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불빛 너머의 그림자

by Helia

부둣가에 몰아치는 눈발은 멈출 줄 몰랐다. 낡은 배 틈새에서 새어 나온 불빛이 바람에 흔들리며 그림자를 길게 늘였다. 검은 고양이가 고개를 들어 다섯 마리를 바라봤다.

“너희가 잃어버린 건 여기에 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깊었다.

다섯 마리는 서로 눈빛을 교환한 뒤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눈송이가 파도처럼 쏟아져 선체를 뒤덮고 있었고, 삐걱거리는 나무 소리가 긴장감을 더했다.

그곳, 젖은 그물 위에 어린아이가 쓰러져 있었다. 작은 몸은 떨리고 있었고, 손등 위엔 눈송이가 녹아 맑은 물방울로 스며들었다.

“인간 아이…?” 루카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솔은 으르렁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이건 함정일지도 몰라. 우리를 유인하려는—”
“아니야.” 달은 눈을 크게 뜨며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저건 지쳐 쓰러진 눈빛이야. 길을 잃은 거야.”

하늬는 멍하니 아이를 바라봤다. 낯설지 않은 향기가 바람에 섞여 왔다. 집 안의 따스한 공기, 책장 사이 흘러나오던 잔잔한 웃음. 잊었다고 믿었던 기억이 스며들었다.

검은 고양이가 낮게 말했다. “이 아이는 버려진 게 아니다. 주인이 병원으로 실려 가 정신없는 사이, 네가 집을 나선 뒤 돌아오지 않자… 아이가 널 찾으러 나온 거다.”

엘란이 숨을 고르듯 말했다. “주인이 퇴원해 집에 돌아왔을 땐 이미 네가 사라진 뒤였지. 그래서 이 아이는 울고불고하다 결국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온 거야. 너를 찾겠다고.”

하늬의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그 순간, 아이의 입술이 아주 미약하게 움직였다. 눈보라 속에 묻힌 듯 가느다란 목소리.

“… 하…늬…”

펜이 하늬의 발밑으로 떨어졌다. 모든 시선이 동시에 그에게 향했다.

솔은 숨죽여 속삭였다. “네 이름을… 부른 거야.”
루카는 믿기지 않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럼 이 아이가…”
달의 목소리는 떨렸다. “네 집… 네가 떠나온 집의 아이.”

하늬의 귀가 눈발 속에서 흔들렸다. 매일 불러주던 목소리, 품에 안아주던 따스한 손길. 잊히지 않았던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조심스럽게 다가간 하늬는 아이의 차가운 손등에 코끝을 댔다. 희미한 체온이 아직 남아 있었다.

검은 고양이가 조용히 덧붙였다. “잃어버린 건 고양이가 아니라, 서로의 자리였다.”

눈보라는 여전히 부둣가를 뒤덮었지만, 흔들리는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선명하게 타올랐다. 그 빛 아래, 쓰러진 아이와 하늬의 눈빛이 겹쳐지며 새로운 운명을 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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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되지 못한 마음을 글로 쌓습니다. 기억과 계절, 감정의 결을 따라 걷는 이야기꾼. 햇살 아래 조용히 피어난 문장을 사랑합니다." 주말은 쉬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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