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laire Aug 11. 2016

기억하지 못하는 뇌 (3)

우리는 어디까지 알고 있는가  

지난 글:

기억하지 못하는 뇌 (1) - 환자 H.M.과 과학자들 

기억하지 못하는 뇌 (2) - 한 사람의 뇌를 둘러싼 과학자들의 드라마 


*이 글은 최근에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실린 기사를 번역한 것입니다. 곧 출간될 책(<Patient H.M.: A Story of Memory, Madness and Family Secrets> by Luke Dittrich, Random House>)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기도 합니다.






코킨이 뉴욕 회의에서 내밀었던 문서는 딱 한 장이었고 가장 중요한 부분은 단 두 문장이었다. “나 토머스 무니(Thomas F. Mooney)는 헨리 모레이슨의 보호자이며, 가장 가까운 친척이다. 따라서 나는 헨리 모레이슨이 사망 이후 남긴 것에 대해 관리할 자격이 있다.” 그리고 그의 서명과 날짜, 1992년 12월 19일이 적혀있다. 무니가 이 문서를 작성하여 헨리의 보호자가 되도록 주선한 것은 코킨이었다. 검인 법원 판사는 무니가 헨리의 가장 가까운 친척임을 인정하고 이를 허가했다. 헨리의 법적인 보호자가 되고 나서 무니는 가장 먼저 헨리의 뇌를 코킨과 그녀의 연구팀에 기증했다. 여기서 문제는, 무니가 사실은 헨리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코킨에게 무니와 헨리가 정확히 어떤 관계인지 질문했다.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 질문의 답을 찾아내는데 정말 오래 걸렸다. 나는 수많은 전화 통화를 하고 한 번은 무니의 집에 찾아가기까지 했다. 그는 항상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나와 만날 수 없다고 했다. 법 문서에 보면, 무니가 헨리의 사촌이자 조카라고 명시되어있다. 하지만 헨리의 삼대 가족사를 그려봐도 어떻게 무니와 헨리가 관계되어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무니는 그가 헨리의 팔촌이라는 것을 시인했다. 아주 먼 친척 관계인 것이다. 


사실 무니가 헨리의 보호자로 결정되었던 그때, 헨리의 사촌, 즉 사실상 헨리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프랭크 모레이슨이 가까운 동네에 살고 있었다. 과연 코킨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 나는 그가 있었는지 몰랐어요. 


그렇다면 코킨은 거의 반 세기 동안 연구한 사람에 대해서 아무런 조사도 해보지 않았던 것인가? 


- 아니요. 


- 그래서, 무니가 헨리의 가까운 사촌이 아니라는 것도 몰랐다는 뜻이군요? 


- 몰랐지요. 


그녀가 대답했다. 


나는 이 사건을 조사하면서 헨리의 가까운 친척들과 만났다. 그들은 헨리가 살아있는 동안 코킨과 연구팀이 그에게 했던 일들, 그리고 사망 이후 뇌에 대한 보호권을 두고 논쟁이 있었다는 사실을 듣고 놀랐고 언짢아했다.


나는 코킨에게 왜 무니가 헨리의 보호자가 되도록 주선했는지 물었다. 법적으로 보호자가 되기 전 10년도 넘는 시간 동안 헨리 자신이 실험 참여 동의서에 직접 서명했다고 했다. 코킨이 대답했다. 


- 보안이 한 층 더 필요했어요.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지 않는 사람들 중에 헨리를 위하는 누군가가 필요했어요. 


보안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무엇으로부터의 보안? 


- 헨리를 위해서, 그리고 MIT를 위해서.


MIT가 무엇으로부터 위험할 수 있나? 


- 몰라요. 우리 변호사들에게 물어봐야 해요. 




헨리 뇌조직의 디지털 데이터 역시 UC 샌디에이고를 떠나 전송되었다. [요약]


이렇게 생각해보자. 언젠가 어떤 열정적이고 똑똑한 젊은 연구원이 헨리의 뇌 슬라이드들을 보다가 이 신비하고 고귀한 연구 토픽에 매료되었다고 해보자. 그 연구원은 누가 그 뇌를 관리하고 어디에 소장하는지에 아무런 관심도 없을 것이다. 다만 데이터 창고를 좀 더 들여다볼 것이다. 뇌 슬라이스, 다른 영상 파일, 그리고 남아있는 뇌 조직들. 그리고 아무도 찾지 못했던 무언가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새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예전 발견들을 뒤집을 수도 있는 그런 발견을. 이 연구원은 헨리의 뇌 데이터뿐만 아니라 할아버지의 수술실을 떠난 직후부터 일생동안 헨리가 참여한 실험에 대한 모든 기록과 데이터들을 다시 점검해보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미래에 다른 누군가가 헨리의 신경해부학적인 데이터를 임상, 행동학적인 데이터와 다시 비교하고 연결 지을 수 있으려면 모두 헨리의 뇌, 그리고 관련 자료가 모두 잘 보존되어야만 한다. 


뇌 조직을 제외한 나머지 데이터는 대부분 수젠 코킨이 가지고 있다. 인터뷰 마지막 무렵 나는 코킨에게 그녀가 일생동안 모은 헨리의 실험 파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


나- 헨리의 파일들은 아카이브에 보관되는 것입니까? 


코킨- 그 파일들 말고, 나는 그의 수집품을 우리 학과에 기증할 거예요. 3층에 전시될 거예요.


(여기서 수집품은 헨리의 성경, 안경 등 그녀가 보관하고 있었던 헨리의 개인 유품을 말한다. 헨리와 그의 부모님 사진 역시 코킨이 보관하고 있었다)


나- 그렇군요. 그럼 파일들을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코킨은 몇 초 멈추었다가 대답했다)


코킨- 처분할 겁니다. 


나- 처분한다고요? 왜 처분하실 겁니까? 


코킨- 그걸 볼 사람은 또 없을 거예요. 


나- 없다고요? 아무리 그래도 저는 역사상 이렇게나 중요한 케이스에 대한 파일을 처분한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갑니다. 왜 처분하시려고 합니까? 


코킨- 하루 한 번 테스트해서 결론을 내는 것을 불가능해요. 아주 위험한 일이고요


나- 네, 그렇기에 더욱 당신의 실험 파일은 중요하지요. 몇십 년간 진행된 실험 기록이니까요. 


코킨- 그렇죠. 하지만 그 테스트들은 더 이상 쓸모가 없어요. 데이터 파일들도 더 이상 찾기 힘들 거예요.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논문으로 출판되었어요. 대부분, 아주 많은 부분이 출판되었어요.


나- 하지만 전부는 아니잖아요. 


코킨- 출판되지 않은 것들은, 아는지 모르겠지만, 그저 잘 진행되지 않은.. (긴 멈춤) 실험의 결과들이에요. 문제가 있었던 거예요. 그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켰다거나 하는 문제들이요. 


나- 하지만 그래도 말입니다. 출판된 것들도, 교수님이 아시다시피, 논문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고 실제 진행된 일은 출판된 것보다 훨씬 더 많지 않습니까. 수면 아래 있는 데이터들. 그런 것들은 보존되어야 할 가치가 충분하고도 넘칩니다. 사람들은 정말로 다시 들여다보고 검토하고 싶어 할 것입니다. 


코킨- 그걸 보존할 장소가 없어요.


나- 장소가 없다고요? MIT에? 아니, 얼마나 방대한 파일들이 있는 겁니까? 종이서류박스들로 가득한 창고 정도 필요한 건가요? 


코킨- 아니요. 그 정도는 아닐 거예요.


나- 그럼 그 실험 파일들은 대부분 집에 가지고 계십니까? 


코킨- 일부는요. 아니에요, 이제 없어요. 더 이상 없어요. 


나- 어딘가 창고에 있는 건가요? 


코킨- 아니요, 대부분 처분되었어요. 쓰레기통이나, 적절하게 처분되었어요. 


나- 대부분 벌써 처분되었다고요? 최근에?


코킨- 네. 이사할 때요.


나- 이사하실 때 처분했다는 말씀입니까?


코킨- 네.


나- 그럼 남아있는 것들도 모두 처분할 생각이십니까?


코킨- 아마도. 


나- 주제를 넘는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저는 미래 과학자들이 환자 H.M.에 대한 원본 문서가 모두 처분되었다는 사실에 아주 실망할 것 같습니다만.


코킨- 글쎄요, 다른 기억상실증 환자들도 많아요. 그들의 데이터 역시 공개되지 않습니다.


나- 하지만...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헨리는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 이해하는데 아주 근본적인 기여를 한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그 데이터는 모두가 공유하는 그의 유산입니다. 


코킨- 그래요. 하지만 그건 과학적으로 검토되지도 않았어요, 일단. 그게 중요하죠. 출판된 것들이 바로 믿을 만한 좋은 것들이죠. 검토된 것들. 신뢰할 수 있는 것들. 실험들은 좋은 실험이 아닐 수도 있어요- 제어 집단이 적절치 않다던가 하는 문제로 실험이 잘못 진행될 가능성이 많죠. 모든 실험이 출판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나-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 데이터를 분석할 수는 있죠.. 아마도 뇌와 기억을 계속 연구하면서, H.M. 의 기존 데이터들이 새로운 이론과 아이디어로 분석되어야 할.. 여하튼 그걸 없애버린다는 건 말도 안 됩니다. 그리고 이 데이터를 없애버리면 H.M.에 대한 당신의 의견만 남을 뿐이에요. 


코킨- 나만의 의견이라고 할 수 없어요. 나와 함께 일한 100명이 넘는 연구원들의 의견이죠. 


나- 동의합니다. 그렇지만요, 당신이 몇십 년간 연구팀의 리더였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의 이야기만이 남아있습니다. 당신이 데이터를 처분하면 그 이야기는 환자 H.M. 에 대해서 전혀 바뀔 수 없는, 개선될 수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릴 겁니다. 데이터를 처분하면, 사람들이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코킨- 과학자들이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을 겁니다. 


나- 그렇습니까.


코킨- 당신 같은 사람들만이 그렇게 말하겠죠. 


그녀는 틀렸다. 나 같은 비전문가들만이 아니다. 그 후 나는 여러 명의 신경과학자들과 이야기했고, 코킨이 데이터를 처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들은 모두 당황했고 “무책임한 데이터 처분”이라고 말했다. 




나는 과학자가 아니다. 그래도 책을 준비하면서 알 수 있었다. 세상에 발표되지 않은 데이터가 환자 H.M.에 대해서 알려진 것을 충분히 뒤집을 수 있다. 예를 들어, 3장짜리 임상 리포트를 보면 뇌 수술을 받기 전부터 헨리의 기억력은 상당히 손상되어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술 이전부터 왜 기억력이 손상되었는지, 그리고 이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여전히 확실하지 않지만, 그런 기록이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헨리에 대한 기록이 모두 보존되어야 한다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헨리의 다른 기록에서 또 어떤 예상치 못한 비밀이 밝혀질지 모르는 일이다. 적어도 그 데이터는 처분되어서는 안 된다. 


과학자들만이 데이터 처분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 할아버지가 헨리의 기억에 구멍을 만들었다면, 이제 그 수술로 덕을 본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 헨리에 대한 우리의 기억 속에 또 하나의 구멍을 만들고 있다. 


1953년 환자 H.M.의 뇌수술 과정. Credit Copper photoengraving printed by the Grenfell Press for NY Times


[이하 세 문단 생략]




원문: Luke Dittrich, "The brain that can't remember" The New York Times Magazine (published online Aug 3, 2016) http://www.nytimes.com/2016/08/07/magazine/the-brain-that-couldnt-remember.html

매거진의 이전글 기억하지 못하는 뇌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