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에 잠긴 기억
그 빛은 푸른 냄새와 함께, 새로운 이야기를 예고하는 듯했다. 다섯 마리 고양이는 숨을 죽였다. 골목 저편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단순한 바람이 아니었다. 마치 오래된 지붕 사이로 스며든 빗물이 파이프를 타고 흘러내리는 듯한 울림. 그러나 점점 또렷해질수록 그것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기억을 불러내는 낮은 울음이었다.
하늬는 눈을 가늘게 뜨며 속삭였다. “섬에서 장마가 시작되던 날, 이런 냄새와 소리가 함께였지.”
솔이 먼저 웅덩이 앞에 섰다. 빗물에 젖은 바닥은 이미 작은 거울이 되어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물 위에서 흔들리며 별처럼 반짝였다. 그 반짝임 속에 모래사장의 윤곽과 파도에 젖은 발자국이 스쳤다.
“이건 꿈이 아냐. 난 분명히 알아.” 솔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달이 조심스레 얼굴을 들이밀었다. 물결 위에 번진 환영 속에서, 어린 시절 함께 뛰놀던 고양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갈매기 울음과 함께, 해 질 녘 붉게 물든 모래언덕.
“기억도 이렇게 살아 있구나.” 달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따뜻했다.
루카는 한참을 물을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하지만 기억도 거짓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여줄 수도 있어.”
그 말에 하늬는 노트를 꺼내 빗방울이 번지는 종이에 또박또박 적었다.
‘빗물에 잠긴 기억 – 우리를 잊지 않는 바다의 숨결.’
글자는 물에 번지지 않고 오히려 짙게 새겨졌다. 마치 바다가 직접 문장을 남긴 듯.
그때, 하얀 고양이가 웅덩이 가장자리에 발을 디뎠다. 순간,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졌다. 후드득, 후드득. 금세 골목은 빗소리로 가득 찼다. 담벼락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가 모여 웅덩이는 작은 호수처럼 넓어졌다. 그 물 위에 다섯 마리의 얼굴이 겹쳐졌다. 그리고 그 옆, 잊었다고 믿었던 그림자가 떠올랐다.
솔이 숨을 멎은 듯 외쳤다. “저건… 진영이잖아.”
섬에서 함께 자랐으나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친구. 다들 언젠가 파도에 삼켜졌을 거라 생각했던 그 이름이, 빗물 속에서 또렷하게 불려지고 있었다.
하늬는 펜을 움켜쥔 채 손을 떨었다. 달은 눈동자를 크게 뜬 채 한 발 다가섰다. 루카는 깊은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 아직 어딘가 살아 있다는 거야?” 솔의 목소리는 흥분과 두려움이 뒤섞여 떨렸다.
번개가 하늘을 가르며 골목을 순간적으로 파랗게 물들였다. 물결은 요동쳤고, 빗속에서 울음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그것은 분명히 진영의 목소리였다.
하얀 고양이가 고개를 들어 골목 끝을 바라봤다. 거기엔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또 다른 그림자가 있었다. 눈동자 하나가 희미하게 반짝이며, 다섯 마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루카가 낮게 말했다. “기억이 우릴 속이는 게 아니라면, 그 눈은… 진짜일지도 몰라.”
하늬는 노트 위에 덧붙였다.
‘잃었다고 믿었던 이름이, 다시 우리를 부르고 있다.’
비는 쏟아지고 있었고, 골목은 점점 깊은 바다처럼 잠겨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잊힌 친구의 목소리가 더욱 선명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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