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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닮아 있는 봄빛

by Helia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날 아침 이 집에는 아주 작은 변화 하나가 먼저 들어와 있었다. 햇빛은 평소보다 부드럽게 스며들었고, 공기 중에 떠 있는 먼지들조차 느린 속도로 흩어졌다. 마치 누군가가 이 집의 시간을 살짝 늘려놓은 것처럼 고요한 아침이었다.

하린은 방문을 닫은 채 침대 끝에 앉아 있었다. 두 손으로 사진을 가슴에 꼭 붙들고, 숨을 죽인 채 오래된 얼굴을 바라보았다.

사진 속 오빠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눈매, 입꼬리, 턱선.
어딘가 낯익고, 어딘가 자신과 너무 닮아 있었다.

마치 거울 속의 또 다른 자신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사실은 하린에게 이상한 안도감과 동시에 알 수 없는 슬픔을 함께 안겨주었다. 그래서 사진을 더 꽉 움켜쥐었다. 손등에 힘이 들어가 작은 핏줄까지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 시각, 거실에서는 금희가 식탁을 정리하며 아이들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작은오빠는 식탁 주변을 맴돌며 뭔가 기다릴 때처럼 들떠 있었고, 큰오빠는 귀찮다는 듯하면서도 가끔씩 방문 쪽을 슬쩍 바라보았다. 세 사람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마음속에는 같은 생각이 변주처럼 깔려 있었다.

‘하린이 나올까?’

그때 문 안쪽에서 아주 조용한 소리가 났다.

사락—

문고리가 아주 약하게 흔들렸고, 문이 천천히 열렸다. 손바닥 한 장만 열린 작은 틈. 그 틈 사이로 하린의 얼굴 일부가 비쳤다.

작은오빠는 눈을 크게 뜬 채 멈춰 섰고, 큰오빠는 무표정한 척했지만 눈동자가 조금 커졌다.

하린은 조용히 한 발을 내디뎠다.
또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

가슴에 사진을 꽉 안은 채 천천히, 마치 소리를 내면 모든 게 깨져버릴 것처럼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작은 발끝이 식탁 근처에서 멈추었을 때까지 누구도 빠르게 움직이지 않았다.
하린이 다시 문 안으로 사라질까 봐, 그 문을 닫아버릴까 봐.

그러다 큰오빠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하린이 들고 있는 사진을 향해 시선을 내렸다.
사진 속의 아이를 가만히 보더니, 다시 하린을 바라보았다.
눈매, 코 끝, 턱선.

두 얼굴을 번갈아 확인한 그는 아주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쌍둥이라더니… 진짜 닮았네.”

그 말은 어떤 감정도 실리지 않은 평범한 말투였다.
하지만 하린에게 그 말은 별처럼 떨어지는 한 문장이었다.

닮았다.
누군가가 처음으로 자신과 오빠를 같은 사람처럼 이야기해 준 순간이었다.

하린의 심장 안쪽 어딘가가 조용하게,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사진을 쥔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정말 아주 조금 올라갔다.
보일까 말까 한 미소.
하지만 분명 웃음이었다.

그 미세한 움직임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본 건 작은오빠였다.

그는 숨을 들이마신 채 그대로 굳었다가,
생각이 입보다 느리게 작동하는 아이 특유의 솔직함으로 툭 내뱉었다.

“예쁘다.”

말이 떨어지는 순간, 공기가 한 번 더 흔들렸다.

큰오빠가 민망하다는 듯 옆구리를 쿡 치며 말했다.

“야, 갑자기 그런 말 하지 마.”

하지만 이미 늦었다.
작은오빠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하린은 살짝 놀란 듯 눈을 깜박이더니 고개를 천천히 숙였다.

도망치지 않았고, 닫히지도 않았다.
그저 마음속에서 따뜻한 온기가 소리 없이 퍼져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부엌에서 이 장면을 지켜본 금희는 그 순간 손이 멈췄다.

하린이 처음 웃었다.
이 집에 온 뒤, 아니 아마 태어나서 가장 오랜 슬픔을 지나 처음으로 지은 미소였다.

금희는 손으로 입을 천천히 가리며 눈을 감았다.
뜨거운 무언가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올랐다.

눈물이 차오르자 그녀는 들키지 않으려 고개를 돌렸다.
손등으로 눈가를 빠르게 훔치며 숨을 고르고,
갓 끓인 찌개 냄비를 양손으로 들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조용히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하지만 금희의 떨리는 손은 숨길 수 없었다.
그녀의 마음 안에서는 계절 하나가 통째로 뒤집히고 있었다.

하린은 작은오빠의 시선과 큰오빠의 무심한 말 사이 어딘가에서
조금 덜 무섭고, 조금 덜 어둡고, 조금 덜 낯설다는 감정을 처음 느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날 밤, 하린은 침대에 누워 사진을 오래 바라보았다.
사진 속 오빠는 여전히 하린과 닮았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여기 있어”라고 말해주는 얼굴처럼 보였다.

눈을 감자, 오래전 묻혀 있던 기억 하나가 희미하게 떠올랐다.
오빠가 떠나던 날.
누군가 큰 그림자 아래에서 오빠를 데려가던 장면.
너무 커서 무서웠던 그림자.

얼굴은 흐릿하고,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던 어른의 손.

누구였을까.
왜 기억나지 않을까.
왜 눈을 감을 때마다 더 선명해질까.

하린은 사진을 가슴에 끌어안고 작은 숨결로 입술을 조금 움직였다.
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분명 말했다.

“오빠…”

금희는 아이들을 재우고 각 방을 지나가며 문틈을 살폈다.

작은오빠는 금방 잠들었고,
큰오빠는 천장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고,
하린의 방 앞에서는 발걸음이 멈췄다.

문틈 아래로 희미한 그림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작은 발끝이 불안하게 움직이는 그림자였다.

금희는 문을 열지 않았다.
대신 문틈에 손을 살짝 올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괜찮아. 엄마 여기 있어.”

그 말은 문틈을 넘어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사진 속 오빠에게까지 닿을 듯한 따뜻함이었다.

그날 밤, 봄은 더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었다.
아무도 알지 못한 채로.
하지만 분명히—
하린의 마음 안에서,
그리고 아주 멀리 또 다른 곳에서도,
이름 없는 봄빛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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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되지 못한 마음을 글로 쌓습니다. 기억과 계절, 감정의 결을 따라 걷는 이야기꾼. 햇살 아래 조용히 피어난 문장을 사랑합니다." 주말은 쉬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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