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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다해 May 22. 2024

지난 1년간의 변화


얼마 전 병원에 다녀왔다. 다행히도 약이 잘 맞는 편이라 2~3개월 간격으로 약을 받아온다. 맞는 약을 찾기까지는 두 달이 조금 넘게 걸렸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당시에는 내게 맞는 약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긴 터널을 지나가는 기분이었다. 정말 운이 좋게도 맞는 약을 찾았지만, 과정은 절대 순탄하지 않았다. 5~6가지 약을 시도해 보았는데, 유난히 예민한 기질이어서 아주 소량을 복용해도 부작용이 바로 그리고 크게 나타났다. 단순히 약이 효과가 없어서 감정 조절에 도움이 안 되기도 했고, 두근거리거나 속이 메스껍고 불편한 증상에서 불안하고 초조한 증상이 악화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약은 복용 후 오히려 기분이 너무나도 안 좋아졌고, 기분이 마구 날뛰었다. 정말 무슨 일을 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유리로 된 20만 원짜리 러쉬 향수병을 깨부수는 일로 끝난 게 다행이었다. 세로토닌 계열의 약을 먹자, 온몸에 비 오듯 땀이 났다. 의사 선생님은 세로토닌 중독에 해당하는 증상이라고 했다.


정신과 약을 한 번에 모아서 먹으면 정말 사람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다가 멈춰버리거나, 몸에 탈수가 일어나거나, 어디에 머리를 박아서 죽거나. 이런 험난한 과정을 겪다 보니 맞는 약을 찾지 못하게 될까 봐, 평생 이렇게 나아지지 못한 채로 살아야 할까 봐 두려웠다. 그렇지만 의사 선생님은 아직 시도해 보지 않은 약이 많다며 나를 격려해 줬다. 결국 맞는 약을 찾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주로 약을 다 먹어갈때쯤음 병원을 찾는다. 약이 남아있어도 유난히 상태가 좋지 않으면 병원 상담을 잡는다. 상담 예약일을 기다리다 보면 또 힘든 순간은 지나가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힘든 순간을 잘 버텨냈고, 이제는 그 순간이지나갔을지언정정 의사를 찾아가서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고한다.의사 선생님이이 내 상태를 지속해서 파악할 수 있게 하여 나의 치료 과정에의사 선생님이 동참할 수 있도록 한다. 그렇게 나는 내가 좋지 않았던 순간을 공식화한다. 아직 방심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마지막으로 병원을 다녀왔을 때 간단한 검사를 했다. 병원에 다니며며 약을먹은 지 1년 정도 지났으니, 병원에 처음왔을 때에 비해서 상태가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해 보기기 위한 용도이다. 아직 병원에 다시 가지 않아서 결과를 듣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검사지에서 두 가지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눈물이 많아졌다’는 질문과 ‘든든하다’는 질문에 모두 그렇다고 답했다. 설문하다 보면 비슷한 어조의 질문이 무작위로 다시 등장할 때가 있다. 그렇지만 두 질문에는 일관되게 동일하게 답을 했다. 그만큼 내가 스스로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테다.


얼핏 보면 서로 반대되는 내용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이 두 가지가 모두 긍정적인 신호로 보인다. ‘든든하다’는 답변을 할 때에는 나의 짝꿍이 떠올랐다. 내가 힘들고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짝꿍에게 ‘쓰담쓰담’ 해달라고 한다. 옆에 있으면 물리적으로 껴안고 보듬보듬해준다. 통화를 할 때에는 말로 ‘쓰담쓰담’이라고 해준다. 직접 쓰다듬지 않아도 말에서 전달되는 위안이 있다. 내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짝꿍은 ‘다 괜찮아’라고 해준다. 짝꿍이 옆에서 계속 그렇게 이야기해 주니, 이제는 나 스스로에게도 그렇게 이야기해 줄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짝꿍의 입으로 그 말을 듣고 싶어서 굳이 전화를 건다.


병원에 가기 전에는 머릿속에 구름이 끼어있는 기분이었다. 내 기분을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했고, 멍했다. 울적하다고 느낄 때가 있기는 했어도 어찌할 바를 몰라 멍하니 앉아 밤새 드라마를 볼 때도 있었다. 병원에 다니기 전에는 오히려 눈물도 잘 나오지 않았다. 분명 기분이 좋지 않고 울고 싶은 마음은 드는데, 울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에는 상태가 좋지 않으면 곧잘 운다. 내가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내 감정에 솔직해지면서 내 신체도 감정에 반응하게 된 듯하다. 그래서 얼핏 보면 ‘눈물이 많아졌다’는 부정적인 신호로 읽힐 수도 있겠지만,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긍정 신호로 보인다.


병원에 다닌 지 벌써 1년이 되었다. 병원에 다니기 전 몇 년은 기억이 흐릿하다. 기억들이 잘 떠오르지 않고, 떠오른다고 해도 연도가 잘 구분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병원에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는 기억이 생생하다. 단순히 더 최근의 기억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병원에 다니면서 머릿속을 가득 채운 안개가 조금씩 걷힌 기분이다. 지금은 반드시 우울증이 낫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이대로도 살만하기 때문이겠지만, 상태가 좋아지지 않는다고 해도 그때마다 잘 견뎌낸 경험들이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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