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by 어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골격과 근육, 장기와 피부로 이루어진 육체 안에 눈으로 보이지는 않는 영혼과 정신, 감정과 기운을 담아서 살아간다는 사실이 얼마 전부터 새삼 너무 신기하다 여겨졌는데 요즘은 생각이 조금 더 확장되어 누구라도 자신이 부여 받은 단 하나의 육체를 가지고 평생을 살아야만 하는게 무척이나 가혹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 것이면서도 내 것이 아닌 것들. 혹은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 나라는 존재를 규정하거나 무기력하게 만드는 이런 상황에도 그 누구조차 아무런 항변을 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이런 메커니즘의 부조리함을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나는 내 스스로 남, 여의 성별을 결정하지 않았으며, 나의 얼굴, 키, 피부색, 곱슬머리, 시력과 치아도 내가 선택해서 취한 것이 없다. 태어난 연도와 생일, 나라와 도시, 가족, 부모, 형제 자매를 알지도 못한 채 이 세상에 나와서, 평생 내 이름이라고 불리울 낯선 이름을 누군가로부터 지음 받아 마치 그것이 정말 내 것인 양 남들에게 소개하며 살아왔다. 소년에서 청년으로 자라가며 점점 변해가는 얼굴과 목소리, 키와 몸무게의 외적인 변화들을 몸으로 겪어내면서 동시에 내면으로는 내가 누구인지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감정과 기운의 진폭을 고스란히 견디는 수밖에는 별 도리가 없었다.
엄마 손에 처음 이끌려 유치원을 갔을 때부터 오랜 세월 동안 나는 학생이기를 원치 않았으나 학생이었고, 떠밀리듯 사회로 나온 후로 회사원이기를 바란 적이 없었음에도 회사원이 되었다. 또한 이제껏 내가 알지도 못하는 이들을 무수히 만나서 일을 하고 돈을 벌며 생을 유지하는 이 형태를 한번도 꿈꾼 적이 없었다. 조금 더 어렸을 때 지금의 아내를 만나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을 예측하지 못했고, 혜원이라는 이름의 어떤 한 생명체가 나를 아빠라고 부르며 그 아이는 내 딸이라고 여겨지는 이 관계가 때로 한없이 낯설기만 하다.
과거의 어느 한 시점인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인지, 혹은 꿈을 꾸거나 영화 속 한 장면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상태로 오늘도 집을 나와서 일을 하고 누군가를 만나서 알듯 말듯한 대화들을 나누고,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무수한 감정을 삼킨 채 다시 집이라는 곳으로 돌아간다. 그리고서 어떻게 빠져드는지 알 수 없는 수면의 세계로 접어들어 몸과 마음을 조금 쉬게 하고선 다시 어떻게 깨어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다시 일어나 어제와 다른 듯 하지만 또 비슷한 일상을 날마다 살아가는 이 모든 상황이 너무 버거우면서도 한편으론 우습게만 느껴지곤 했다.
누군가를 만나서 어떤 대화를 나눠도 그 순간 뿐이다. 그날의 대화, 기분, 감정은 순간적으로 증발해버리고 다시 묵묵한 나, 무엇 하나 토로할 수 없는 나로 곧장 돌아온다. 나는 오늘 누구를 만난 거지? 무언가 엄청난 말들을 쏟아낸 것 같긴 한데 그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할까? 좋았을까, 지루했을까, 유익했을까, 하등의 쓸모 없는 대화들이었을까. 생각이 흐르면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다. 그 사람은 실존하는 사람인가? 우리 아버지, 28년전에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가 내 가슴 속에 여전히 살아계신 것처럼 그도 어딘가에 살아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유니콘처럼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그 무엇인가.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걸까? 영혼과 정신은 정말 천국과 지옥, 혹은 그 중간 즈음 어딘가를 향해 가거나 떠돌고 있는 걸까?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느꼈던 기쁨과 슬픔, 희망과 좌절감은 어디에 남겨져 있을까, 아니면 그대로 내 마음 안에서 사라져 버린 걸까? 그렇다면 나는 그때 왜 그렇게도 우울해하고 슬퍼했던 거지? 나의 외로움은 어디에 근거한 것일까.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실재하기는 하는 걸까. 나를 휘감고 있는 이 외로움, 혹은 외로움을 느낄 수조차 없을 만큼 메말라 버린 이 가슴은 마치 건조해서 늘 뻑뻑하기만 한 눈처럼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데 불편한 한 요소에 불과한 것일까.
질문은 끊임없이 이어지지만 그 누구 하나 속 시원히 답을 내려주지 못한다. 답을 바라고 던지는 질문은 아니어서 큰 기대를 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삶으로 보여주는 한 사람을 만날 수 없는 현실에 때로 조금은 서글프기도 하다. 모든 걸을 알고 있다는 듯 말하던 그 시절이 부끄러웠다. 나는 나를 모른다. 나는 타인도 모른다. 나는 이 세계를 모른다. 그렇기에 외로움은 내가 견뎌야 하는 너무나도 당연한 형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