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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r 11. 2024

짧은 시상식 순간으로 누군가를 쉽게 낙인찍는 일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며


들어가며: 온라인 공간에서 누군가를 설득할 생각 같은 건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아무 뉴스 채널 유튜브 댓글만 몇 개 봐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오늘은 이런 생각을 했다고 적었다"가 목적이다.


오늘(미국시각 3월 10일) 개최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오펜하이머>(2023)로 남우조연상을 받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그리고 <가여운 것들>(2023)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엠마 스톤을 둘러싸고 두 수상자가 전년도 수상자인 키 호이 콴, 양자경(둘 모두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을 의도적으로 소위 '패싱' 했다는 논란이 일부 커뮤니티에서 나온 모양이다. 특정한 뉴스나 이슈의 출처 혹은 출발점이 커뮤니티인 경우 대부분 걸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어쨌든 두 사람이 수상자로 호명된 순간부터 무대에서 수상 소감을 말하고 퇴장하기까지의 영상을 다시 보면서 대략 아래와 같은 생각을 했다.



1. 주최 측에서 동 부문 전년도 수상자(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게는 키 호이 콴, 엠마 스톤에게는 양자경) 외에도 역대 해당 부문 수상자들을 무대에 함께 세우지 않았다면 이런 '논란'이 생겼을까?


2. 만약 <오펜하이머>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킬리언 머피가 그랬던 것처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엠마 스톤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무대에 먼저 올라 있는 한 명 한 명에게 인사와 포옹과 아이컨택을 했다면 이런 '논란'이 생겼을까?


3. 그런데 왜 그러지 못했을까? 두 사람이 이런 시상식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닌데, 단순히 성격? 아니면 드레스라든가 어딘가 거슬리는 게 있어 그 급박한 순간에 한 명 한 명에게 미처 다 신경을 쓸 겨를이 없을 만한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4. 두 사람(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엠마 스톤) 각자 골든글로브라든지 다른 시상식에서는 어땠을까?


5. 글쎄. 두 사람(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엠마 스톤)이 정말로 '동양인'에 대해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치자. 그렇다 해도 "시상식 多경험자"인 그들이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영화인들의 축제에서 특정한 누군가를 특정한 방식으로 배제하는 혹은 무시하는 듯한 행동을 했을까. 킬리언 머피를 보라고? 글쎄. 모든 사람이 모든 순간에 똑같은 방식과 절차와 맥락으로 행동하기를 바라는가. 그게 가능한지는 너무도 당연하게 차치하더라도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는 사회는 오히려 다른 의미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6. 의도적으로 특정한 누군가를 특정한 방식으로 패싱 했다기보다는 그 경황없는 와중에 나온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했다. 글쎄, 우리가 회사에서 프레젠테이션 할 때 모두 정확히 예상했던 시나리오, 염두했던 방식 그대로 무대에서 화술을 완벽하게 구사하는가?


@ IMDB

우리는 단상 위에 선 사람들이 '무대'에서가 아니라 실제로는 어떤 관계인지 혹은 서로에 대해 안면이 있는지 여부를 알지 못한다. 그건 그럴 수 있고 그럴 수밖에 없다. 아니, 안다고 하는 건 거의 절대적으로 착각이다. 온라인 공간에는 특정 연예인에 대해 이 사람은 행실이 어떻고 어디서 무슨 발언을 했고 촬영 현장에서 무슨 행동을 했고 하는, 다 안다는 듯한 발언들로 넘쳐난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가장 쓸데없는 이야기 혹은 하나마나 한 이야기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연예인/유명인의 "인성"이나 "정치관" 같은 것에 대한 이야기다. 1번. 뭘 안다고? 촬영장에서 어땠다더라. 특정한 시상식에서 어떠한 발언을 했다더라. 카더라로 만나본 적도 없는 특정한 사람의 특정한 성격이나 가치관을 재단하는 건 반드시 오류를 내포한다. 수많은 문인들이 말하듯 우리는 그들에 대해 "잘 모른다"라고 말해야만 한다. 함부로 아는 척하는 건 폭력이다. 2번. 그래서 뭐? 그 사람들은 연기력이든 가창력이든 "자기 재능"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다. "대중의 관심"으로 먹고 산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지. 그렇다 해서 마치 자신들이 절대 권력을 가진 "소비자"인 것처럼 그들에게 무슨 말이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오만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현대 사회에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는 그런 식으로 단순하게 규정되지 않는다. 그들이 반사회적이거나 당대 도덕 규범에 반하는 행위 혹은 기타 범죄 등을 저질렀다는 게 사실로 규명되지 않는 한 함부로 매도, 매장하는 건 아주 위험한 일이다.


나름의 판단 근거를 가지고 특정한 콘텐츠, 특정한 연예인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소위 '테일러 스위프트 전용기 논란'처럼 온라인상 일부 이야기가 마치 전체인 것처럼 치부해버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좌) @Yahoo, (우) AOL.com

별도의 글에서 보충해야겠지만 약간의 건너뜀을 감수하고, 이런 현상이 내게는 "취존(취향존중)"을 외치면서 정작 기자나 평론가의 특정 영화에 대한 코멘트나 리뷰에 대해 공격하는 일부 온라인 공간의 사람들의 행태와 조금도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것 역시 여러 차례 이야기 해왔던 것이라 여기서는 더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겠다. 어떤 영화인의 특정한 한 가지 언행에는 단 한 가지의 판단된 맥락만 있어야 하나? 마치 그 시상식 장면의 일부 잘려나간 맥락을 두고 "그 사람은 인종차별주의자야"라고 말하는 건, 내게는 유튜브 쇼츠에 나온 어떤 드라마의 특정 장면, 특정 대사를 두고 "드라마 작가의 수준이 어떻다"라고 말하는 것과 아무것도 달라 보이지 않는다. 취향 존중을 외치는 많은 사람들은 정작 자신과 다른 관객들 그리고 기자/평론가들의 평가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존중도 행하지 않는다.


"사회적 영향력"을 위시하여 ("공인"이라고 흔히 착각하는) 연예인들에게 사회적 도덕적 완전무결함을 강요하고 조금이라도 엇나가는 요소가 부분적으로 보일 시 손쉽게 힐난하고 그 사람을 공격하고 그 사람의 인격과 가치관을 낙인찍는 일이 과연, 누구를 위한 걸까. 그래서 시상식에서 소위 "논란"이 되었던 그들에게 백스테이지에서 다른 비하인드 스토리가 밝혀지거나 "사실은 이러했다"라는 이야기가 있다고 알려지면 그때는 어떻게 하려고? (많은 사람들은 아 그랬나 보다, 하고 지나갈 것이다. 언젠가 이야기하겠지만 PR/IR 실무에서도 이건 굉장한 골칫거리다.) 여담으로 우리는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에 대해 그 어떤 편견도 차별도 의식도 가지지 않은 채 완전하게 대등한 위치와 가치판단에 입각하여 대하는가?


더 멀리 갈 것도 없이, 최근 실적에 혈안이 된 경찰의 과도한 수사 논란 속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영화배우도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의 'In Memoriam'에 이름을 올렸다. 십수 년 전부터 어떤 연예인은 자살을 했고 어떤 연예인은 과도한 억측을 자제할 것을 "호소"했다. 그럼에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오히려 눈에 띄는 건 어떻게든 사람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낙인찍고, 그의 "인성"과 "정치관"을 재단하고, 쉽게 분노하고 쉽게 가라앉는 일뿐이다. 그러한 일들은 더 자극적이고 더 극단적인 방식으로 소셜미디어와 커뮤니티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쓰면 나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엠마 스톤의 "인종 차별", "동양인 차별"에 동조하는 사람이 되는 건가?) 항상 일관되게 이야기해 온 사실이지만, 연예인은 대중들 앞에 강자가 아니다. 그 어떤 사생활도 보장받지 못하고 표현의 자유도 침해당하고 편집된 요소도 마치 그 사람의 삶을 드러내는 전체인 것처럼 평가당하는 약자이자 을의 위치에 있는 직업인들이다. 특정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에서 낙인찍은 누군가에 대해 단지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의견에 동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건 부분과 현상 자체보다 흐름과 맥락이 더 중요하다. 제대로 된 사실도 알지 못하는 위치에서 다 안다는 것처럼 말해서는 안 된다. 제3자가 타인의 언행에 대해 평가하는 건 참 쉬운 일이지. 그런데 거기에 마치 모든 평가가 끝난 것처럼 굴 수 있을까. 우리는 타인보다 자신에게 더 엄격해야 한다.



한 칼럼에서 정지우 작가는 "악의적 오독의 시대"라는 표현을 쓴 적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사람들은 공격 대상이 되기 딱 좋은 누군가(주로 연예인)에게서 그 사람의 "도덕적 완전무결하지 못함"을 발견하고는 최대한 폄하하고 힐난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gettyimages
@gettyimages

오늘의 '시상식 "논란"'을 보면서 상장회사에서 전략기획, IR, 공시 업무를 하고 있는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회사'를 상대로 소액주주들이 흔히 이야기하고는 하는 허무맹랑한 주장들의 일부를 떠올리기도 했다. 생각보다 제법 닮아 있는 구석도 보여서. 이건 또 언젠가 기회가 될 때 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https://youtu.be/oH4tQzxcpPI?si=nNs1OI5eDxClaQVN

https://www.youtube.com/watch?v=Q8urFpWdi9c


https://brunch.co.kr/@cosmos-j/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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