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나를 휘감고 있던 감정은 무력감이었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무능력에서 기인한 무기력. 어떻게 해도 더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불안감이 온종일 치통처럼 욱신거렸고, 내게 주어진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그 외에는 어떤 것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대체 나란 인간은 왜 이 모양일까? 내가 없다면, 애초부터 없었더라면, 옥상달빛의 노래 가사처럼'내가 사라졌으면 좋겠어'라는 문구가 계속해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삶의 형태를 어느 정도 이뤘다고 생각했다. 사실 아주 큰 욕심을 부린 게 아니라..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며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만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지 않고, 가고 싶은 곳을 가며 가고 싶지 않은 곳은 가지 않겠다는 다짐.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통해 적당히 삶을 유지하겠다는 삶의 형태는 어쩌면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도 큰 욕심이었다는 것을.. 마치 꿈꾸듯 쉽게 생각했던 걸까.
모든 일이 내가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으니 그 안에서 불만과 함께 불행이 쌓인다. 일을 해야 하는 시간에 매여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없고, 비용의 제한으로 인해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질 수가 없다. 더 무언가를 해주지 못하는 것만 같아서 가족들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며, 무엇보다 타인에게 나라는 사람이 그다지 매력적이거나 끌리는 존재가 아니라는 일종의 거절감으로 상대적인 패배의식에 젖어 있었다.
늘 입으로는'나 우울해'를 달고 살았다. 아마 그 말을 듣는 이들도 함께 우울이 전이되어 힘들었을 테다. 운전을 하고 양화대교를 건널 때마다 핸들을 틀어서 한강으로 뛰어들고 싶다는 충동을 억제해야 했고, 아침에 일찍 등교를 하는 혜원이를 안아주면서 오늘이 혜원이를 보는 마지막 날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깊은 새벽에 침대에 누워 도무지 움직이지 않는 몸을 가만히 누이고 꽉 조여진 수도꼭지처럼 눈물마저 나지 않았던 날들을 견디고 버티는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잘 지내고 있는 걸까?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께는 어떻게 그 긴 세월을 지나왔는지 묻고 싶었고, 나보다 어린 친구들은 겪어야 할 날들이 그저 한없이 가엾게만 느껴졌다. 만약 신이 있다면, 그래서 신이 인간이라는 존재를 기계처럼 만들지 않고 어찌 표현할 수 없는 무수한 감정이란 요소를 부여했다면, 그건 축복이라기보다 저주일 것이다. 기쁨의 순간에 기쁨을 표현할 수 있는 존재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리고 슬픔의 순간에 슬픔을 표현하는 것은?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고, 사랑을 흘려보낼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본인 안에 가득 담긴 아직 형체화되지 않은 무언가를 글로, 그림으로, 말로 표현하기보다는 고구마를 입에 머문 순간처럼 그저 가슴 한두 번 두드린 채 그냥 그렇게 살아갈 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나를 모르겠다. 어떨 때는 이런 사람인데, 어떨 때는 저런 사람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이름들과 그에 따른 책임감이 때로 버겁고 부담스러워서 도망치고 싶다가도 또 그 속에서 평안함을 느낀다. 요즘은 감정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억지로 밀어냈는지 주변부로 밀려났는지 알 수 없지만 내 생에 이렇게 감정적으로 무딘 삶을 살았던 기억이 별로 없다. 감사한 일일까. 아니면 서글픈 일일까. 그마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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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어진.
나의 감정
'고유한에세이 2기' - 고수리작가님 수업
창비학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