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의 마지막 빛
바다 위엔 새벽빛이 흘렀다. 잔잔한 파도 사이로 섬의 그림자가 천천히 물들어가고 있었다.
하니는 품 안의 아이를 꼭 끌어안은 채 그 빛을 바라봤다. 아이의 숨결이 작게 오르내렸고, 그 미약한 리듬이 파도와 함께 흔들렸다.
“이제 정말 끝난 걸까…”
하니의 속삭임은 바람에 스며 바다로 흩어졌다. 그러나 바다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물결이 부드럽게 배를 감싸며 길을 열어주었다.
배의 엔진 소리가 낮게 울렸다. 철썩이는 물결 사이로 갈매기 울음이 섞였다. 하니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순간, 마음속에 떠올랐다.
섬의 바람, 달빛, 루카의 웃음, 솔의 울음, 엘란의 고요한 눈빛, 펜의 작은 손짓…
모든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와 하니의 가슴을 채웠다.
“이제 내가 잊지 않으면 돼.”
그 말은 다짐처럼, 혹은 기도처럼, 바다 위에 번져나갔다.
멀리 수평선 너머로 도시의 불빛이 희미하게 보였다.
어쩌면 저기엔 여전히 같은 하늘이 있고, 같은 달빛이 떠 있을 것이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따뜻해졌다.
아이의 손가락이 살짝 움직였다. 하니는 놀라 품을 들여다봤다.
작은 눈꺼풀이 천천히 떴다. 아직 희미한 눈동자였지만, 그 안엔 분명 생기가 깃들어 있었다.
“하니…”
하니의 눈이 젖었다. “응, 나 여기 있어.”
“우리, 집에 가는 거야?”
하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집으로 가는 길이야.”
그때 배 안으로 햇살이 들어왔다. 금빛 조각들이 아이의 머리칼에 스며들었다.
바람은 부드럽게, 마치 누군가의 손처럼 두 존재를 감싸 안았다.
멀리서 항구의 등대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 빛은 따뜻하고, 오래된 약속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배가 부두에 닿았을 때, 하니는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그곳엔 한 여인이 서 있었다. 눈가엔 눈물이 맺혀 있었고, 두 손은 떨리고 있었다.
아이는 하니의 품에서 고개를 들었다. “엄마…”
그 한 마디에 세상이 조용해졌다. 여인은 아이를 향해 달려왔다.
“내 아가…!”
그녀의 품에 안긴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하니는 그 옆에 서 있었다. 말없이, 그러나 누구보다 따뜻한 눈빛으로.
여인은 하니를 바라봤다. “하니… 정말 너구나.”
그 목소리에 하니의 귀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대답 대신 꼬리가 부드럽게 흔들렸다.
그 한 동작에, 모든 말이 담겨 있었다.
햇살이 항구 위로 퍼졌다. 갈매기들이 날았고, 물결은 부서지며 반짝였다.
하니는 아이와 여인이 손을 맞잡는 모습을 바라봤다. 그 모습이 너무도 평화로워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루카, 솔, 엘란, 펜… 보고 있지?’
하니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 드디어 돌아왔어. 그리고 괜찮아.’
그 순간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 속에서 네 마리 고양이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수고했어, 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 사이로 햇살이 흘러내렸다. 그 빛은 섬의 하늘과 이어지고 있었다.
하니는 천천히 발을 옮겼다. 아이와 여인의 뒤를 따라 오래된 골목길로 들어섰다.
담벼락에 남은 이끼 냄새, 철문이 열리는 소리, 먼지 낀 유리창, 그 안으로 스며드는 빛.
모든 게 익숙했다. 그리고 그 익숙함이 너무 따뜻했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바닥이 살짝 삐걱거렸다.
아이의 웃음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여인이 그 웃음을 따라 미소 지었다.
하니는 창가로 걸어가 앉았다. 창밖엔 바다가 보였다.
그 파도는 여전히 섬을 향해 출렁이고 있었다.
하니는 꼬리를 말며 눈을 감았다.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니, 다시는 가지 마. 여긴 우리 집이야.”
그 말에 하니는 부드럽게 눈을 떴다. 창밖의 바람이 커튼을 흔들었다.
햇살이 창틀에 내려앉았다. 그 빛이 하니의 털에 닿아 반짝였다.
멀리, 바다 위엔 등대가 깜빡이고 있었다.
섬의 등대였다.
그 불빛은 마치 작별 인사처럼, 또 다른 시작을 알리듯 천천히 점멸했다.
하니는 조용히 속삭였다.
“안녕, 나의 섬. 그리고 고마워.”
그 순간, 바람이 문틈으로 스며들었다.
바다의 냄새, 섬의 기억, 그리고 달빛의 온기가 함께 들어왔다.
하니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그 하늘은 여전히 이어져 있었다.
섬의 하늘, 도시의 하늘, 그리고 그들을 품은 하나의 하늘.
그 아래에서 하니는 미소 지었다.
파도는 여전히 밀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언제나처럼 —
파도 너머의 집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