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의 빈자리를 데리고 걷는다.
정다온은 오늘도 익숙한 거리를 걷고 있었다.
익숙하지만, 오랫동안 피해서 돌아가던 길.
이현이 마지막으로 걸었던 길.
그 길을 다시 걷는 데, 열두 해가 걸렸다.
빵집은 사라졌고,
문방구가 있던 자리는 카페가 되었으며,
그와 함께 걷던 골목의 이름도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벽돌의 색,
비탈의 기울기,
가로등 아래 그림자의 모양은 여전히 같았다.
걸음은 점점 느려졌다.
그 길 끝엔 계단이 있었다
그가 자주 앉아 있던 계단.
담배를 피우던 습관,
커피를 홀짝이던 손동작,
말없이 앉아 있던 뒷모습이
기억 속에서 또렷하게 살아났다.
그날도 그랬다.
그는 조용히 앉아 있었고,
다온은 그 옆에 말없이 앉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함께 바라보던 노을 속에서
그가 말했다.
> “딱히 멀리 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
그 말이, 그가 남기고 간 마지막 문장이었다.
그땐 대수롭지 않게 들었다.
지친 하루의 끝에서 나온 피곤함쯤으로 여겼다.
붙잡아달라는 신호라는 걸,
그땐 몰랐다.
이제야 그 말이 생각난다.
그 말이, 사랑이었다는 걸.
그 말이,
‘여기서 너와 계속 있고 싶다’는 뜻이었다는 걸.
계단에 앉은 다온은
그의 마지막 말을 천천히 되새겼다.
손끝으로 시멘트의 결을 느끼며,
차가운 표면 위에 남은
따뜻했던 체온을 그려보았다.
바람이 불었다.
나뭇잎이 흩날렸고,
하늘은 금세 흐려졌다.
그의 빈자리는 이토록 구체적인데,
왜 그동안 그곳을 외면해 왔는지
이제야 이해가 됐다.
말없이 떠났지만,
그는 사실
떠나고 싶지 않았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말이 부족했던 사람,
감정을 숨기는 데 익숙했던 사람.
그리고 자신 역시,
그의 침묵을
이해하지 않으려 했던 사람이었다.
“네가 머물고 싶었던 길에서,
나는 자꾸만 도망쳤어.”
그녀는 중얼였다.
울지 않았다.
그저 마음 한쪽이 서서히 무너졌다.
계단에서 일어설 때,
무릎이 조금 저렸다.
하지만 한 발 한 발,
다온은 앞으로 걸었다.
그가 머물고 싶어 했던 길을
이젠 다온이 혼자 걷는다.
그의 빈자리를 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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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오늘,
돌아오지 않는 사람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