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욕에 대한 고찰 - 下
목욕 이야기 - 온천욕에 대한 고찰 上, 中, 下
① 목욕, 자주 하세요?
② 목욕의 기쁨, 우레시노
③ 목욕의 멋과 맛
이제 마지막까지 숨겨뒀던 우레시노 온천의 비밀 병기를 공개할 차례다. 우레시노에는 대형 호텔식 료칸부터 산 속의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고급 료칸, 전통과 소박함이 느껴지는 작은 규모의 료칸까지 다양한 료칸이 있다. 빼어난 수질은 기본이고 료칸마다 녹차를 활용하거나 숲 속의 노천탕을 갖춰놓는 등 각각의 특색을 자랑한다. 하나 하나 다 가볼 수 없다면 몹시 아쉬울 것이다. 목욕에만 집중할 수 있는 이 동네에서, 한 군데의 온천탕만 경험하고 떠나라는 것만큼 매정한 게 또 있겠는가.
그래서 우레시노온천관광협회에서는 입욕우대권이라는 제도를 운영한다. 온천순례, 이른바 온센메구리가 가능하게 한 것이다. 가령 우레시노온천조합에 가입된 숙소 중 한 곳에 묵을 경우, 다른 료칸의 온천탕 1곳을 200엔에 이용할 수 있는 우대권을 준다. 내가 묵는 곳의 온천은 물론, 2천원 가량의 저렴한 가격으로 다른 료칸의 온천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료칸은 1박 당 양질의 식사를 2회 제공하는 게 핵심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다른 형태의 숙박업소보다는 더 비쌀 수밖에 없다. 입욕우대권은 그런 부담을 절감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면서, 다양한 온천을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는 일석이조의 아이템이다. 생각해 둔 예산에 맞는 합리적 숙소를 고르되, 우대권을 사용해 고급 료칸의 호화로운 온천탕도 이용하는 방식으로 영리하게 활용할 수 있다.
우레시노에는 산으로 둘러싸여 그 풍치가 절경인 시이바산소, 영화 <가문의 영광 4>의 배경이었던 호화 료칸 와타야벳소, 우레시노 특산품인 녹차를 탕에 풀어 녹차노천탕을 즐길 수 있는 와라쿠엔 등 다양한 매력을 자랑하는 료칸이 있다. 하루 묵는 데 적어도 1인 15~20만원 정도는 생각해야 하는 고급 료칸들이다. 그들은 손님의 주머니 사정을 가지고 박대하지 않는다. 입욕우대권을 제시해도 모두 웃는 얼굴로 안내하며 온천을 마음껏 즐기라고 권한다. 여기서 후한 시골 인심까지 떠올린다면 우레시노에 대한 내 애정이 과한 걸까. 상관없다. 그래도 온센메구리가 훌륭하고 유익한 제도라는 점은 전혀 퇴색되지 않으니 말이다.
물 좋다는 얘기를 한참 했으니, 료칸의 또 다른 요건인 식사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보겠다. 사가현내 어느 료칸이 됐건 음식 좀 한다는 곳이면 반드시 내는 것, 바로 사가규(佐賀牛)다.
일본 내 지역 이름을 단 와규 브랜드는 모두 150개다. 사가규는 그 중에서도 맛과 육질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톱 브랜드다. 일본에서는 전일본 기차역에서 판매하는 도시락(에키벤)을 두고 매년 순위를 매기는데, 사가규도시락이 두 번이나 전국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사가규에 대한 인지도와 인기는 매우 높다.
많은 료칸에서는 이 값나가는 사가규를 주로 저녁 식사에 내는데, 입안에 넣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 녹는 그 맛을 보면 왜 사가규의 인기가 그렇게 높은지 단박에 이해할 수 있다. 워낙 유명하니 관련 제품도 많다. 사가규 불고기 덮밥을 담은 에키벤, 사가규로 만든 카레, 사가규 스튜 등 모두 인기리에 팔리고 있는 것들이다.
우레시노의 료칸이라면 아침 식사로는 여지없이 온천물 두부(유도후)를 낸다. 온천물에 갓 제조한 두부를 끓인 것인데, 이때 온천물에 녹아있던 유용한 미네랄들이 두부를 더 부드럽게 만들며 우윳빛 국물을 형성한다. 한 술 떠먹으면, 간밤 사이 비어버린 뱃속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담백하게 몸을 덥힌다. 온천에 두부나 달걀 익혀 먹기를 좋아하는 일본 사람들은 특히 이 유도후에 사족을 못 쓴다.
일본의 온천에 가보면 머리 위에 반듯이 접은 수건을 올리고 탕에 몸을 담근 사람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또는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 묶고 탕을 즐기기도 한다. 여기서 공통점은 뭘까? 한국의 방식과는 달리, 탕 안까지 수건을 가지고 들어간다는 것이다.
탕 안으로 수건을 가지고 들어가는 이유는 수건이 갖는 본연의 기능과 조금 거리가 있다. ‘닦기’ 위해서 가지고 들어간다기보다 ‘가리기’ 위해서 가지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욕장 안에서 이동할 때 몸을 이 수건으로 살짝 가리는데, 이때 티 나게 가리기보다는 은근히 가리는 것이 포인트다. 어찌됐든 수건의 용도라는 것이 종국에는 몸의 물기를 닦는 데 써야하므로, 탕에서 계속 가지고 다니면서도 절대 물에 적시지는 않는다. 그래서 머리 위에 얹어두는 것이다.
탕에서 몸을 불린 뒤 때를 밀어 씻어내는 우리와는 달리, 충분히 몸을 씻어낸 후 탕에 몸을 담근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온천의 좋은 성분을 몸에 받아들이기 위해 더러움을 먼저 씻어낸 후 탕에 들어가는데, 이때 때는 밀지 않는다. 샤워 시에 사용한 의자와 바가지는 잘 헹군 다음 의자 위에 바가지를 엎어두면 된다. 그 자리를 다른 사람이 사용해도 된다는 무언의 표시다. 탕에서 나오면 따로 샤워를 하지 않고 물기를 몸에 흡수시키며 가볍게 닦은 뒤 탈의실로 나가야 한다.
한국과 일본의 목욕 방식에는 이런 자잘한 차이가 있다. 어떤 방식이 더 낫다고 말할 문제는 결코 아니다. 그저 문화적 차이로 받아들이면 된다. 다만 장소를 고려할 필요는 있겠다. 한국의 온천에서는 한국의 방식대로 하는 게 맞듯이, 일본의 온천에서는 일본의 방식을 존중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Mila의 목욕 이야기 - ①
Mila의 목욕 이야기 - 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