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과 신앙에 관하여.
풀리지 않을 질문들을 잔뜩 짊어진 채로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방향조차 분명히 알지 못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러한 삶들 또한 나름의 소중함을 간직하고 있다. 흔히 사람의 인생을 한 편의 연극에 비유하곤 하는데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고유한 무대 위로 올려졌고, 그 안에서 자신의 배역에 맞는 연기들을 충실하게 해내며 살아간다. 상황에 따라서 역할은 다양하게 변하기도 하고 한 번에 여러 역할들을 동시에 감당해야 할 때도 있다. 나를 포함한 보편적인 사람들의 역할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보니 대개 어린 시절에는 누군가로부터 무언가를 받는 수동적인 형태를 띄게 되지만, 시간이 지나서 청년이 되고 장년이 될수록 받는 것보다는 내어주는 편으로 삶의 양태가 변해 간다. 누군가의 자녀일 때는 부모로부터 온전히 받기만 했던 것들을 부모가 되어서 고스란히 자녀에게 흘려보내다 보니 선조들이 ‘자식에 대한 부모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했던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타인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순간들이 분명 있었을 테지만 그보다는 조금 더 넓고 보편적인 사랑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를테면 요즘처럼 점점 높아지는 푸른 하늘과 풍성한 구름을 볼 때, 마냥 무더운 여름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선선한 바람이 내 피부에 쓱-하고 스칠 때, 조금 이른 퇴근을 하는 날이면 양화대교 위에서 주황빛의 하늘과 떨어지는 해, 한강 위로 비추는 햇살이 물결에 일렁이는 장면을 볼 때.. 어쩌면 만약 정말 신이 있다면, 그래서 신이 이 모든 세상을 창조했다면 분명 신은 미적 감각이 풍부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 줄 아는 탁월한 재능을 가졌을 거라 상상해 보곤 한다. 단조롭거나 지루하지 않게 세상을 컬러풀로 만들어 준 것도, 이 세상 어느 곳을 가더라도 중력의 넘침이나 모자람이 없어 붕붕 뜨지도 않고 땅으로 눕지 않아도 되게끔 설계한 것이 너무 신기하다. 때로 태양이 기분이 좋아서 어제보다 50도 정도 더 활활 태우거나, 기분이 우울해서 내일은 40도 낮게 열을 뿜어내지 않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감히 셀 수도 없는 무게의 바닷물이 해안으로 범람하지 않아서 해변가의 모래사장을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경험상으로 너무나 당연하지만, 생각해보면 일반상식으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너무도 특별하게 움직이는 어떤 시스템이 사람들을 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한치의 오차도 없이 날마다 매 순간마다 성실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믿을 때 안정감과 함께 정교한 시스템, 혹은 어떤 존재로부터 까닭을 알 수 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껴진다. 이 모든 것은 어느 개인이나 집단, 혹은 국가와 같은 거대한 조직도 본인들이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의 성질이 아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구하고 빼앗고 착취하는 이 세상에서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무조건적인 선물이 또 있을까. 날마다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24시간이라는 정량의 시간을 받고, 산소와 물을 공급받으며, 햇살과 중력을 누리고 산다. 밤에는 모두가 깊은 잠을 잘 수 있도록 햇빛을 거두고 대신에 은은한 달빛과 별빛을 내려서 새로운 하루를 준비할 수 있는 평안함을 제공받는다.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풍성한 대화를 나눌 때, 사랑하는 가족들과 살을 맞대며 체온과 심장의 진동을 느낄 만큼 서로를 꼭 안아줄 때, 늦은 밤 홀로 책상에 앉아 미처 적지 못한 글을 써내려 갈 때, 작지만 아늑한 내 방의 침구에 몸을 누이고 깊은 잠에 빠져드는 이 모든 순간들이 내겐 사랑이다. 어머니의 아들로, 내 아내의 남편으로, 우리 혜원이의 아빠로, 그리고 내 주위 고마운 사람들의 좋은 친구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 모든 삶의 면면에서 사랑을 발견한다. 어떤 형태를 띠지 않기에 어느 누구의 눈에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모든 이들이 바라고 추구하는 사랑은 이렇게 곳곳에 녹아서 스며들어 있다. 사랑을 받고 싶다면 그에 합당한 비용을 지불하거나 혹은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추라고 채근하는 요즘 시대에도 여전히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여러 형태로 우리에게 속삭이는 세밀한 음성이 있다.
형태가 어떠하든, 역할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오롯이 나의 존재만으로 사랑을 받는 그 기쁨을 알게 되었다. 엔도 슈사쿠의 ‘침묵’에 나오는 한 대목처럼 ‘나는 이제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사랑’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어느 찬양의 가사처럼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서 참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