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상처를 숨기는 방법

입술 끝에서 멈춘 말들

by Helia

다온은 오늘도 평소처럼 알람을
끄고 일어났다.
기지개를 켜고, 커튼을 열고,
커피를 내렸다.
창밖엔 아직 비가 그치지 않았고,
습기 섞인 공기 속에서 침묵은
더 조용히 쌓였다.
그녀의 하루는, 겉보기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흘러갔다.

식탁 위에는 여전히 한 사람 몫의
그릇만 놓였다.
국을 데우고 반찬을 꺼내는 동작은 익숙했다.
하지만 앉은자리 맞은편이 텅 비어
있다는 사실은
늘 그 순간, 날카로운 현실로 다가왔다.
그녀는 그 자리를 보지 않으려
늘 눈을 살짝 아래로 떨어뜨렸다.

핸드폰을 열어 메시지를 확인하고,
‘없음’을 확인한 뒤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 화면을 껐다.
메신저 창엔 그의 이름이 고정돼 있었지만,
그 창을 더는 눌러보지 않기로 했다.

거울 앞에서 립밤을 바르며
입꼬리를 올려본다.
“괜찮아.”
속삭이듯 중일한 말은,
오늘도 어김없이 허공에 흩어졌다.
괜찮다는 말은,
가장 오래 쓰는 거짓말이었다.

회사에서는 평소처럼 인사를 건넸고,
점심시간엔 누군가의 연애 이야기에도
적당히 웃어주었다.
“다온 씨는 요즘 누가 없어요?”
누군가 묻자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
“없어요. 혼자가 편해요.”

그 말이 입에 익숙해질수록
속은 조금씩 더 멍들어 갔다.
혼자라서 편하다는 말은,
누구보다 안 편한 사람이 하는
말일지도 몰랐다.

퇴근길,
다온은 일부러 돌아가는 골목을 택했다.
그 골목엔 이현과 마지막으로 함께 봤던 연극 포스터가 있었다.
지금은 새로운 광고가 그 위를 덮고 있었지만,
그 아래 희미한 흔적은 여전히 보였다.
덧칠된 시간 위로
기억은 조용히 다시 깨어났다.

그녀는 멈춰 섰다.
그리고 다시 걸었다.

눈을 감았다 뜨는 사이,
그와 함께 나눈 말들,
끝내 말하지 못했던 말들,
마음속 어딘가에 감춰두고 있는
작고 뾰족한 상처들이
조용히, 하지만 선명하게 떠올랐다.

하지만 다온은
그 모든 걸 다시 마음속으로 눌러 담았다.

말하지 않으면
아프지 않은 척할 수 있으니까.
웃을 수 있으니까.
사람들 사이에 섞일 수 있으니까.

집에 돌아온 그녀는
불을 켜지 않은 채
조용히 침대에 앉았다.
가방에서 엽서를 꺼내
말없이 쳐다보다,
다시 조용히 서랍 속에 넣었다.

그리고 커튼을 닫았다.
밤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도록.


---

> 상처는 드러낼 때보다
숨길 때 더 선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