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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un 13. 2024

광활한 하늘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지는 않았던 사람들

영화 '에어로너츠'(2019)

2020년 6월 국내 개봉한 영화 <에어로너츠>(2019)는 열기구를 타고 고도 11,277미터까지 올라간 기상학자 제임스 글레이셔(1809~1903)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다. 영국의 작가이자 학자인 리처드 홈즈가 소피 블랜차드(1778~1819) 등 당대 여성 열기구 조종사들의 이야기에서 영향을 받아서 집필한 책 <Falling Upwards: How We Took to the Air>(2013, 국내 미출간)이 원작이다. <와일드 로즈>(2018) 등을 연출한 톰 하퍼 감독의 신작이며 여기에 <사랑에 대한 모든 것>(2014)으로 이미 만난 전 있는 펠리시티 존스와 에디 레드메인이 다시 함께했다.


이 영화의 음악을 담당한 작곡가 스티븐 프라이스는 <그래비티>(2013)를 통해 아카데미 시상식 음악상을 수상했다. <그래비티>에서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일련의 시퀀스 역시 라이언 스톤(산드라 블록)이 삶을 향한 의지를 회복하고 지구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은 이후에 벌어지는데, 그 대목을 특별히 기억하는 이유 역시 음악 덕분이었다. 홀로 남겨진 우주에서 주인공이 느낄 광막함을 생생히 담으면서도 동시에 대기권 밖에서 지구의 풍경을 보는 초월적인 아름다움까지 표현한 그 음악. <에어로너츠>에서도 음악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실제 항공 촬영을 감행하며 담아낸 풍광과 어우러져 영화의 몰입도와 체험도를 높인다. (주요 고공 시퀀스는 IMAX 카메라로 촬영되기도 했다.)


영화 '에어로너츠' 스틸컷


<에어로너츠>는 오히려 제작 기법이나 기술적인 성취보다는 열기구 조종사 '어밀리아'를 연기한 펠리시티 존스의 섬세함이 더 돋보인다. 영화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곧장 열기구를 띄우는 현장 모습을 전개해 캐릭터의 전사보다는 지금껏 도달한 적 없는 높이에 이르렀을 때의 체험이 주로 묘사될지 모르겠다는 짐작을 한 것과 달리, '어밀리아'가 열기구 조종사가 된 계기와 과거에 겪은 아픔 등을 수시로 플래시백 형태로 다루기에 <에어로너츠>는 자연스럽게 펠리시티 존스의 말과 행동과 표정이 중심이 된다.


그렇다면 ‘어밀리아 렌’은 ‘제임스 글레이셔’(에디 레드메인)를 만나기 전에 어떤 일을 겪어왔나. 간단하게만 언급하면 그는 영화 시점으로부터 2년 전 열기구 사고로 인해 남편을 잃었다. 당시 여성이 열기구를 탄다는 것 자체만으로 일종의 멸시 혹은 구경(조롱)의 대상이 되었을 것인데 아마도 세상 사람들은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한 채 ‘어밀리아’ 때문에 남편이 죽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처음 ‘제임스’가 그를 찾아왔을 때도 ‘어밀리아’는 열기구를 조종해달라는 제안을 거절한다. 다시는 열기구를 타지 않겠다면서.


<에어로너츠>는 두 가지를 동시에 다룬다. 당시 인간이 누구도 도달해본 적 없는 높이를 초 단위로 갱신해가며 마셔본 적 없는 공기를 경험하는 ‘어밀리아’와 ‘제임스’ 두 사람이 실시간으로 마주하는 변덕스럽고 끝없이 펼쳐진 하늘의 모습, 그리고 ‘어밀리아’와 ‘제임스’가 서로의 여정을 함께하게 되기까지의 과정. (다행스럽게도 이것은 로맨스로 귀결되지 않는다.)


영화 '에어로너츠' 스틸컷


전자는 인포그래픽을 활용해 열기구가 지상을 벗어난 경과 시간과 현재 높이를 알려주는 등 동시성을 강조하지만 후자는 전자에 수시로 플래시백을 통해 끼어든다. ‘끼어든다’는 표현이 그렇게 이질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차라리 2년 전으로부터 시작해 영화 중반부터 ‘어밀리아’와 ‘제임스’가 함께 날아오르는 여정을 출발시켰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


물론 이 현재와 과거의 결합 및 교차 방식이 완전히 엇나간 것은 아니다. 예컨대 두 사람은 한 사람은 열기구 제작 및 조종을 전담하고 다른 한 사람은 하늘을 연구해 날씨를 예측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학자라는 직업적 차이가 있다. 이는 단지 직업만이 아니라 태도 자체의 차이를 가져오기도 한다. 특정 상황에서 ‘어밀리아’는 더 이상 올라가는 것이 위험하다고 판단하지만 ‘제임스’는 비행을 강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상황에서도 이런 형태의 대립은 되풀이된다. 한 사람은 누군가를 상실하게 되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길 원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의 연구가 마술이 아니라 과학의 영역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하고 싶어하기에 목숨 자체보다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유의미하면서 계량된 연구 결과를 기록으로 남기길 원한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모두가 틀렸다고 할 때 그것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온 생을 걸고 증명하려 한 사람들의 발자취일 것이다. 이 이야기는 드넓은 하늘을 단지 쳐다보기만 하지 않고 탐험의 대상으로 여기며 나아가 그것이 세상에 공헌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이들의 모험담이자 개척담이다. <에어로너츠>의 동력은 한편으로 앞서 언급한 견해 차이와 그런 두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공동의 여정에 있지만, 연출과 각색, 편집의 조화가 여러모로 아쉽기도 하여 영화를 본 뒤 극장을 나서는 동안 국내에 번역 출간되지 않은 영화의 원작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같은 이야기라 할지라도 영상 매체와 문자 매체의 차이를 비교해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2020.06.17.)



영화 '에어로너츠' 국내 포스터

*인스타그램: @cosmos__j

*모임/강의 등 공지사항: linktr.ee/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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