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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진 Jan 28. 2022

Dear charles bro.

소울브로에게 보내는 편지.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보는게 정말 오랜만이라는 사실을 알아줘. 그것도 이렇게 불특정 다수가 읽는 열린 공간에서 특정인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생전 처음이지만 전화로는 왠지 그 느낌이 잘 전달되지 않을 듯 하고, 얼굴보고서는 더 얘기 못하겠고.. 카톡은 무성의한 듯, 그렇다고 진짜 손편지는 브로조차 기겁을 할테니 가끔씩 눈팅을 하는 이곳이 그나마 적절한 페이퍼이지 않을까 싶어. 


며칠 전에 브로가 기차타고 올라와서 만난 날, 실제로 우리가 얼굴을 맞대고 보는 건 1년 반만이었음에도 마치 엊그제 동네 편의점에서 함께 맥주 한잔 한 듯 전혀 어색하지가 않았지. 그건 아마도 함께 보낸 지난 13년의 세월이 쌓아올린 견고함 같은 걸거야. 농담처럼 얘기하긴 했지만 우리가 함께 일을 했던 그 곳에서의 시간들은 이제 전생의 어느 아련한 기억처럼 느껴지고.. 사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불편함이 있음에도 굳이 감사를 하나 꼽자면 브로라는 소울메이트를 만난거야. 그저 흘러갈 법한 관계였을 수도 있을텐데 어느 지점이 지금까지 우리를 이렇게 단단히 묶어주고 있는지 잘 모르겠으나 이유야 어찌되었든 오랫동안 형,동생으로 지낼 수 있어서 신기하게 여겨지네. 






이십대의 브로는 적당히 허세도 있고 자신감도 있었어. 모두가 보편적으로 좋아할 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었지만 내 눈엔 그게 참 매력이었거든. "형, 안경은 켈빈클라인 정도는 써줘야 되는 거 아냐?" , "형, OO 꺼하고 같이 아이패드 2개 12개월 할부로 샀어!"(OO는 charles의 구여친이자 현아내) , "형, 그런 시계는 너무 구려. 누가 차 챙피하게" , "이 형 맨날 서울사람이라고 하더니.. 서울 변두리에서 왔구만.." 나보다 다섯살이나 어린 친구에게 이런 류의 쿠사리(?)는 생전 처음이었음에도 그 모습이 꽤 귀여워서 나쁘지 않았었어. 


막 친해질 무렵에 예상치 못한 일들로 그 곳을 내가 급하게 그만두게 되고, 서울로 다시 올라오는 과정에서 정신없이 복잡했어도 서로의 근황은 제법 잘 주고 받았던 거 같아. 특히 브로가 상하차 택배 알바한다고 살이 쪽 빠졌을 때 형이 쪼들리는 생활비 쪼개서 맛있는 밥 사줬던 거 지금도 기억하지? 굳이 그날의 사진은 공개하지 않을께. 이십대에 만난 브로가 어느 새 올해 마흔이 되었네. 그 십여 년의 세월동안 그렇게 서로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생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노력해 지금 여기까지 온 거 알아.


가끔씩 답답할 때마다 브로에게 전화걸어서 농담도 하고 때로는 토로하듯이 쏟아낼 때도 묵묵히 잘 들어줬지. 특히 신앙적인 갈급함, 공동체의 부재로 인한 외로움이 엄습할 때 특히 더 많이 생각이 난 거 같아. 우리가 좀 더 가까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더라면, 세밀한 취향을 좀 더 자주 나눴더라면.. 며칠 전에 봤던 브로에게서 내가 지난 몇년 간 겪어왔던 의기소침함이 느껴져서 맘이 썩 좋지 않았어. 여러 상황들, 환경으로 인한 답답함이 있겠으나 형이 이야기 해줄 수 있는 하나는 그 시간들도 결국엔 다 지나가더라. 아플만큼 아프고, 괴로울만큼 괴롭고나면 또 평안한 날들이 오더라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왜 이런 시련들을 주시는지, 이 시간들을 지나며 어떻게 성숙해지기를 원하시는지 그 뜻을 전부 알 수 없다 하더라도 내가 이렇게 마음을 전하는 것처럼 그 분도 브로에게 그 마음을 전해주실 거라는 거, 함께 하실 거라는 믿음은 잃지 않고 잘 간직하길 바랄께. 





둘째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첫째와 둘째의 태어난 생년월일시간까지 왼쪽 손목에 타투로 새기면서 꽤나 흥분해서 막 자랑했던 때가 생각이 나. 점점 더 나이가 들어갈수록 살아간다는 행위 자체가 계속 무뎌지고 시큰둥해지더라도 아주 작게나마 브로의 삶 가운데 가끔은 가슴 떨리는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네. 앞으로 다가올 사십대의 나날들이 때로 버겁고 두려울 수도 있을거야. 그때마다 크게 숨 한번 쉴 수 있는 공간, 시간, 그리고 마음을 헤아려줄 수 있는 친구로 인해 생을 더 즐겁게 살아갈 수 있기를. 오늘도 평안히. 

이전 09화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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