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진 May 05. 2020

당신이 돌아가고 싶은 곳은 언제인가요?

영화 '카페 벨에포크'(2019) 리뷰


막연하게 '처음 영화를 보았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정확히는 '극장에서' 영화를 처음 본 때. 더 정확히는 극장에서 만나는 영화가 내게 주는 놀라움과 경이로움 - 재미, 감동, 영감과 같은 몇 개의 단어들로 나열해볼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 을 처음 경험했던 순간으로 돌아가 보고 싶다는 말이다. 현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지금은 다소 무뎌지거나 다른 종류의 것으로 변화한, 원초적이고도 가장 강렬했을 그때의 '영화 경험'을 다시 한번 체험하고 싶다는 말.




영화에 있어서도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는 그것이 다뤄지는 방식이나 구현하는 방법론에 있어 나름의 계보 혹은 갈래가 있다. 예를 들어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백 투 더 퓨처> 시리즈처럼 직접적으로 '타임머신'이 등장하는 경우. <시간 여행자의 아내>(2009)나 <미드나잇 인 파리>(2011) 혹은 <어바웃 타임>(2013)처럼 판타지의 힘을 빌리는 경우.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2014)처럼 특정 인물의 능력이 작용한다든가, 혹은 <엣지 오브 투모로우>(2014)처럼 어떤 설정으로 인해 주인공에게 똑같은 하루가 반복된다든가. 여기에는 물론 시간을 거스르는 일 자체가 중요한 경우도 있고 단지 세부 설정의 하나인 때도 있다.


저마다 타임 슬립, 타임 루프, 타임 리프 등 성격에 따라 명칭도 다양하다. 물리적으로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여부를 떠나 이런 소재가 영화에서 많이 다뤄진다는 건 그만큼 시간을 비선형적으로 경험하는 일 자체가 사람의 보편적인 상상 내지는 욕망 중 하나라는 뜻이겠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소개할 영화 <카페 벨에포크>(2019)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영화 '카페 벨에포크' 스틸컷

명망 있는 만화가였던 '빅토르'(다니엘 오떼유)는 지면의 쇠퇴로 삽화를 그리는 일 따위가 끊기면서 소위 말해 '중년의 위기'를 겪는다. 그에게 싫증을 느낀 아내 '마리안'(화니 아르당)는 별거를 선언하고 '빅토르'를 내쫓다시피 한다. 그런 '빅토르'가 만나게 되는 아들의 친구이자 시간여행의 설계자 '앙투안'(기욤 까네)은 정말 글자 그대로 "시간여행에 초대합니다"라고 적힌 초대장을 건넨다.


"우리는 가끔 내 삶의 가장 찬란했던 때로 돌아가는 상상을 하죠."


영화 '카페 벨에포크' 스틸컷

이 영화의 독특함 내지는 기발함은 여기서 나온다. <카페 벨에포크>의 시간여행은 사이언스 픽션도, 판타지도 아니다. '앙투안'이 하는 일은 고객의 이야기를 듣고 고객이 원하는(돌아가고 싶은) 특정한 시기를 직접 구현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빅토르'가 '1974년 5월 16일' 첫사랑과 만났던 그날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면 '앙투안'과 그의 크루들은 '빅토르'로부터 그 시기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은 후 세트장을 만들고 무대 장치와 배우 등을 동원해 물리적으로 '빅토르'에게 '1974년 5월 16일로 돌아간 것 같은 체험'을 선사한다. '빅토르'가 첫사랑을 만났던 카페의 이름이 바로 벨에포크.


영화 '카페 벨에포크' 스틸컷

당연히 수십 년 전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그때처럼' 하루를 재현하는 일이므로 '빅토르' 역시 처음에는 재현된 세트장 곳곳을 미심쩍은 표정으로 훑으면세트장 벽면에 붙은 도색을 만지작거린다든가 하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다 자신의 첫사랑을 연기하는 '마고'(도리아 틸리에)와 이야기를 나누고 카페 안의 점원들 및 손님들과 대면하면서 '빅토르'는 일종의 대리만족감을 느끼는 것이겠다.


'그때 총리나 장관이 누구였는지 같은 것을 두고 1974년의 정세를 대사 외우듯 암기한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빅토르' 본인이 직접 사실관계를 확인해주는 일 같이 <카페 벨에포크>에는 이 '핸드메이드 시간여행'의 의외성과 그로부터 나오는 기발함에서 출발한 감각적인 유머들이 가득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는 할리우드 영화나 한국 영화에서 만나기 힘든, 유럽 영화 특유의 감각들.


영화 '카페 벨에포크' 스틸컷
"진짜 과거로 온 것 같네요."


말하자면 <카페 벨에포크>의 시간여행이라 함은 고객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데 있지 않은 것 같다. '빅토르'가 자신이 원하는 1974년 그날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그날을 구성하는 모든 세부를 '앙투안'에게 다 들려주어야 한다. 옷은 어떤 색과 재질이었고 날씨는 어땠으며 카페 점원이 자신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첫사랑은 옆자리 손님과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자신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등. 그러기 위해서는 단지 기억력만이 필요한 게 아니라, 그때가 지금의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돌아보아야만 한다.


유머러스한 전개와 소재 자체의 신선함이 주는 힘을 기반으로 <카페 벨에포크>는 관객 각자에게 있을 '그때'를 돌아보거나 추억해보게 만든다. 만약 이 영화의 시간여행이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처럼 진짜 헤밍웨이를 만나고 피츠제럴드 부부를 만나는 일 같은 것이었다면, <카페 벨에포크>가 주는 감상은 많이 달랐을 것이다. 판타지가 아니어서 더 특별한, 돌아올 수 없는 하루로 인도하는 여정이 여기 있다. 인생에서 진정 소중했던 때는 언제인지 돌아보게 하고 지금 이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환기시키는 진짜 여행.


2019년 칸국제영화제, 토론토국제영화제 등 초청작.


영화 '카페 벨에포크' 국내 메인 포스터

<카페 벨에포크>(La belle epoque, 2019), 니콜라스 베도스 감독

2020년 5월 (국내) 개봉 예정, 115분, 15세 이상 관람가.


출연: 다니엘 오떼유, 기욤 까네, 도리아 틸리에, 화니 아르당, 삐에르 아르디티, 드니 포달리데스, 미카엘 코헨 등.


수입/배급: (주)이수C&E

영화 '카페 벨에포크' 스틸컷


*와인과 함께한 루프탑 시사회에 초청받아 개봉 전 조금 일찍 관람했다. 누군가에게는 사랑을 시작하게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게 할 이 영화의 분위기에 꼭 어울리는 자리였다.


행사장에서 나눠준 스택와인과, 포토존용 토퍼
포토존에서 하나 찍어봄 / 여유 있게 도착해 아직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았을 때, 대한극장 8층 하늘정원의 풍경


*시사회 관람(4월 28일 대한극장, '봄날의 시간여행' 시사회 초청)

*영화 <카페 벨에포크> 예고편: (링크)



*프립소셜클럽 [영화가 깊어지는 시간] 모집: (링크)

*매월 한 명의 영화인을 주제로 다루는 영화모임 '월간영화인': (링크)

*원데이 영화 글쓰기 수업 '오늘 시작하는 영화리뷰' 모집: (링크)

*원데이 클래스 '출간작가의 브런치 활용법' 모집: (링크)

*글을 읽으셨다면, 좋아요, 덧글, 공유는 글쓴이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