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가오는 것들>(2016)
영화 <다가오는 것들>(2016)을 보는 내내 '나탈리'(이자벨 위페르)가 부러웠다.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부정 당하는 듯한 그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도, 그는 흔들리는 듯 보이다가도 이내 평정을 유지한다. 무엇보다 그가 평생 일궈온, 철학 교육자로서의 기품이, 읽고 쓰고 연구하는 사람이라는 그 정체성 자체가, '나탈리'의 지금을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부러웠던 건, 아직 그런 상황에서 나를 지켜내기엔 한참 미숙하고 먼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영화 내내 '나탈리'는 어딜 가나 책을 끼고 살며, 마음처럼 되지 않는 일에 의연할 줄 안다. 감정을 섣불리 앞세우지도, 그렇다고 그 감정을 회피하거나 외면하지도 않는다. 그는 영화 내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 그에게도 내게도 앞으로도 희망적인 삶만 있지는 않겠지만, 쌓아온 이 삶의 시간이 아주 헛된 건 아니라는 바를 <다가오는 것들>의 이야기는 차분하고 극도로 섬세하고 절제된 화법으로 말한다. 무엇보다도 좋은 영화는, 대답하기보다 질문을 남기는 영화이며 파토스보다는 삶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담을 줄 아는 영화다. '도대체 내 삶에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 하는 회의와 낙담에서 벗어나, 그럼에도 지금 내 삶에는 단 한 번도 마주해보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구나. 내가 나를 지킨다면, 미래는 계속해서 다가오는 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영화. 작품에 활용된 숱한 철학 레퍼런스들이 조금도 과잉되지 않고 풍요를 이루는 영화. 불화하는 세계에서 나 자신을 부정하지 않기, 에 관하여. 평생의 태도에 관하여. 나는 이런 영화야말로 만나기 쉽지 않은 영화라 단언할 수 있다. 이렇게 밀도 높은 이야기의 연출자는 1981년생, 그리고 상영시간은 단 102분. '자아를 찾아 훌쩍 떠나는 여행' 따위의 도식도 따르지 않는 대단함.
"마음처럼 되지 않았던 과거의 일들과
마음만으로는 될 수 없을 미래의 일들을 생각한다."
(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에서)
'나탈리'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 내게 다가와 있는 현재를 인식한다는 것은, 곧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염두에 둔다는 것이기도 하다. 어제가 있었다는 사실과, 내일이 있을 거라는 앎 사이에 오늘이 있기 때문이다. '나탈리'는 자신에게 밀물처럼 '다가온' 이 모든 일들을 생각한다. 영화의 제목을 겹쳐서 생각해야만 하겠는데, 영문과 국문으로 넘어오면서 조금 더 풀어쓴 제목이 된 영화의 프랑스어 원제 <L'avenir>는 '미래'를 뜻한다. 이는 현재 닥쳐온 상황들에 대한 태도이기도 하고,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미래를 담담히 맞이하고 끌어안고자 하는 마음가짐이기도 하겠다. 그러니까, 행복과 불행이란 외부로부터 찾아오는 사건이 그 자체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그것들을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나의 자세와 마음에 달린 일이라는 의미다.
"이런 생각을 해. 애들은 떠나고, 남편은 가고, 엄마는 죽고,
나는 자유를 되찾은 거야.
한 번도 겪지 못했던 완전한 자유. 놀라운 일이야."
(영화 속 '나탈리'의 대사 중에서)
'나탈리'가 "지적으로 충만하게 살잖아. 그거면 족히 행복해."라고 말할 때, 그 말은 조금도 허세나 과언이 아니다. 상술한 것처럼 그가 평생을 철학 교사이자 철학 연구자로서, 즉 읽고 쓰는 사람으로 일생을 보내왔다는 것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겪어내고 받아들이는 데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 그 점을 에둘러 표현하듯 영화 <다가오는 것들>에는 수업 시간 등 여러 장면들을 활용해 문학과 철학 텍스트가 쓰인다.
"정염情炎의 세계에서는, 정염에서 비롯되는 고통을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바로 그 정염입니다. 정염은 욕망에 소망을 붙여놓지요. 욕망하는 한은 행복함이 없이도 살 수 있어요. 행복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지요. 행복이 전혀 찾아오지 않으면, 희망이 연장됩니다. 공상의 매력은 그 원인이 된 정염만큼 깊어지지요. 따라서 이 상태는 스스로 충족되며, 거기서 비롯한 불안은 현실을 보충하는 쾌락의 일종으로 어쩌면 현실보다 더 낫지요. (...) 인간은 자기가 얻은 것보다 희망하는 것으로 더 즐거워하며, 행복해지기 전까지만 행복합니다. 사실 인간은, 갈구하나 유한하며, 모든 것을 원하나 얻는 것은 적도록 만들어져 있지만, (...) 망상의 나라는 이 세상에서 깃들 가치가 있는 유일한 나라이며, 인간적인 것들의 허무가 이와 같아서,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자가 아니라면, 아름다운 것은 무엇이건 존재하지 않는 것일 뿐이지요."
(장 자크 루소, 『누벨 엘로이즈』에서)
자신이 필진으로 참여한 철학 총서가 절판되고, 남편이 외도를 하는 등의 일들, 그리고 옛 제자를 만나면서 마주하는 이야기들은 '나탈리'에게 온통 그의 삶을 부정하고 뒤흔드는 것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 삶의 일부를 구성해왔던 것들이 전부 혹은 일부 흔들리거나 사라지는, 혹은 부정되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그는 스스로의 근간을 모두 무너뜨리지는 않는다. 나와 불협하거나 불화하는 것들로만 가득한 이 세상에서, 그럼에도 '나'로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노년이 되어서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충돌하는 스스로의 세계를 천천하고 면밀히 관찰하면서 물음을 던지는 것. 영화 <다가오는 것들>의 가치는 그런 것이다. 삶의 풍경을 고요히 응시할 때 비로소 찾아오는 작은 변화를 하나씩, 천천히, 끌어안는 영화. 그런 태도로 살아내는 사람을 보여주는 영화. 한때 소중했던 많은 것들은 그만큼 상처를 남기고 떠난다. 그러나 이 삶에는 반드시 슬프고 원망스러운 일들만이 있는 것은 아니리라. 이 아름다운 영화를 보며,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문장과, 가수 심규선의 노랫말을 생각했다. (★ 10/10점.)
"이제 슬픔은 우리를 어쩌지 못하리 / 더는 누구를 탓하고 원망치 않으니 / 네게 내어준 그 모든 것 / 다 돌려받으려 / 더는 애타지 않으리 / 흐르는 강물도 흐르고 흘러 / 차 넘치면 바다로 향하듯 / 이제 슬픔도 넘치고 흘러 사라지네 / 이제 눈물을 더 이상 숨기지 않으리 / 더는 가면도 거짓도 필요치 않으니 / (...) / 더는 붙잡지 않으니 흘러 사라지네"
(심규선, '이제 슬픔은 우리를 어쩌지 못하리'에서)
"삶에 희망이 있다는 말은,
앞으로는 좋을 일만 있을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의 지난 시간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신형철,『정확한 사랑의 실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