다는 얘기다. 받는 돈과 단순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의 한결같은 정성과 노력이 요구된다. 일본에서도 실상 전통에 대한 사명감과 그 가치를 지켜나가겠다는 의지가 있기에 지금껏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지, 손쉽게 돈 버는 게 관건이었다면 진즉에 다들 때려치웠을 것이다. 수익만 생각해서는 이 방식을 유지하지 못한다.     


지금의 덕산에는 대규모 온천 워터파크가 들어섰다. 수영복을 입고 들어가면 5,000명 동시 수용이 가능하다는 거대한 물놀이장이 위용을 드러낸다. 다른 온천 지역도 비슷한 모양새로 바뀌어나가고 있다. 몇 천 명 속에 한 명으로 섞여 들어가 시끌벅적한 가운데 온천물을 접해야 한다. 여유 있게 즐기는 목욕과는 아무래도 거리가 먼 것 같다. 유유자적을 즐기며 몸을 쉬어갈 고요한 온천은 이제 한국에서 찾기 어렵게 됐다.




Mila의 목욕 이야기 - ②

https://brunch.co.kr/@mila/22


Mila의 목욕 이야기 - ③

https://brunch.co.kr/@mila/23


매거진의 이전글 폭설과 성스러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