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진 Nov 15. 2018

드러냄과 감춤 사이에서, 우리는 언제까지나 타인이다

영화 <완벽한 타인>(2018)

"다 말하지 말고 비밀 하나쯤은 남겨 간직하라."
(이병률, 『내 옆에 있는 사람』에서)


수십 년을 알고 지내며 자라온 평생의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사람은 끊임없이 서로를 판단하고 오해한다. 수많은 오해들이 있겠으나 그중 많은 것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좋았을 것을 들춰내 보이거나, 숨기지 않았어야 할 것을 애써 숨기고 덮으려 하면서 일어난다. 상대, 특히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조차 떳떳하지 못할 비밀을 만들어도 좋다는 이야기가 물론 아니다. (그러니까, 영화 <완벽한 타인>의 마지막을 두고 '들키지 않으면 괜찮다'는 식의 합리화라고 하는 건, 적어도 내 생각에서는 영화에 대한 명백한 오해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영화 속 인물의 어떤 말이나 행동을 곧 그 영화 자체의 태도인 것으로 곧장 연결해서도 안 된다.)


영화 <완벽한 타인> 스틸컷


휴대전화는 사적인 영역이다. 그걸 소유하고 있는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비교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정교하게 조직하고 저장한다. 본인도 기억하지 못했던 몇 년 전의 사진이 클라우드에 보관되어 있는 것이라든지, 불완전한 인간이라면 기억하지 못할 정보를 놓치지 않고 가지고 있는 사물의 모습을 본다는 건, 눈 뜨자마자 온종일 함께하고 잠드는 순간에도 머리맡에 두곤 하는 그 가까운 존재에도 불구하고 생경하다. 말하자면 인간적인 무언가로는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인류가 '만들어낸' 많은 것들이 그렇겠지만. 어쩌면 우리가 특정 사용자를 인식하게 만들고 보안에 신경 쓰는 건 그런 '너무 완벽한' 물질의 속성을 '적당히 불완전한' 인간성으로 중화시키는 작업일 것이다.


자신의 휴대전화로 전해져 오는 모든 정보를 그대로 노출해야만 하는 상황은, 숨기는 무언가가 없는, 이를테면 '세경'(송하윤) 같은 인물에게도 난감한 상황을 만든다. 전화 한 통, 문자 한 줄, 이메일 하나. 단편의 정보는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내는 모든 과정과 맥락을 담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게이라는 사실'은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생의 매 순간 어떤 마음의 선택을 따라왔기에 오늘의 성적 정체성과 지향성을 가진 사람이 되었는지, 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어린 딸의 가방을 뒤져 콘돔을 발견했다고 한들 자신의 입장에서만 그 '정보'에 대해 판단할 뿐 면밀한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면 오해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영화 <완벽한 타인> 스틸컷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네가 즐겨 마시는 커피의 종류를 알고, 네가 하루에 몇 시간을 자야 개운함을 느끼는지 알고, 네가 좋아하는 가수와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인가? 나는 네가 커피향을 맡을 때 너를 천천히 물들이는 그 느낌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네가 일곱 시간을 자고 눈을 떴을 때 네 몸을 감싸는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를 모르고, 네가 좋아하는 가수의 목소리가 너를 어떤 느낌으로 적시는지를 모른다. 너를 관통하는 그 모든 느낌들을 나는 장악하지 못한다. 일시적이고 희미한, 그러나 어쩌면 너의 전부일지 모를 그 느낌을 내가 모른다면 나는 너의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 것인가."
(신형철, 『몰락의 에티카』에서)


어찌할 도리 있을까. 아무리 해도 우리는 모두 타인이다. 우리라는 말을 썼지만 사람과 사람은 결국 각자의 존재가 먼저인 타인이다. 내 심장이 뛰는 동안 나는 다만 나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지 타인의 심장이 무엇을 위해 움직이는지 완벽하게 아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 게 가능했다면 문학을 읽을 필요도 없을 테고, 타인을 조금이라도 더 잘 헤아리기 위한 모든 노력들도 그저 시간의 문제일 뿐일 테니까. 그러면 이 세계의 온갖 갈등과 다툼과 불화들도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르니까.


이재규 감독의 영화 <완벽한 타인>이 영제로는 'Intimate Strangers'를 기재해두고 있는 것과 달리, 원작이 된 영화의 제목은 'Perfect Strangers'다. 우리는 애써 완벽해지려 하기보다, 다만 친밀해지려고 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라는 말로 호명될지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완벽한 것이란, 서로가 누구와도 완전히 통할 수는 없을 타인이라는 사실뿐일 테니까. 드러냄과 감춤 사이, 다가감과 물러남 사이, 말하기와 들어주기 사이, 함께인 것과 홀로인 것 사이, 알려고 하는 것과 모르는 채로 두는 것 사이. 적당함과 알맞음을 찾아가는 건 평생의 일이다. 정의 내리기가 아니라 과정을 쌓아나가는 것. 함께라는 사실보다 다른 것이 우선하지 않게 서로의 마음을 같이 쓰는 것.




그러나 우리는 많은 경우 자신에게 그러한 것만큼 타인에게 너그럽지 않기 때문에. 섣불리 우리가 될 수 있다고 짐작하곤 하기 때문에. 대화하기 이전에 판단부터 하기 때문에. 혹은, 타인이라는 사실을 잊기 때문에. 쉽게 나와 당신은 다른 이들과 다를 거라고 믿어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 <완벽한 타인> 메인 포스터

<완벽한 타인>(2018), 이재규 감독

2018년 10월 31일 개봉, 115분, 15세 관람가.


출연: 유해진, 조진웅, 이서진, 염정아, 김지수, 송하윤, 윤경호 등.


제작: 필름몬스터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완벽한 타인> 스틸컷



*

영화를 보고서야 이렇게 몇 자 끼적여보지만, 사람은, 나는 언제나 무슨 일이 있은 후에야 겨우 어떤 것을 깨닫는다. 자신의 말, 자신의 행동, 그로부터 깨닫는 건 내가 조금 더 당신을 세심히 헤아리지 못했다는 것이며 자신을 돌아보는 데 소홀했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용서하기 위한 반성 말고, 당신에게 이해받기 위한 반성도 아니고, 스스로도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의 미약함과 한계를 발견하는 것 말이다. 그러니 나는 지난 우리의 일들을 쉽게 잊지 않을 것이다. 쉽게 잊지 않기 위해서 자주 멈춰 서고 자주 뒤돌아볼 것이다. 그때 나는 조금 더 불완전해지려 애쓰지 못했다. 섣불리 우리가 되었다고 믿어버리고서.


*

"드러냄과 감춤의 방식을 서로 존중할 수 있다면, 그리고 운이 좋다면, 우리는 여름을 통과하고 가을을 누리고 겨울을 견뎌내어 다시 꽃이 피는 것을 몇 번이나 볼 수 있을 거야."

(황경신, 『밤 열한 시』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