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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la Mar 25. 2016

무지개라는 이름의 솔밭

① 니지노마츠바라에서 소나무를 생각하다






1. 무지개

    

  흰 토끼는 눈이 붉다. 홍채에 멜라닌 색소가 없어, 눈동자를 도는 혈액의 붉은색이 그대로 비쳐 보이는 탓이다. 그래서일까. 홍채의 ‘홍’자를 紅(붉을 홍)자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오답이다. 아시아인의 경우 대부분 짙은 갈색에 가까운 눈동자를 지녔지만, 서양인들은 홍채의 색소량이 적기 때문에 좀 더 옅고 다양한 눈동자 색을 보인다. 이런 다채로운 눈동자의 색을 결정짓는 신체조직을 일찍이 서양에서는 iris라 명명했다. 그리스 신화 속 무지개의 여신인 이리스(Iris)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래서 홍채의 ‘홍’은 紅(붉을 홍)이 아닌 虹(무지개 홍)이다.



  

  虹(무지개 홍)이라, 흔히 접해보지 못한 한자다. 아니나 다를까.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이 虹(무지개 홍)자가 들어간 낱말은 동네 이름까지 모조리 합쳐서 헤아려보아도 고작 서른세 개다. 그러니 몰랐을 수밖에. 이렇게 예쁜 뜻의 한자가 있는 줄을 나이 서른셋이 넘어서야 처음 알았다. 사가현 가라츠(唐津)시에 있는 무지개 솔밭, 니지노마츠바라(虹の松原)라는 이름을 보고 난 뒤였다.


  서양에서 무지개가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지를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바로 무지개의 둥그렇게 구부러진 활꼴에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대 로마인들은 무지개를 ‘하늘의 활(coelestis arcus)’이라고 불렀다. 프랑스인들이 이것을 그대로 베꼈기에 불어로도 무지개는 ‘하늘의 활(arc-en-ciel)’이다. 이탈리아어로는 ‘번쩍이는 활(arcobaleno)’, 스페인어로는 ‘이리스의 활(arco iris)’이다. 독일어로는 ‘비(온 후 생긴) 활(regenbogen)’이고, 영어도 같은 뜻인 rainbow라는 말을 쓴다.


  니지노마츠바라는 이렇게 활꼴로 펼쳐진 형태를 하고 있다. 무지개 솔밭, 니지노마츠바라라는 이름은 그래서 붙었다. 가로 길이가 약 4.5km라고 한다. 땅에 붙박인 커다란 무지개다. 현해탄 앞바다를 마주하고 선 이 무지개는 거센 해풍을 막아주는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한다. 바닷가를 따라 늘어선 총 100만 그루 가량의 곰솔(흑송)이 빽빽한 방풍림을 이루고 있다. 세로 폭이 400~700m 가량, 전체 면적이 230ha에 달하는 웅장한 규모의 송원(松原)이다.


니지노마츠바라





2. 척박한 땅을 이기는 나무


  니지노마츠바라를 거닐다 보면, 내 몸이 기울어지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 쉽다. 곧게 자란 나무를 찾기 어려운 까닭이다. 나무들은 일제히 둔각을 그리며 비스듬히 누워서 서 있다. 와중에는 굽이굽이 제 몸을 비틀며 기를 쓰듯 자라난 것들도 부지기수다. 그런 나무들을 보고 있노라면 자꾸만 내 고개도 나무들을 따라 기우뚱해진다. 왜 이렇게 자란 걸까 갸우뚱하면서 말이다.




  이곳에는 오직 한 종류의 나무만이 심어져 있다. 해송, 또는 흑송이라고도 불리는 곰솔이 바로 그것이다. 어디로 눈을 돌려도 똑같다. 단단하고도 강인한 흑빛의 나무껍질을 가진 곰솔들이 나란히 누워 서서 시야를 가득 메운다.


  니지노마츠바라는 강한 해풍을 막기 위해 인공적으로 조성한 숲이다. 곰솔은 그 용도에 더없이 적당한 나무였다. 이런 메마른 모래질 땅의 바닷가에서, 그것도 바닷바람 거칠기로 유명한 현해탄 해변에서, 꿋꿋이 버티며 죽지 않고 잘 자랄 수 있는 나무는 곰솔이 유일했던 것이다. 이런 땅에서 여느 나무들은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건조하거나 지력이 약한 땅에서 유독 견디는 힘이 강한 나무, 땅심이 좋고 습도가 알맞은 땅일수록 오히려 활엽수들에게 자리를 내줘버리는 나무, 그런 독하고도 고고한 소나무만이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바람을 버텨낸 세월을 입증하듯, 바닷가의 척박한 토양을 온몸으로 이겨내려는 듯, 곰솔들은 그렇게 뒤로 눕고 몸을 비틀면서도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켜왔던 것이다.


니지노마츠바라에 뜬 무지개



  백사청송(白砂靑松)이는 말이 있다. 이렇게 바닷가 모래땅에서도 너끈히 자라나는 소나무들을 일컫는 말이다. 흰 모래사장과 함께 어우러지는 꿋꿋하고도 푸른 저 소나무숲을 보고 있노라면, 그 고결한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이런 특별한 성어가 있다는 게 그리 놀랍지 않다. 중국에서 발원했을 이 고사성어는, 한국과 일본에서도 두루 쓰인다. 삼면이 바다인 한국과 사면이 바다인 일본, 두 나라 모두 예로부터 이렇게 바닷바람을 막고자 조성한 솔밭이 곳곳에 많기 때문이다.



일본 사가현에 있는 솔밭, 니지노마츠바라를 다녀오면서 생각해두었던 '소나무'에 대한 글을 연재합니다. 이번 연재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소나무를 함께 살펴볼 생각입니다. 소나무 속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웅숭깊게 잘 담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Mila의 소나무 이야기 - ②

https://brunch.co.kr/@mila/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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