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하며 처음으로 중도에 대회를 포기했다. 힘들면 천천히 뛸지언정 대회를 포기한 적은 없었다. 따라서 완주를 못한 적도 없었다. 딱 한 번, 혹은 두 번 정도 준비 부족으로 풀코스를 하프로 (나 홀로) 변경해서 뛴 적은 있었다.
(11일) 2019 혹서기 마라톤 대회가 있는 날이었다. 서울대공원 둘레길에서 진행되는 대회다. 무더운 시기이고, 평지가 전무한 코스라 아이언맨 대회 마라톤 기록과 동일하다는 전설(?)이 있는 대회다. 제법 힘든 대회라 평소의 풀코스보다는 기록이 많이 뒤진다. 따라서 수영과 사이클을 마친 후 풀코스를 뛰어야 하는 아이언맨 대회의 풀코스 기록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대회로 알려져 있었다. 철인들은 편한 마라톤 복장보다 철인 경기복을 입고 경기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 대회를 대비하는 차원이었다.
하지만 나는 12년 만에 철인계에 돌아왔고 혹서기마라톤은 13~14년 만에 뛰는 대회다. 그 사이 대회에도 유행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철인 경기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철인들이 철인 경기복이 아니라 마라톤 복장으로 출전한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긴 했다. 나도 아침까지 복장을 고민했으니까. 비교적 쾌적한 마라톤 경기복을 입고 뛰는 것이 현명할 것 같기도 했지만, 그래도 철인 경기를 대비해 출전했던 것이라 철인 경기복을 입었다.
예상 기록은 없었다. 몸이 반응하는 대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왕복 7km 구간을 6회전 하는 코스였는데, 1회전을 43분이 채 되기 전에 마쳤다. 6분주를 조금 넘긴 속도였다. 후반이 적정되기는 했지만 몸에 큰 무리도 느끼지 않았다. 문제는 오른쪽 아킬레스건(혹은 아킬레스건과 종아리 사이) 통증이었다. 요즘 종종 느끼는 통증이었다. 예전에는 전혀 몰랐던 통증.
2회전 중간 반환점도 잘 돌았다. 그리고 출발점이자 2회전 종점에서 턴을 했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의 속도는 앞으로도 2회전 이상 충분히 유지가 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3회전을 출발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턴 직후 지점에 마이크를 들고 응원하는 진행자가 있었다. 턴 자세가 채 풀리지도 않을 지점이었다. 그는 선수들에게 파이팅을 외쳐주면 화이파이브를 하고 있었다. 1회전 때도 당연히 그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 지점을 다시 지나치면서 이번에도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 순간이었다. 오른쪽 아킬레스건 윗부분에서 딱,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 귀에는 분명 그렇게 들렸다. 탁! 하면서 뭔가 끊어지는 소리. 괴성을 지르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몇 발자국을 걷지 못하고 바로 멈추었다. 딱, 하는 소리가 들릴 때 알았다. 이건 부상이다! 예사롭지가 않다!
나는 대회를 포기하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이다. 의지가 약하거나 심지어 비겁하다고 여기기도 했다. 힘들면 천천히 뛰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 괴로웠다. 주로 옆으로 벗어나 아킬레스건 주변을 마사지했다. 소용이 없었다. 조심스럽게 스트레칭도 해보았다. 생전 처음 경험해 보는 통증. 그러면서도 젖산이 쌓인 것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 이건 분명히 부상이었다. 그러면서도 쉽게 포기가 되지 않았다. 다시 뛰어볼까. 조금 걸으면 회복되지 않을까. 하지만 걷는 것도 불가능했다.
결국 레이스 벨트를 풀고 골인 지점으로 돌아갔다. 너무 싫었다. 접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었다. 절뚝이며 겨우겨우 걸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근육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정말 화가 났다.
불과 14km를 뛰고 대회를 포기한 상황이라 아직 아무도 골인하지 않은 상태였다. 절뚝이는 모습은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제대로 걸어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물품을 찾고, 샤워 천막에서 물을 뿌리고, 옷을 갈아입었다. 어차피 포기한 대회였으니 최대한 빨리 대회장을 벗어나고 싶었다. 정말이지 절뚝이는 모습은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대회장에서 전철역까지는 꽤 먼 거리다. 멀쩡한 상태라면 아무 문제도 없었겠지만 걸음 하나 옮기는 것이 고통 자체인 상태에서 전철역까지 간다는 것이 자신 없었다. 그때 보인 것이 리프트였다. 서울대공원 동물원과 주차장을 연결하는 리프트. 얼마나 할까? 관광용이니 비싸겠지. 바보처럼 한참을 망설였다. 멀리서 보니 5000원과 3000천 원이 보였다. 왕복 5000천 원, 편도 3000원으로 짐작되었다. 아, 저걸 한 번 타려고 3,000원이나 내야 한단 말이냐. 그래도 걸을 자신이 없었다. 어쩌면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리프트가 있는 것 자체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쩔뚝거리며 걸어간 매표소에서 물었다. 편도 얼마냐고. 헉! 편도 가격이 5,000원이었다. 비싸도 너무 비쌌지만 표를 끊었다. 리프트를 타고 주차장까지 이동하면서 5,000원이 아니라 50,000원이었어도 탔어야 할 거리란 것을 알았다. 대회 전 멀쩡한 발로 걸어갔을 때는 몰랐던 거리였다.
지금은 전철을 타고 집으로 이동 중이다. 한 마디로 오른쪽 발은 전혀 사용이 불가능하다. 걷는 것도, 계단을 내려가는 것도. 오로지 계단을 오르는 것만 가능한 상황. 겨우 오른쪽 발 앞꿈치가 바깥으로 향한 채 한 발짝 한 발짝 걷는 상황.
이제 전철에서 내렸다. 집에 가면 얼음찜질을 하며 누워 있을 예정이다. 병원은 내일 오후나 가능하다. 낮에 멀리 수원에서 강의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큰일이다. 오늘부터 3주 연속 대회가 예정되어 있다. 당장 다음 주는 철인 경험 전무한 지인들과 꾸린 릴레이 대회의 수영 선수로 나가야 한다. 그다음 주는 여주 하프 코스 대회다. 그리고 다음 달은 바로 아이언맨 대회. 큰 부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내일 아침 일어나면 그저 조금 뻐근한 정도였으면 좋겠다.
여기까지 써놓고 집에 도착해서 얼음찜질을 하며 폭풍 검색을 시작했다. 그리고 곧바로 글을 내렸다. 심각한 부상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짐작한 부상은 아킬레스건 파열. 단, 완파냐 부분 파열이냐가 문제였다. 완파는 수술과 함께 몇 달에 가까운 깁스를 해야 하는 상황. 부분 파열도 정도에 따라 수술이 불가피했다. 수술을 하게 된다면 완파나 다를 것 없는 과정이 필요했다. 부분 파열 역시 아킬레스건의 경우 깁스가 기본.
머리가 너무 복잡했다. 다음 주 올림픽 코스 릴레이 수영과 그다음 주 여주 대회. 그리고 한 달 남은 아이언맨 대회와 10월 18일 상하이 대회. 올해 운동은 종친 상황이었다. 릴레이는 철인 경험도 없는 지인들 몇을 모아서 내가 꾸린 이벤트 팀이었다. 나 때문에 출전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었고, 남은 대회는 둘째치고 상하이 대회마저 버려야 할 상황.
사실 운동보다 더 문제는 생활이었다. 병원에 들어가면 굶어 죽어야 하는 프리랜서 생활. 행여 상태가 비교적 양호해서 깁스만으로 해결된다고 해도 만만치 않았다. 운전을 못하기 때문이었다. 하필 또 오른발. 하긴, 내 차는 수동이라 왼발이라고 해도 운전은 불가능했다.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암담했다. 정신적 주치의인 철인 후배 한의사와 통화를 했다. 다행히 완파는 아닐 것으로 판단되었다. 완파되면 아킬레스건이 말려서 발목 있는 곳에 혹처럼 튀어나온다고 했다. 나에게는 없는 증상이었다. 그리고 붓기만으로 판단해도 그 정도 부상은 아니었다. 그리고 경미한 파열의 경우는 깁스를 안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마음이 놓이긴 했다. 제발 깁스만 하지 않았으면.
그러면서도 난 이런 질문들을 했다. 당장 취재가 있어서 이걸 안 할 수가 없다. 월요일 병원에 갔다가 깁스 판정이 나면 곤란하다. 입원해서도 원고는 쓸 수 있으니 다리가 불편해도 월요일 취재를 끝내고 화요일 병원에 가는 건 어떠냐? 파열은 점점 말려들어가서 수술의 경우 늦으면 절개 부위가 더욱 커진다고 하는데 그래도 취재를 마치지 않으면 너무 복잡해진다. 대답은 이랬다. 그게 그렇게 금방 말려들어가고 그런 것이 아니란다. 사정이 그러면 테이핑 같은 거라도 하고 최대한 다리를 보호하면서 취재를 해라. 아, 이야기만 들어도 마음이 놓이는 답이었다. 보통의 의사라면 움직이면 절대 안 된다는 소리나 할 텐데.
밤새 찜질을 하며 잠들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이 밝았다. 강의 때문에 수원에 가야 했다. 강의 마치고 취재지인 강화도로 달려갈 계획이었으나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방에서 잠시 걸아 보았다. 어제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조금 좋아진 느낌이랄까. 기분이 업되어 내 사고를 알고 있는 친구에게 톡을 보냈다. 좋아진 거 같다고.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웬걸.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좌절이었고 다시 태산 같은 걱정이 시작되었다. 오른발 사용할 수 없어서 자세는 자연스럽게 오른발 앞꿈치가 90도 바깥으로 돌아갔다. 쩔뚝이는 게 아니라 부러진 다리를 질질 끌고 가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비까지 내리고 있었고 하필 차량은 집에서 아주 먼 곳에 주차되어 있었다.
그럭저럭 강의를 마치고 늦은 오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아이스 찜질을 시작했다.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상황. 절망이었다. 운동도, 일도 엉망이 될 상황이었다. 이래저래 검색도 해보고 급하게 건강 정보 카페도 가입했다. 그리고 얻은 결론. 그냥 정형외과보다 족부전문 정형외과를 찾아가자. 많은 키워드를 넣어도 가까운 곳에 족부전문 정형외과는 없었다. 그러다 검색에 걸려든 병원. 발산역의 SNU서울병원. 개원 한 달이 채 되지 않았고 제법 큰 병원이었다. 대표원장이 족부전문의. 9시에 맞춰 갈 생각이었다. 큰 병원이고 늦으면 대기 시간이 길어질 것 같았다. 아이스 찜질을 하며 잠들었다.
아침이 밝았다. 오늘 아침이었다. 일어나서 살짝 걸어보았다. 앗! 어제보다 좋아졌다. 다시 밖에 나가면 어제처럼 똑같은 거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아무리 봐도 좋아진 거 같았다. 일단 오른쪽 앞 꿈치가 완전 90도로 돌려야만 걸을 수 있었던 어제와 달리 좀 앞으로 돌아왔다. 아주 심한 팔자걸음 자세 정도였다. 달리 말하면 다리가 조금은 자연스러워졌다는 의미였다. 희망이 생겼다. 깁스는 피할 수 있을 거란 희망.
다리가 조금 나아졌다고 갑자기 큰 병원에서 동네 정형외과로 마음이 바뀌었다. 큰 병원 가봐야 병원비만 비쌀 테니까. 9시에 맞춰 동네 정형외과에 도착했다. 근데... 휴가였다. 망설이지 않고 택시를 탔다. 애초에 가려고 했던 SNU서울병원으로 향했다.
접수를 하고, 대기하고, 족부전문의인 대표원장에게 진료를 받았다. 엑스레이를 기본으로 찍었고, 대표원장과 함께 초음파를 찍었다. 방사선 의사처럼 다른 의사가 초음파를 촬영하는 줄 알았더니 대표원장이 직접 촬영을 했다. 화면을 함께 보았다.
다행이었다. 아킬레스건은 이상이 없고 종아리 근육이 10~20% 파열되었다. 통증은 바깥쪽인데 파열된 근육은 안쪽이었다. 화면으로 보기에는 동전만 한 구멍이 생겼다. 가로로 찢어진 근육이 벌어진 것이다.
이 정도 파열은 깁스를 안 해도 된다고 했다. 진단은 4주, 처방은 1주일, 다음 내원은 2주 후. 기뻐서 날뛰고 싶었다. 다 나은 것처럼 행복했다. 깁스를 안 해도 되고, 더욱이 아킬레스건 파열이 아니었다. 이제 시간만 필요했다. 만세라도 부르고 싶었다. 물론 종아리 근육 파열도 작은 부상은 아니다. 하지만 아킬레스건 파열을 예상하고 있었던 나에겐 최악은 면한 셈이었다. 물론 많은 것이 물거품 되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감사한 일이었다.
여주 대회 취소를 위해 진단서를 끊었다. 아이언맨 대회는 두고 볼 생각이다. 뛸 수만 있다면 완주만을 목표로 아주 천천히 뛸 생각이다. 상하이는 당연히 갈 수 있다. 물론 한 달간 훈련은 불가능하다. 훈련뿐이 아니고 걷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병원에서 나온 후 정신적 주치의인 후배 한의사에게 찾아갔다. 나의 목 디스크를 6주 만에 치료해준 명의다. 빨리 나으려면 뛰어야 한다고 했어도 아마 난 고통을 무릅쓰고 뛰었을지도 모른다. 신뢰하는 의사니까. 한의원에서 침과 물리치료와 몇 가지 치료를 받았다.
이번 부상을 통해 많은 걸 얻었다. 운동은 그 자체가 무리이긴 하다. 하지만 꾸준한 스트레칭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고, 누구에게든 예상치 못한 부상이 올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눈앞에서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어도 뛰어가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누군가에게는 신호가 매우 짧게 느껴질 수 있단 것을 알았다. 난 신호가 바뀐 상태면 건너지 않고 다음 신호를 기다린다. 그럼에도 어떤 횡단보도는 다 건너기 전에 빨간불로 바뀌어 버린다. 버스를 탄 후에도 자리에 앉기 전에 버스가 움직이는 것이 두렵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교통 약자들이 이런 불편과 불안을 겪었을까.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다.
외상도 없는 부상이다. 남들이 보면 엄살이라고 할 부상. 그래서 창피해 죽겠다. 일요일 글을 올렸다가 바로 닫은 이유는 치료가 될 때까지 몇 달 동안이고 사라져 있으려는 의도였다. 나의 부상이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혼자서 감내할 생각이었다.
만약, 언젠가 내가 사라진다면 그건 부상을 입은 것이거나 불행한 일에 봉착한 것일 확률이 높은 것일지도 모른다.^^
진단은 한 달이지만 그전이라도 조금 살만 해지면 또 운동을 하겠다고 나설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인간의 신체는 매우 약한 것이기도 하지만 의외로 대단히 강한 것이기도 하다. 충격을 받으면 부러지고, 터지고, 심지어 사망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찢어진 근육이 다시 재생 되기도 한다. 놀라운 일이다.
참고로, 이번 주말 올림픽코스 릴레이 대회는 참여할 계획이다. 내가 빠지면 팀 전체가 참여 불가능하다. 그리고 후배 한의사가 그랬다. 그나마 수영은 최대한 하체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물론 정말, 꼭 참여해야 하는 대회라면.^^ 몸이 부서지더라고 이번 릴레이 대회는 참여하고 싶다. 철인 경험 없는 분들 여러 명 모아서 이벤트로 마련한 대회니까.
모두 다치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