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om, 2020, 라이언 머피(Ryan Murphy)
3.5/5.0
미드 좀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프롬이란 일종의 파티다.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에 열리는 것을 시니어 프롬(Senior prom), 마지막에서 두 번째 학년에 열리는 것을 주니어 프롬(Junior prom)이라 한다. 원칙적으로 남녀 한쌍이 참가하며, 상급생이든 하급생이든 심지어는 졸업생이나 학교 밖의 사람이어도 상관이 없다. 이 행사는 미국의 하이틴들에게 아주 중요한 행사다.
<더 프롬>은 프롬과는 아주 동떨어져있을 것 같은 중년들로부터 시작된다. 브로드웨이의 전설이었던 디디(메릴 스트립)와 베리(제임스 코든)는 쇼를 올리지만 인신공격에 가까운 혹평을 듣는다. 만년 코러스 걸의 설움을 가진 엔지(니콜 키드먼)와 줄리아드를 졸업했지만 연기로는 돈을 벌지 못해 바텐더를 하고 있는 트렌트(앤드류 나넬스)까지, 네 사람은 자신들의 명예를 회복할 이슈를 찾는다. 그러다 인디애나주의 레즈비언 고교생 에마(조 엘런 팰먼)의 소식을 알게 된다. 그녀가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프롬에 참석하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말이다.
네 사람은 인디애나주로 향한다. 그녀를 도움으로써 자신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새 쇼를 홍보할 기회를 얻을 거라 여기면서. 그들이 오기 직전까지, 에마는 학부모회를 비롯한 여러 학부모들로부터 공개적으로 차별당하고 있었다. 교장선생님인 호킨스(키건 마이클)는 에마를 보호해주고 싶어 하지만 역부족이다. 에마는 결국 프롬에 참여하지 못할 위기에 처함은 물론, 같은 학교 학생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처지에 까지 놓인다.
<더 프롬>은 뮤지컬 장르의 영화다. 뮤지컬 영화들이 대개 그렇듯 화려한 무대 장치들을 영상 속으로 끌어와 화려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 사이에 심각할 수 있는 대화나 상황을 녹여내면서 말이다. 물론 이런 것들이 비약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뮤지컬 장르가 가진 강점이 무엇인가? 음악적으로 관객의 감성을 녹여내는 것 아닌가! 거기에 영상의 힘이 더 해져 울고 웃는 배우들의 모습을 클로즈업해 보여줄 수 있기까지 하니, 뮤지컬 영화가 스토리를 비약하면서도 관객의 감정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더 프롬>은 그러한 뮤지컬 영화의 장점을 매우 잘 활용하고 있다. 다른 평들에서 은근히 '지루하다.'는 말을 많이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관객이 음악에 몰입하는 대신 스토리의 비약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장르 특성상 그런 것들을 감안하고 음악과 춤을 즐긴다면 <더 프롬>을 더 재밌게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넘버들이 기가 막히게 좋으니 말이다.
또한 이 영화는 LGBTQ라는 주제를 가지고 가기 때문에 처음부터 모두가 예상하던 바로 그 결말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된다. 다만 그 뼈대를 중심으로 사랑스러운 우리 브로드웨이 중년팀의 서브 서사도 관심을 가질만하다. '편견 없는 사랑'이라는 주제에 부합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모든 서사가 사랑으로 이어진다. 그것이 이성적인 사랑이든, 동성적인 사랑이든, 혹은 가족애이든. 말하자면 사랑으로 가득 찬 영화라고 할 수도 있겠다. 오로지 주인공들의 이야기 같지만 세상 그 어떤 영화보다도 보편적이다. 감독의 생각을 읽어낼 수는 없겠지만, 너무나도 보편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스스로 비약을 허용한 게 아닐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사랑'을 말함에 있어 이보다 따뜻하기도 힘들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이들이라면 나 또한 사랑해주겠구나'하는 마음이 드는 건 나만의 착각은 아닐 것 같다.
차별에 대한 이야기도 뿐만 아니라, 이 영화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상처에 맞게 위로를 골라 잡을 수 있다.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나 같은 경우는 올 해가 너무 마음처럼 흘러가 주지 않아서 정체모를 우울감을 느끼고 있었다. 연말인데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지도 못한 체 집에만 틀어박혀 있어야 하는 것도 그렇고. 올 한 해를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더 프롬>의 디디를 보며 많이 위로받았다. 어쩌면 '실패'라는 건 주관적인 평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꼭 거창한 일에서 성공을 거두어야만 행복에 다가갈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깨달음도 함께. 이 우울함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길을 찾은 것 같다.
사람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칭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정말 따뜻한 영화였다. 연말의 화려함 속에서 외로움을 느낄 때, 사람들 사이에서 외딴섬같이 느껴질 때 가볍게 보면서도 위로받을 수 있는 영화다. 뮤지컬 영화의 교과서라고 하기에는 너무 좋은 뮤지컬 영화가 많기에, 즐길 수 있는 뮤지컬 영화 정도로 평하고 싶다. 요즘은 러닝타임이 긴 영화 대신 드라마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영화는 보고 싶고 무거운 건 보기 싫을 때 한 번쯤 다들 도전해보면 좋을 것 같다. 뮤지컬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두 말할 것도 없고. 메릴 스트립 팬이라면 더욱 추천한다. 메릴 스트립은 이번에도 매 장면 반짝반짝 빛나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