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버튼을 누르지 못해 발행이 안 된 10월의 글입니다
아주 오랜만에 글을 쓴다.
8월부터 꽤나 유명한 배우가 출연하는, 아마도 개인적 경험으로도 커리어로도 꽤 괜찮은 기회에 해당하는 좋은 영화에 합류했다. 원래 면접까지 보고 떨어졌던 자리라 잊고 있었는데 8월의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왔다. 최종 2인이었다는데 나 대신 뽑힌 사람이 나가게 되었다고 했다. 약간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지만 일자리에 자존심이 어딨나? 일자리는 주차장이라지 않는가. 다른 차가 나가면 내가 들어가는 법이다. 좋은 기회가 분명했기에 오케이 했다. 그렇게 아무런 준비 없이 촬영장에 합류해서 좌충우돌의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촬영이 끝나고 후반작업에 들어가기 전이라 말하자면 짧은 방학기간이다. 돌이켜보면 정말 쉽지 않았다. 이번 여름을 불태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 불태운 만큼 까맣게 타버린 얼굴과 팔만 남았다. 애플워치를 끼고 있던 팔은 그 모양대로 하얗게 자국이 남았다. 나름대로 밝은 피부를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밖에서 뛰놀던 어린 시절처럼 거뭇거뭇하다. 화장할 때 눈코입이 모여있는 중앙만 톡톡 두드리면 쉐딩 한 효과가 나니까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스스로 위안 삼고 있다.
어쨌든 이 작품은 나의 필모로서도 충분히 좋은 작품이 분명하고 경험으로서도 나를 한 단계 키워냈으며, 또한 나의 통장에도 좋은 영향을 미쳤다. 보통 우리 업계 사람들은 내 직군에 꼭 사람이 있어야만 촬영이 가능하다고 믿는데, 그런 믿음 덕분에 갑작스럽게 합류한 나는 월급 협상을 매우 유리하게 할 수 있었다. 어쩌다 보니 최근 받던 월급에서 꽤 올려 받게 되어서 오... 달콤한 일이었다. 그전에도 조금 고달프긴 했지만 여윳돈이 없었던 건 아닌데 하필이면 월급이 오르고서 밀렸던 임금이 입금되고... 적금이 만기 되고... 갑자기 통장에 본 적 없던 액수가 찍혔다.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 당연히 소비통제에 실패했다! 처음엔 생존을 위한 실패라고 위안 삼았다. 너무 한여름에 시작된 지방 출장이라 당장 가을 겨울 옷이 없었는데, 밤에 바닷가 촬영이 있다든지 새벽에 숲 촬영이 있다든지 해서 스텝들이 다 감기를 앓기 시작했다. 따뜻한 남쪽 나라(=부산) 사람인 나는 그 누구보다 추위를 많이 타기 때문에 바람막이라도 하나 있어야 했다. 그리고 숲이 험난하고 자꾸 비가 내려서 발가락이 젖어들어갔기 때문에 방수가 되는 고어텍스 워킹화가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고... 어느 날은 작업을 하다가 분노에 차서 청바지를 결제하고... 그러고 보니 결혼식 갈 옷이 없어서 또 옷을 결제하고... 몸뚱이는 하난데 옷은 왜 이렇게 많이 필요한지. 촬영이 끝나고 보니 또 그리운 사람들과 술도 마셔야 하고 밥도 먹어야 하고. 9월부터 시작된 소비 통제 실패가 끝나가는 10월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얼마나 썼을까? 못해도 한 달 치 월급은 통째로 날렸을 것 같다. 결혼식 갈 옷이 없어서 옷을 결제한 게 어제이기 때문에, 문득 브런치가 떠올랐다. 아, 글을 써야 한다. 브런치로 얼른 돌아가서 내 소비 통제 실패를 양심 고백하고 어서 내 마음을 바로 잡자. 그렇게 마음을 잡고 자려고 누운 찰나 번뜩하고 단어 하나가 생각났다. ‘ISA 계좌!’
나도 그게 왜 생각났는진 모르겠다. 얼마 전에 룸메가 언급해서? 유튜브에 지나가다 본 썸네일에 박혀있어서? 알 수는 없지만 갑자기 생각이 났다. 전에 뭔가 ISA계좌가 절세가 아니라 이중과세가 된다는 논란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슬쩍 검색해 보니 잠잠해져서... 해결이 됐나 싶기도 하고? 정확하게 이해는 안 되지만 어쨌든 3년간 목돈을 모으기에 적금보다는 나은 구조인 것 같아서 결국 중개형 ISA계좌를 개설했다. 최근에 만기 된 적금을 보고 있자니... 이게 목돈이 되어 들어오긴 했으나 과연 물가상승률을 반영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ISA계좌를 3년 가지고 있다가 전부 매도한 후 다시 개설하면 또 비과세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하니 매 3년마다 새로운 적금을 든다고 생각하면 할만하지 않을까 싶다. 매달 50만 원 입금을 목표로 TIGER S&P 500 ETF를 구매했다. 재테크 유튜버 ‘김짠부’ 씨가 영향을 많이 미쳤다. 갑자기 생각나서 유튜브를 들어가 봤는데 그녀가 다 함께 매달 구매해 보자고 하필이면 딱 그 타이밍에 나를 꼬드겼다. 가뜩이나 S&P500 관련 ETF에 흥미가 있었기 때문에... 그중에서 TIGER가 가장 우량주였기 때문에... 그리고 김짠부 씨가 구매했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구매하게 되었다. 3년간 잘 모아봐야지. 매달 50만 원이 쉬울진 모르겠지만 어떡하겠는가! 노오력을 해야지... 이게 내 노후대책이 되길 바라며 무슨 일이 있어도 ETF에 넣은 돈에는 2~30년 간 손대지 않아 볼 생각이다.
그리고 촬영 전에 파란색으로 뒤덮였던 나의 조그마한 주식들은 촬영이 끝나자 대부분 빨간색으로 바뀌어있었다. 이번 달 실현 수익 10만 원을 넘겼고 그 실현 수익들은 고스란히 또 재투자했다. 그리고 여윳돈이 좀 있어서 (그래봐야 또 조그마한 금액이지만) 아직도 파란 녀석들 중에 가능성이 보이는 놈에게 물타기를 해두었다. 어서... 빨간색으로 바뀌기를 바라며... 빨간색으로 바뀌면 딱 10%만 먹고 튀어야지...! 아직 종목 선택은 여러 자료 조사를 거쳐야 가능한 수준이지만, 원금을 잃은 적은 없다. 그걸로 충분히 만족스럽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조금씩 불어나고 있는 거니까. 시드머니가 100만 원 남짓이었던 시절이 지나 이제 300만 원 남짓이 되었다. 물론 내가 추가해서 넣은 돈들이 분명 더 크지만 이렇게 쫌쫌따리 불려서 재투자한 금액들도 포함이라 왠지 뿌듯한 마음이다. 그냥 이렇게 잃지 않고... 안전하게 계속 투자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렇게 소비 통제 실패를 양심고백하고, ISA계좌로 ETF 구매를 시작하고, 두 달간 방치했던 나의 조그마한 주식들에 다시 관심을 갖자니 갑자기 소비 통제를 실패했던 기간이 아무것도 아니게 된 기분이다. 나 생각보다 잘하고 있을지도? 두 달간 소비 통제에 실패한 것치곤 꽤 빠르게 다시 자리 잡고 있을지도? 하지만 안다. 이깟 기분이 중요한 게 아니다. 실패했었다는 걸 기억하고 꾸준히 해가야지. 실패한 건 실패한 거니까 말이다. 한 여름에 얼굴과 팔이 검게 타도록 불태워 번 돈들이 얼마나 쉽게 흘러나갔는지를 명심하며... 새롭게 시작한 나의 재테크를 이어나가야지. 그것밖에는 만회할 방법이 없다. 아직 젊으니까... 그렇게 소비한 금액은 또 몸뚱이를 불태워 벌기로 하자...! 화이팅이다 나 자신, 그리고 재테크 때문에 허우적대는 청춘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