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외면했던 마지막 말

그가 남긴 말의 끝

by Helia

그날, 그는 뭔가를 말하려다 말았다.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입술이 흔들리는 걸 다온은 분명히 보았다.
하지만 그땐 그냥, 피곤한 줄 알았다.
그 말이 그렇게 오래 남을 줄은 몰랐다.

“다 온아, 만약에… 만약에 내가 갑자기 없어지면…”

그 말이 전부였다.
그 이상은 없었다.
다온은 그 문장을 웃으며 잘랐다.
“뭐야, 무슨 유서 같은 소리야. 장난치지 마.”

그는 웃지 않았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그건 장난이 아니었다.
그가 사라지기 전, 유일하게 남긴 한 줄짜리 예고편이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 다온은 그 문장을 다시 꺼내어 본다.
마치 오래된 편지처럼.
읽을 때마다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문장.
어떤 날은 이별처럼, 어떤 날은 고백처럼.
그땐 왜 웃어넘겼을까.
왜 붙잡지 않았을까.
왜, 그 눈빛을 끝까지 바라보지 않았을까.

이현은 분명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했다.
그게 용서였든, 부탁이었든, 혹은 미련이었든.
다온은 그의 마지막 말을 끝까지 들어주지 않았다.
아니, 듣지 않기로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마음 깊은 어딘가에서는 이미 예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현이 곧 떠날 거라는 걸.
하지만 인정하기 싫었다.

남겨지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 사이에는
항상 완성되지 못한 문장이 남는다.
그 문장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되감기고,
가슴 한구석을 저미듯 파고든다.
그래서 더 잊히지 않는 것이다.

다온은 가끔, 혼자일 때 그 말을 다시 떠올린다.
“만약에 내가 갑자기 없어지면…”
그 말은 경고였고, 그녀는 외면했다.
어쩌면, 모른 척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떠날 리 없다고,
자신만은 예외일 거라고,
순진하게 믿었던 거다.

이젠 그 말을 끝내줄 사람은 없다.
그는 없다.
다온 혼자, 그 말을 붙들고 살아간다.
완성되지 못한 문장을 가슴속에서 매일 완성하고, 매일 지우며 살아간다.

창가에 앉아 커피잔을 내려놓던 순간,
다온은 나직이 속삭인다.
“그때 왜, 끝까지 말하지 않았어?”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대신 창밖에서 바람이 분다.
그가 머물던 계절의 냄새가,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간다.
짧고 조용하게, 그러나 분명히.

그 순간 다온은 문득 깨닫는다.
그 말의 끝은,
남겨진 사람이 채워야 하는 숙제라는 걸.
그건 떠난 사람이 아니라,
남아 있는 사람의 몫이라는 걸.

그래서 오늘도 그녀는,
그가 남긴 말의 끝을 스스로 덧붙인다.
“만약에 내가 갑자기 없어지면…
미워해도 돼.
그 대신, 오래 슬퍼하진 마.”

그건 어쩌면,
이현이 전하지 못한 마지막 말이자,
다온이 그에게서 듣고 싶었던 유일한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