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남은 자리
하니가 떠난 아침, 섬은 유난히 고요했다.
밤새 내린 눈은 아직 다 녹지 않았고, 부두엔 바람의 짠 냄새가 남아 있었다.
루카는 그 자리에 오래 서 있었다. 멀어져 가는 큰 배, 그 위에서 마지막으로 꼬리를 흔들던 하니의 모습이 바람 속에 남아 있었다.
“가버렸네.”
솔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목소리가 파도에 섞여 사라졌다.
엘란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래도, 그건 끝이 아니야.”
루카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등대의 불빛이 천천히 돌며 바다 위를 비췄다.
그 빛은 멀리까지 닿아, 길처럼 바다 위에 흩어졌다.
“우린 이제 뭐 하지?”
루카의 물음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바람이 불어와 그들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 바람엔 하니의 냄새가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
펜이 코끝을 들이밀었다.
“아직 하니 냄새가 나.”
루카는 살짝 웃었다.
“그래. 완전히 떠난 건 아니야.”
그날 오후, 네 마리 고양이는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솔은 오래된 등대 아래에 앉았다. 낮에도 불빛은 쉬지 않고 돌고 있었다.
그 빛은 바다를 넘어, 하늘로 이어지는 듯했다.
솔은 그 불빛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하니, 너라면 저길 따라가고 있겠지.”
그 말과 함께 눈가가 뜨거워졌다.
하니가 떠날 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게 자꾸 마음에 걸렸다.
‘조금만 더 머물러줬다면…’
하지만 등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불빛이 돌며 그의 얼굴을 스쳤다. 눈물 한 방울이 반짝이며 떨어졌다.
루카는 숲으로 들어갔다.
눈 덮인 길 위에 발자국이 새겨졌다.
하니와 함께 걷던 길, 뛰던 자리, 웃던 소리.
그 모든 게 여전히 살아 있었다.
루카는 나무 아래에서 멈춰 섰다.
“괜찮아. 우린 여길 지킬게. 네가 그랬던 것처럼.”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 사이로 한 줄기 햇살이 비쳤다.
그 빛이 마치 새로운 약속처럼 느껴졌다.
엘란은 부두로 돌아왔다.
파도가 철썩이며 돌을 때렸다.
그 물결 속에서 하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잊지 마, 엘란. 우리가 걸었던 길은 결국 하나로 이어질 거야.’
엘란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파도 소리와 바람의 숨결이 하나로 섞였다.
그 순간, 그는 이상할 만큼 평온했다.
펜은 언덕 위에서 바다를 바라봤다.
붉게 물든 하늘 아래, 등대의 불빛이 멀리 깜빡이고 있었다.
“하니는 지금 어떤 하늘을 보고 있을까?”
펜은 혼잣말처럼 물었다.
그리고 곧 미소 지었다.
“그래도 같은 하늘이겠지.”
그 말이 바람에 실려 바다로 흘러갔다.
밤이 찾아왔다.
네 마리 고양이는 다시 등대 아래로 모였다.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대신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빛이 바다 위에 흩어지고, 등대의 불빛은 그 사이를 천천히 돌았다.
“하니가 떠난 게 슬프진 않아.”
루카가 말했다.
“그 대신 우리가 남았잖아. 여긴 하니가 사랑했던 섬이니까.”
솔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그 마음을 이어가야 해.”
엘란이 조용히 덧붙였다. “등대의 불빛이 꺼지지 않게, 우리가 지켜야지.”
펜이 작게 웃었다. “그럼 괜찮아. 언제든 돌아올 수 있겠네.”
그 말에 모두의 눈빛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등대의 불빛이 네 마리의 얼굴을 차례로 비췄다.
그 빛이 돌 때마다, 서로의 그림자가 겹쳤다.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마음속은 따뜻했다.
그건 분명 하니가 남기고 간 온기였다.
“잘 가, 하니.” 루카가 속삭였다.
“우린 여기 있을게. 네가 돌아올 때까지.”
솔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엘란은 하늘을 바라봤다.
펜은 등대의 불빛을 향해 마지막으로 미소 지었다.
등대의 불빛은 네 마리를 비추며 천천히 돌았다.
그 불빛 아래서, 그들의 그림자가 하나로 이어졌다.
별빛이 바다 위를 건너가고, 파도는 노래하듯 속삭였다.
“우린 여전히 같은 하늘 아래 있어.”
그 말이 바람을 타고 섬의 끝까지 흘러갔다.
그리고 그 밤, 등대는 끝까지 꺼지지 않았다.
그렇게, 섬의 밤은 다시 평온해졌다.
바람은 잠들고, 빛은 돌고, 파도는 조용히 노래했다.
남겨진 고양이들은 서로의 온기 속에서 눈을 감았다.
그들의 마음 어딘가엔 여전히 하니가 있었다.
멀리 파도 너머, 그 빛을 따라가던 회색빛 고양이의 이름처럼.
이야기는 그렇게, 아주 조용히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