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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빛이 남긴 길과, 그림자가 속삭이는 곳

by Helia

숲의 빛줄기를 따라 걷는 동안, 두꺼비는 이상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햇살은 부드럽고 공기는 한없이 따뜻했지만, 그 따뜻함 아래에는 설명할 수 없는 미세한 떨림이 숨어 있었다. 마치 빛줄기 자체가 무언가를 안내하고 있다는 듯, 한 줄기 한 줄기마다 방향을 갖고 숲 속으로 뻗어 있었다. 작은 두꺼비도 그것을 느낀 듯, 시선이 빛의 흐름을 천천히 따라가고 있었다. 두 생명의 걸음은 조금씩 같아졌고, 그만큼 속도도, 호흡도 자연스레 맞춰졌다.

열 걸음쯤 지나자 공기 속에 다른 온기가 섞여 들기 시작했다. 봄의 향기와는 조금 달랐고, 물기의 냄새와도 닮지 않았다. 두꺼비는 숨을 들이쉬고는 잠시 멈춰 섰다. 이 향기는 처음이었다. 낯설고 묘하게 익숙한, 어떤 존재의 숨결 같은 온기였다. 작은 두꺼비가 살짝 고개를 들자 두꺼비는 그에게 조용히 말했다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괜찮아. 우리 계속 가보자.’ 말없이 나누는 대화가 숲 속에 천천히 번져나갔다.

빛줄기가 향하는 방향에는 작은 언덕이 있었다. 언덕 위에는 비어 있는 공간처럼 보이는 자리가 있었고, 그 위로 더 강한 빛이 모였다. 두꺼비는 천천히 언덕을 올랐다. 땅은 부드러웠고 햇빛이 닿는 자리에는 어린 풀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하지만 풀잎 사이에는 미묘하게 눌린 자국이 있었다. 누군가 이곳을 지나간 흔적. 두꺼비는 그 자국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발자국의 모양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했다. 작은 두꺼비도 자국 위에 발끝을 올려보았다. 그리고 둘은 동시에 눈을 마주쳤다. ‘여기에 뭔가 있었어.’

바람이 불었다. 아주 조금, 그러나 확실하게. 바람 속에는 금속성에 가까운 냄새가 섞여 있었다. 금빛이 흔들리던 물가에서 느꼈던 기척과 비슷했고, 이 언덕까지 따라온 듯했다. 두꺼비의 심장은 묘하게 빨라졌다. 도망칠 만큼의 두려움은 아니었지만, 다가가지 않고는 안 될 만큼의 호기심이 그의 몸을 움직였다. 그는 주변을 살폈다. 언덕 아래에는 빛줄기가 내려가는 방향이 있었고, 그 아래에는 그림자가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빛과 그림자가 서로의 끝을 잡아당기며 숲을 가르고 있었다.

두꺼비는 작은 두꺼비를 잠시 바라보다가 결심한 듯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도 내가 먼저 갈게.’ 그렇게 말하듯 한 걸음 내딛자, 작은 두꺼비도 바로 뒤를 따라왔다. 둘은 언덕 한가운데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순간—바람이 방향을 바꾸었다. 숲의 냄새가 한순간 가라앉고, 대신 낮게 울리는 듯한 공명의 기척이 땅속에서 올라왔다. 땅이 흔들린 건 아니었지만, 무언가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는 건 분명했다.

두꺼비는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봄이 그들을 새로운 길로 이끄는 순간이었다. 언덕 너머의 그림자는 이제 단순한 그림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생명이었고, 존재였고, 또 다른 질문의 출발점이었다. 두꺼비는 작은 두꺼비 앞으로 발을 내밀며 아주 작은 결심을 마음속에 품었다. 두려움이 없어서가 아니라, 두려움이 있어도 앞으로 가는 것이 지금 두 생명이 걸어야 할 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언덕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자 숲길의 끝에 금빛이 아주 작게 번지고 있었다. 두꺼비는 깨달았다. 물가에서 반짝이던 빛은 이곳까지 이어지고 있었고, 그 빛은 지금도 어디선가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두꺼비는 숨을 고르고 작은 두꺼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천천히 언덕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숲의 반대편에서 아주 낮고 길게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생경하지만 놀랄 만큼 부드러운 소리였다.

두꺼비는 발걸음을 멈추고 그 소리를 들었다. 바람도, 물도, 나뭇잎도 아닌—전혀 다른 존재의 목소리였다. 작은 두꺼비가 긴장한 표정으로 두꺼비 옆에 바짝 붙었다. 그리고 둘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저 소리… 우리를 부르는 걸까?’

숲의 끝에서 흘러온 그 목소리는 오래된 것 같으면서도 새로웠다. 봄과 겨울 사이, 생명과 그림자 사이 어딘가에서 태어난 듯한 목소리. 두꺼비는 아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걸음을 다시 내디뎠다. 그 소리는 계속해서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두 생명은 아직 모르는 또 다른 계절의 문턱 앞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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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되지 못한 마음을 글로 쌓습니다. 기억과 계절, 감정의 결을 따라 걷는 이야기꾼. 햇살 아래 조용히 피어난 문장을 사랑합니다." 주말은 쉬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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