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네가 있는 곳

그가 없는데, 그가 있는 곳

by Helia

다온은 다시 그 길을 걷고 있었다.

이현과 마지막으로 함께 걸었던 가을 골목.

은행잎이 바람 따라 쓸리던 그날,

햇살이 따뜻해서인지, 그의 눈웃음도 유난히 부드럽게 번졌었다.

다온은 그날 이후로 이곳에 오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조심스럽게 다시,

그가 있던 자리를 향해 걷고 있었다.

​“다시는 오지 말자.”

그가 말했다.

“기억에 남겨두는 게 더 좋을지도 몰라.”

그 말에 다온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가 떠날 줄 몰랐다.

그렇게 조용히, 아무 말 없이 등을 돌릴 거라고는.

그가 떠난 지 어느덧 1년.

처음 몇 달은 매일 밤 무너졌고,

그가 앉았던 의자, 마시던 커피, 머물렀던 공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뻐근했다.

그래서 피했다.

기억은 너무 쉽게 부서지는 것 같아서, 손끝으로 닿는 순간 산산이 깨어질까 봐 두려워서.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다온은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그의 자리로 돌아왔다.

변한 것도 많았지만, 이상하리만큼 익숙한 공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

간판이 바뀌고 종소리가 사라진 카페 안,

창가 오른쪽 끝에서 두 번째 자리만은 그대로였다.

그곳에 앉아 이현은 커피를 마셨고, 그녀에게 천천히 웃어주곤 했다.

그 미소가 좋았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그 눈빛만으로 충분했다.

적어도 다온은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떠난 사람은, 어떤 말도 남기지 않았다.

이별이라는 단어조차 없이

그는 다온의 계절에서 완전히 빠져나갔다.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다온은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창밖을 바라보며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이현아… 듣고 있니?”

대답은 없었다.

그가 있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오늘 그 이름을 다시 불렀다.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부르면, 어쩌면 어디선가 대답할 것만 같아서.

​그렇게 몇 분, 아니 몇 계절을 지난 듯한 시간이 흐른 뒤

다온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자리는 비워둘게.”

그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도,

그 자리는 그녀에게만은 영원히 그의 자리로 남아 있을 것이다.

​카페 문을 나서며 그녀는 아주 조용히 미소 지었다.

눈물은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그를 향한 마음이 사라진 게 아니라,

그 마음을 품은 채 살아가는 법을 이제야 조금 배운 것 같았다.

​다온은 다시, 그가 있던 곳을 지나 걸었다.

그를 만날 수는 없겠지만,

그가 살아 있었던 순간들을 밟으며

아주 조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다온은 다시, 그가 있던 곳을 지나 걸었다.

그를 만날 수는 없겠지만,

그가 살아 있었던 순간들을 밟으며

아주 조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뒤돌아본다.

아무도 없지만, 괜히 한 번 더.

그 자리에 그가 서 있을 것 같아서.

바보 같지만, 그게 진심이었다.

​“너 없이도 살아.

하지만 가끔은… 네가 있었던 세상이 그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