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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진 Jan 03. 2022

자신만의 광야가 필요할 때.

형에게 보내는 위로


2011년도에 형수와 혜린이, 뱃속의 둘째 세린이까지 

가족을 이끌고 커다란 이민가방 4개와 함께 훌쩍 LA로 떠난 형은

이제 10년 여의 시간이 지나서야 조금씩 안정을 찾는 듯

그동안 가슴 속에 꽉 묶어두었던 본인의 감정을 

아주 조금씩 풀어내고 있는 중이다. 


늦은 밤에 카톡으로 전화가 와서는 

본인이 8년 넘게 섬기고 있는 교회에서 감사히도

새해의 1월 한달동안 안식월을 주기로 하셨다며 

차를 렌트해서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고 

흥분된 목소리로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한다. 

한동안 여러 문제들로 계속 힘이 빠져 있었는데 

다행히 교회의 어르신들과 이야기가 잘 된 모양이다. 


/


돌이켜보면 내겐 지난 18-9년도가 잘 숨이 쉬어지지 않던 시간이었다. 

밤이 되면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나중에는 딸 혜원이가 엄마에게 '아빠 또 울어요?' 라며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시큰둥해 질 정도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아내와 동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카메라 3대 들고서 급하게 형이 있는 LA로 넘어가 

무작정 드라이브를 했던 때가 지금도 여전히 생생한데 

이제는 그 여행을 형이 떠나려 하고 있다. 


홀로, 고요히 / Nikon FM2
조슈아트리 파크 / Nikon FM2



영혼이 눅눅하다 여겨질 때 캘리포니아의 햇살을 맞아야만

다시 뽀송해질 수 있을 것같은 바램으로 떠난 여행은

오히려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 11월 초였음에도 꽤나 쌀쌀했던 날씨, 

혼자 식당을 들어가는게 부담이어서 매 끼니를 패스트푸드로 떼워야 했던 음식들,

그리고 정말 멀었던 이동거리 등으로 인해 생각만큼 잘 즐기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가장 좋았던 점이 있다면.. 비록 짧은 시간이기는 하나 

아주 낯선 환경으로 나라는 사람을 온전히 밀어 넣어 

그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도 전혀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내 눈 앞에 펼쳐진 풍경과 달려온 길들과 어느 때고 멈춰서서 

그 풍경들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다는 자유로움이 

가슴을 트이게 해주었던 거 같다. 

 

데스밸리, 자브리스키 포인트 / Leica M6. Across BW


신기하게도 열흘의 캘리포니아 여행을 다녀온 후로는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았다.

뭐랄까. 삶의 어느 한 단계를 넘어선 느낌이랄까. 


마흔을 넘긴 나를 인정하게 되고 내 주변의 환경과 사람들, 역할, 

가고자 하는 방향이 조금은 더 선명해져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비록 오랜 시간이 걸려도 천천히 걸을 수 있는 꾸준함과 함께

나 자신을 향한 신뢰와 믿음이 전보다는 좀 더 강해진 것도 같고. 


오늘부터 자신만의 광야를 향해 떠나는 형에게 이 말을 전해주고 싶다.

'지금까지 잘 해왔다고, 수고 많았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형은 잘 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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