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핑계로 병원을 안 간지 두 달이 되어간다. 9월 중순의 추석연휴 직전에, 1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퇴사했다. 비영리 법인의 사무국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일하던 곳의 재정상태가 악화되어 부득이하게 사무국 인원을 줄이게 되었다. 애정을 가지고 일하던 곳에서 해고를 당해서 마음이 좋지는 않았지만, 올 한 해는 개인적으로 하고 싶던 일들을 잘 마무리하며 보내기로 마음을 다잡았다.해고 통보를 받았을 때에는 여러모로 생각이 많았지만, 실제로 퇴사를 한 뒤에는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추석 연휴에는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다. 베트남에서 유학 온 대학원 동기의 결혼식을 핑계로 베트남에 5박6일 동안 다녀왔다. 그 옛날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에 유학가서 미국에서 짝을 찾았던 것 처럼, 나의 동기는 한국에 유학와서 여기에서 짝을 만났다. 두 사람 모두 베트남 사람이고, 부모님이 모두 베트남에 계시기에 베트남으로 결혼식을 치르러 갔던 것이다. 친구 결혼식을 핑계로 처음으로 동남아 여행을 다녀왔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권으로 향하는 일이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내 옆에는 짝꿍이 있었다. 교환학기를 위해 혼자 해외에 나갈 때에는 두렵고, 걱정되면서도 설레곤 했다. 그리고 그런 감정들을 모두 혼자서 겪어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짝꿍과 함께였다. 말도 통하지 않는 베트남으로 떠나는 길에도 짝꿍과 함께라는는 사실에 여러모로 마음이 든든했다.
베트남에 가서는 약 챙겨먹는 일을 곧잘 잊었다.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서 시간에 맞춰 나가는 일정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약을 챙겨먹을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보면 약을 챙겨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리지조차 못했다. 그렇게 약을 제대로 안먹고 돌아다녀서였을까, 한국에 돌아와서는 일주일 동안 거의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약을 제때 챙겨먹지 않은 나의 업보려니 생각하는 수 밖에. 약의 용량을 일시적으로 늘렸다. 게다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더 이상 나가야할 직장도 없었다. 밥과 약을 꼬박꼬박 챙겨먹고, 소파에 늘어져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시간을 보냈다.
게다가 일주일 뒤에 또 다시 출국 비행기에 올라야했기 때문에, 더더욱 잘 쉬어두어야 했다. 이번에는 필리핀이었다. 베트남은 친구 결혼식이었다면, 필리핀은 국제합창대회가 있었다. 어린이 합창단을 시작으로 기회가 되면 합창단에서 노래하려고 했다. 대학교 동아리 합창단, 서울 이태원에서 외국인들이 모인 합창단을 거쳐, 지금은 구에서 운영하는 구립여성합창단에서 노래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국내합창대회 성적이 좋았던 공을 인정받아, 올 해에는 필리핀에서 열리는 국제합창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베트남에서의 경험을 잊지 않고 이번에는 약을 잘 챙겨먹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만 눈물이 났다. 별거 아닌 일에도 감성이 흘러 넘쳤다. 다른 합창단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눈물이 났다. 특히 나보다 어린 나이의 사람들이 노래할 때 그랬다. 어린이 합창단을 보면서도, 대학 합창단을 보면서도 ‘아, 나에게도 저런 시기가 있었지’하는 마음에 울컥했다. 그 시절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음에 울컥했고, 또 이제 그 시간은 지나갔음에 울컥했다. 슬펐던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감동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자꾸만 울컥했다. 눈물을 훔치며 옆에 앉아있는 다른 단원들에게 들킬까봐 얼마나 난감했는지 모른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울컥하는 마음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때가 되면 지나가겠지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약을 더 잘 챙겨먹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가 밤에 잠을 푹 자지 못했다. 어쩌면 약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약을 처음 처방 받을 때에 나타난 부작용이 수면 방해였다. 약을 줄이니 잠을 잘 잘 수 있었고, 컨디션도 나아졌다. 가까운 시일에 병원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0월 말까지는 병원에 다녀오기가 어려웠다. 분명 직장은 다니고 있지 않지만, 계획된 일정들 때문에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10월 말에는 두 가지 계획이 있었다. 하나는 브런치 공모전에 응모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도서관에서 과학 강연을 하는 일이었다. 브런치 출판 공모전에 응모하기 위해서는 최소 10편의 글이 필요했다.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나면 글을 엄청 많이 쓸 수 있을줄 알았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일정들과 컨디션의 문제로 글을 마구마구 써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또 글로 완성하기에는 나의 지식이 부족하기도 했고, 또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아서 글을 마무리 짓기 어렵기도 했다. 고민과 수정을 거듭하다보니 글을 한 편씩 완성해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어찌저찌 10편의 글을 마무리지어서 공모전에 응모했다. 부디 공모전 심사하는 분들이 원석을 발견하는 마음으로 어여쁘게 봐주시기를 바라며 글을 제출했다.
도서관에서 과학 강연을 하는 일은 순탄하게 흘러갔다. 마침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다. 모교에서 하는 강연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수준으로 의미있게 느껴졌다. 근처에 간 김에 부모님 집에 가서 밥을 먹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청중은 대략 25명정도 였는데, 그 중에 물리학이 좋아서 온 사람은 두 명 뿐이었다. 그래서 좀 더 눈높이를 낮추어 설명하려고 했다. 강연이 끝나고 물리도 들어줄만 한지 물으니,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면 되었다.
다음 주에는 드디어 병원에 간다. 이번에 병원에 가면 좀 자주오라고 잔소리를 들을 것 같다. 안그래도 바쁘다는 핑계로 약을 잔뜩 받아가서는 약이 떨어질 때 즈음이 되어서야 병원을 찾는 게으른 환자이다. 약이 남아있더라도 상태가 안좋아지면 병원을 찾는데, 희안하게 그럴 때면 병원에 진료 예약을 잡는 날부터 서서히 상태가 좋아지더니 병원에 갈 때 즈음이 되면 상태가 아주 좋아진다. 상태가 안좋았다가 좋았다하는 사이클에서 좋아질 때가 되어서 좋아진 것인지, 아니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는 기대감으로 인해서 상태가 좋아진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어찌 되었던 병원 진료 예약을 잡으면 상태가 좋아지는 것은 확실하다.
의사 선생님께 이런 이야기를 두어번 했더니, 그러니 병원 좀 자주 오라고 이미 한 소리 들은 상태이다. 의사 말 안듣고 병원에는 자주 안오면서 병원에 오면 상태가 좋아진다고 하니, 의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할 법한 소리이다. 그렇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약을 다 먹은 것도 아니고 상태가 안좋지도 않으면 뭐하러 병원에 가느냐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이런 귀찮은 마음은 내가 적당히 살만하니 드는 마음이라는 자기반성적인 생각도 해본다. 게다가 의사 선생님께 한소리 들었으니, 그래도 한 번은 말을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이번에는 여러 일정들로 바빴다는 핑계가 있다. 이번에는 일정 핑계를 대고 넘어가고, 대신 다음 번에는 미리미리 병원에 다녀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