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당신의 목소리를 끝까지 들었다

울지 않는 게 아니라, 무너지지 않을 뿐

by Helia

정적이 길었다. 해윤은 그 정적을 견뎠다. 견딘다는 말이 맞았다. 헤드폰을 쓴 귀 안쪽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밀어 넣었다. 방음벽은 소리를 막아주는 대신, 마음의 소리를 더 크게 만들었다. 숨을 들이마셔도 공기는 가슴 깊숙이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목 근처에서 걸렸다. 그걸 억지로 밀어 넣지 않았다. 해윤은 등을 곧게 세웠다.

무너진 채 듣는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이곳에 끌려온 게 아니었다. 선택해서 들어왔다.

선택했다는 사실만큼은 놓치지 않기로 했다.
유리 너머 기계실의 남자는 버튼 위에 손을 얹은 채, 해윤을 보지 못하는 사람처럼 시선을 낮추고 있었다. 그의 옆에서 작은 불빛이 규칙적으로 깜박였다.

장비가 살아 있다는 표시. 살아 있다는 건 언제나 잔인했다. 죽은 것은 돌아오지 않는데, 살아 있는 것들은 돌아오니까. 해윤은 테이블 위의 이름표를 흘끗 보았다.


Hae-yoon.

인쇄된 글자. 누군가가 그녀를 위해 준비해 둔 글자.

그 글자만으로도 벌써 한 번은 다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의 손이 그녀의 이름을 ‘여기’에 두었다는 사실이, 지나치게 사적이었다.
남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준비되시면 말씀 주세요.”

해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오른손을 들어 테이블 끝을 가볍게 눌렀다. 손끝에서 나무의 감촉이 올라왔다. 현실의 온도였다. 그녀는 그 감촉을 붙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말로 준비를 선언하는 순간, 무언가가 무너질 것 같았다. 몸이 먼저 ‘괜찮다’고 말하게 두었다.
남자가 버튼을 눌렀다.
짧은 잡음이 흘렀다. 전류가 스치는 소리. 이어서,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 말이 나오기 직전의 호흡. 해윤은 그 호흡을 알아챘다. 누군가의 숨은 낯설고, 누군가의 숨은 익숙하다. 익숙한 숨은 자꾸만 사람을 옛날로 데려간다. 해윤은 눈을 감지 않았다.

오늘은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해윤아.”
그 한 마디에, 가슴이 먼저 반응했다. 귀로 듣는 것보다 빨랐다. 몸은 늘 기억보다 빨랐다. 해윤은 턱에 힘을 주었다. 눈물이 고여도, 고개가 숙여지지는 않게. 누가 보면 무심하다고 생각할 만큼,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면 흔들릴 것 같았다. 흔들리면 무너질 것 같았다. 무너지는 건 어젯밤으로 충분했다.
목소리는 잠시 멈췄다가, 다시 이어졌다.

“이 말을 남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어.”

해윤은 숨을 아주 천천히 들이마셨다. 공기가 걸리며 목을 긁고 내려갔다. 그 긁힘이 오히려 그녀를 붙들었다. 살아 있다는 감각. 아프다는 감각. 감각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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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되지 못한 마음을 글로 쌓습니다. 기억과 계절, 감정의 결을 따라 걷는 이야기꾼. 햇살 아래 조용히 피어난 문장을 사랑합니다." 주말은 쉬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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