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

by 어진

고향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과는 사뭇 다르게 나는 지금도 여전히 고향에 살고 있다. 1974년도 늦가을에 부부가 된 부모님은 서울에서도 가장 저렴했던 신정동 촌구석의 아주 작은 월세방으로 신혼살림을 시작하셨고, 일 년에 3-4번은 이사를 하며 떠돌았던 어느 작은 집에서 셋째이자 막내인 나를 낳으셨다고 했다. 당시 국가적으로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캠페인이 성행하던 터라 셋째를 낳은 우리 엄마는 친구에게 졸지에 '미개인' 소리까지 들어야 했지만, 비위가 약했던 우리 아버지는 내가 태어난 그 방에서 미역국 한 그릇을 뚝딱 드셨을 정도로 너무 기뻐하셨다고 한다.


부모님께서 독실한 기독교인이셨기에 우리 가족의 모든 삶은 교회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마치 달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 듯, 지금까지 서른 번 가까운 이사를 하면서도 언제나 교회의 행동반경 안에 있어야 했고, 아버지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서 38세라는 전무후무한 나이로 교회의 중책을 담당하는 장로직을 역임하셨다. 아버지의 장로 임직식이 있던 날, 당시 7살이었던 어린 나는 그 일들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알 수 없었지만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축하하며 사진 찍었던 즐거운 순간으로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전쟁통에 일찍 부모를 여의고 고아가 되었던 아버지의 젊은 시절은 베일에 쌓여있다. 다만 야간 공고를 졸업했다는 것과 하사관으로 군생활을 조금 더 길게 하면서 돈을 모아 신혼방을 마련했다는 것, 그리고 방직공장으로 취업을 온 스무 살 초반의 엄마를 만나 가정을 꾸린 후로 용달과 택시운전 등으로 5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온갖 고생을 하셨다는 내용 정도를 전해 들어 알고 있을 뿐이다.


당시 88 올림픽을 앞두고 정치는 어수선했을지 몰라도, 경제적 성장에 관한 기대감이 엄청나게 고양되어 있을 때 젊고 야망있는 당시의 청년들은 너도나도 집을 짓는 일에 뛰어들었고, 우리 아버지도 용달을 처분한 돈으로 종잣돈 삼아 건축업을 시작하셨다고 한다. 어렴풋이 생각이 나는 건 엄마는 늘 교회분들에게 고리의 사채를 조달해서 신문지로 돌돌 말은 뭉칫돈을 검은 비닐봉다리에 담아 아버지께 전해드렸는데 그때부터 엄마는 늘 우리 삼남매에게 '신용을 잘 지켜야 한다.' '돈을 잘 갚아야 한다'를 강조하셨다. 그리고 식기도 등 언제나 기도를 할 때면 '아버지 사업 독립하게 해 주세요' 라며 사업의 부흥을 위해 기도했는데, 독립이라는 단어의 의미조차 몰랐던 나도 으레 그래야 하는가보다하며 시키는 대로 곧 잘 따라 했다. 확실치는 않지만 아버지의 건축현장이 천안에 멀리 있어서 오토바이로 출퇴근하셨던 아버지를 늘 걱정하면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기를 속으로 간절히 바랬던 마음과, '돌핀'시계를 사달라고 몇 날 며칠을 엄청 졸랐는데 크리스마스 선물로 형과 내 꺼 두 개를 함께 사 오셨을 때의 뛸 듯이 기뻤던 순간이 떠오른다.


자세한 건 잘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아버지의 사업은 승승장구했던 것 같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반지하에서 2층으로.. 그리고 우리만의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하게 되고, 수동변속기에 파워핸들도 없던 르망을 타다가 당시 부의 상징이었던 각그렌저를 구매하면서 삶의 만족도는 정점을 찍게 되었다. 4월에 그렌저를 구매하고, 7월 한 달은 온 가족이 하와이와 미국으로 한 달 동안 장기 여행을 떠나 좋은 추억을 쌓고 그해 12월 눈이 많이 오던 크리스마스의 다음 날 아버지는 홀연히 우리의 곁을 떠나 절대자에게로 가셨다. 무슨 상황인지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시간은 성실히 흘렀고, 아버지의 부재는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중학생이었던 막내아들은 이제 아버지의 멈춰있는 나이에 가까이 다다랐다. 요즘 부쩍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는 이유가 아마 그 때문일까.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인생의 큰 물음 앞에 맞닥뜨릴 때마다 누군가 옆에서 내 삶을 찬찬히 들여다 봐주고 따뜻한 언어로 이야기를 들려줄 어른이 있으면 좋겠다고 늘 간절히 바랬는데 어쩌면 내 삶에는 허락되지 않은 사치스러운 바람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많이 흘러 이후의 내 딸 혜원이는 나를 어떤 아빠로 기억해줄까? 우리가 함께 보내는 이 시절을 어떤 감정으로 떠올려줄까.


유일하게 남아있는 사진 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