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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진 Feb 12. 2022

어른은 없다.

그저 나와 타자가 있을 뿐. 


돌이켜 생각하니 이십 대의 나를 관통했던 가장 큰 문장은 

'도저히 모르겠다' 였었다. 


아주 작게는 당장 오늘 내가 무얼 하며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누구를 만나야 할지, 어떤 생각을 품고 살며 어떤 성품을 지닌 사람이 되어야 할지, 

도대체 신앙이란 무엇이고 타인과의 관계는 왜 이렇게 어렵기만 한 건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연애는, 결혼은, 아이를 낳아서 기르고 부모가 된다는 게 무엇인지 

도무지 하나도 모르겠는 것들 투성이었다. 


세상에 많은 자기개발서, 지침서, 인문학 책들이 있어도 썩 마음에 와닿지 않았고

교회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예배를 드리며 누군가의 설교를 들어봐도 

내 안의 갈증이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바닷물을 마신 듯 더 목마르기만 하다. 


생각해보면 20대만큼 정체성의 혼란이 오는 시기가 있을까?

내가 원해서 얻은 것도 아닌데 시간에 떠밀리듯 나이를 먹어

이제는 더 이상 청소년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대로 된 사회의 

구성원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한참 부족해 보인다. 

군대는 반드시 치러내야만 하는 커다란 숙제 같고 

대학은 엄청난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아서 

한두 살 먹어가는 중에 기대했던 나의 모습과 

현실의 내 모습 사이 괴리가 더욱 맘을 힘들게 했다. 






분명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나이대에 비슷한 과정들을 지나며

비슷한 고민들을 했을 텐데.. 선배들, 스승이라 불릴만한 이들은 

어떻게 그 시간들을 보냈는지 궁금하고, 그래서 가능하다면 그들에게 

삶의 지혜 같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면 너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이십 대 초반에 보았던 영화 '굿 윌 헌팅'이나 '죽은 시인의 사회' (로빈 윌리암스 ㅠㅜ)는

스승 혹은 멘토에 대한 나의 갈증을 더 키웠기에 학교에서는 나름대로 저명한 교수,

교회에서는 목회자 혹은 장로님들 중에 내가 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고 

귀 기울여 들어줄 수 있을 누군가를 계속 찾았음에도 이것은 마치 신기루이거나 

불가능한 미션처럼 여겨졌다. 


시간이 흘러 이제 나도 40대 중반의 나이 든 기성세대가 되어 보니

젊은 시절의 내가 그토록 찾고자 했던 선배나 스승, 혹은 멘토로서의 어른이 

현실에 존재하기가 왜 그리 어려웠던지 너무 절절히 알게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 하나, 자기 가족만 온전히 건사하기도 벅차기에

그 이상으로 눈을 넓혀 타인을 돌아본다는 것이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어쩌면 세상엔 그냥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타인들만 있는 듯하다. 

나이, 성별, 직무, 역할 등에 상관없이 나 아니면 타자. 

그 속에서 그저 가끔 마음 나눌 수 있는 친구 몇 명 정도면 

그래도 그나마 외로움을 조금씩 털어내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가 그 친구들이 아주 순간적으로 어른도 되었다가, 

선배나 선생도 되어 주었다가 다시금 철없는 아이나 동생이 되기도 할 뿐. 


혈연으로, 법적으로 규정된 관계가 분명 존재함에도 

눈에 보이는 관계를 넘어서는 사람들이 삶을 더 풍성히 만들어 준다. 

다만 그 누구에라도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나를 스스로 더 지켜가는 방식이라고 어느 순간 생각이 들면서 

오히려 어른을 찾고자 하는 강박에서 좀 더 편해진 거 같다. 

사실 우리 모두 오늘이라는 시간을 처음 살아보는 사람들 아닌가. 

그리고 그 오늘이라는 날은 매일마다 오고 가고. 



2019. 국제갤러리. Leica M6. film



그럼에도 나보다 조금 더 연배가 있는 분들과 

잘 지내는 이들을 보면 여전히 부럽기는 하다. 

그 살아온 시절들을 생생한 이야기로 들을 수 있음에, 

그 안에서 삶으로, 몸으로 터득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음이. 


https://youtu.be/ll4QIbU1kv4

'나의 아저씨'. 어른 by 손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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