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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목여행자 박동식 Feb 25. 2020

병원 일기 11~15

20191222~20191230



병원 일기 11(20191222)


+


어제(토)는 모처럼 휴가를 얻었다.


오전에 병원을 나왔다가


저녁 식사 시간인 6시 맞춰 병원으로 돌아갔다.


두세 시간 병원을 비운 적이 몇 번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대부분 누님이 계신 시간.


형님 혼자 장시간 방치(?) 하기는 처음.


즉, 병원에서 내가 할 일이 점점 줄고 있다는 이야기다.


+


오늘 아침 처음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그동안은 수저만으로 식사.


그마저도 어눌해서 내가 늘 도와줘야 했던 상황.


“그래, 그것도 재활이야. 재활 30분 하는 거랑 똑같아."


오전 재활 중에는


수저로 콩알 같은 것을 옮기거나


손가락으로 핀 같은 것을 구멍에 끼우는 훈련이 포함되어 있었다.


저래서 어느 세월에 손가락 기능이 돌아올까 싶은,


매우 답답하고 더딘 훈련 중 하나다.


젓가락질은 오늘부터 시작했지만


도움 없이 혼자 밥을 먹기 시작한 것은 이삼일 전부터다.


직접 식사를 하게 되었으니 나도 밥을 먹어야 한다.


전에는 식사 도와주고


푸드코트나 편의점에 내려가서 따로 밥을 먹었다.


멀뚱멀뚱 밥 먹는 거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나도 시리얼을 먹기 시작했다.


집에서 그릇을 가져왔고 시리얼도 사 왔다.


+


아파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나이 먹으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형님에게 식탐이 생겼다.


누님 이야기로는 몇 년 전부터 그랬단다.


병원 밥으로는 모자라서 중간에 간식을 많이 먹는다.


죽도 먹고, 빵도 먹고, 과자도 먹는다.


누님이 저녁에 사 오는 사식도 뚝딱.


냉장고에 두었던 사식을 내가 두 끼에 나눠 먹은 적이 있는데


나 없을 때 그걸 누님에게 일렀(?)다.


자기 안 주고 혼자서 먹었다고...


냉장고에 며칠 보관하느니 내가 먹어치우려 했을 뿐이었다.


일종의 냉장고 청소 같은 마음.


그 이후 사식은 손 안 댄다.^^


근데 사식 먹을 때는 같이 먹자는 소리도 잘 안 한다.


나와 누님이 옆에 있는데도 혼자서 잘 먹는다.


며칠 전, 친구가 전복죽과 초밥을 해왔다.


정말 고마웠다.


형님은 본 적도 없는 친구다.


근데 그 전복죽... 양이 장난이 아니었는데...


혼자서 다 먹었다.^^


그것도 아침밥 먹으면서.


죽을 먹으면 밥을 못 먹을 줄 알았고,


밥을 먹으면 죽을 못 먹을 줄 알았다.


난 밥이든 죽이든 안 먹는 거 먹을 생각이었는데


죽부터 먹더니, 잠시 후 밥도 다 먹었다.^^


빵도 사실 마음대로 못 먹는다.


빵 먹을 때 물어본다.


"여기서 먹기 싫은 빵 뭐야?"


형이 지목한 그 빵을 내가 먹는다.


아침 식사에 가끔 두유가 포함된다.


한 번도 먹지 않아서 냉장고에 두유가 여러 개.


거기에 손님이 사온 두유도 있다.


시리얼을 먹기 시작했으니 우유 대신


남아도는 두유를 먹을까 했다.


마침 오늘 아침도 두유가 나왔다.


"두유 안 먹어?"


"왜 안 먹어, 나중에 다 먹을 거야."


전날 사두었던 우유에 시리얼을 말았다.


앞으로도 두유에는 손대지 않을 생각이다.^^


+


사실 그동안 형 지인보다,


나의 지인들이 병원을 더 많이 찾았다.


두고두고 고마운 일이다.


입원 초반과 섬망 증세 때는 거절했다.


마음은 고마웠지만 정말 싫었다.


병원까지 찾아올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형님 상태가 호전되면서 나의 마음도 가벼워졌다.


점심이나 저녁 시간에 맞춰 오면


같이 나가서 식사하고 돌아오는 형태다.


이제 형님 혼자서 식사가 가능하니까.


잘은 모르겠지만 병원을 찾아왔던 그들은


형님보다 나를 더 걱정했던 것으로 보였다.


그들이 아는 건 형님이 아니라 나니까.


아닌가?^^


암튼 모두 고맙습니다.



병원 일기 12(20191223)


+


토요일과 일요일, 정말 힘든 이틀을 보냈다.


주말이라 재활치료가 없었다.


어느 정도 거동이 가능한 상황이지만


형님은 이틀 동안 먹고 잠만 잤다.


미치고 환장할 일이었다.


이 닦는 것도 귀찮아했다.


섬망 증세 마지막 날,


온몸에서 똥냄새가 난다며


집에 가서 씻고 오겠다는 난동은 도대체 뭐였을까.


내면의 욕망이 섬망 증세로 발현된 것인 즐 알았더니


씻는 걸 이토록 싫어할 줄이야.


+


6시 저녁 식사를 마치면 6시 30분도 되지 않는다.


운동은 둘째 치고 제발 잠은 9시 넘어서 자라고 해도


식사 후 곧바로 취침이다.


결국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일어난다.


그때부터 아침이 나오는 7시까지


부스럭부스럭 과자를 먹는다.


물론 자기 딴에는 조용히(?) 먹는다고 하지만


비닐봉지에 손이 들어갈 때마다 듣기 싫은 소리가 난다.


+


마지막 실밥을 뽑은 후 어제는 거즈도 제거했다.


봉합 자리 일부가 살짝 성이 나 있었고


그 때문에 하루 이틀 더 거즈를 붙였던 것으로 보였다.


다행히 내가 봐도 거즈는 이제 필요 없어 보였다.


근데, 거즈를 제거하는 것이 조금 섭섭한 모양이었다.


더 이상 환자 행세에 어려움이 있을 테니까.


이제부터 모든 건 형님의 몫이다.


돈 주고도 하는 재활이다.


일상 모든 행동이 즉 재활인 셈이다.


더 이상 양말 신는 것도,


신발 신는 것도,


화장실에 가는 것도,


밥 먹는 것도 도와주지 않는다.


손가락 운동하라고 두 가지 기구도 인터넷으로 사줬다.


하나는 누르는 도구고, 하나는 펼치는 도구다.


앉아 있을 때라도 좀 했으면 좋겠는데


처음에만 만져보고 주말 내내 손도 안 댔다.


걷는 것도 내가 함께 걸어줘야 겨우 한 바퀴를 돈다.


말로만 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내가 보행기를 끌고 옆에서 걸어준다.


이러다가 내가 속 터져 죽을 지경이다.


전에는 운동한다고 될 일도 아니었고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나빠지는 상황이었지만


이제는 수술을 했으니 운동하면 할수록 좋아지는 거라고


그렇게 설명을 해도 그때뿐이다.


이렇게 게을렀나, 싶을 정도다.


물론 이 상태로 일상 복귀는 어렵다.


병원에서도 걸을 때 늘 바닥만 본다.


오랜 습관이다.


우리에겐 모두 평지였던 인도가


형님에게는 위험이 가득한 울퉁불퉁한 길이었다.


몇 센티의 돌출에도 걸려서 넘어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런 사정이야 알고 있지만


이제 엄살만 피우고 있을 때는 분명 지났다.



병원 일기 13(20191225)


+


본격적으로 젓가락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저 해보는 것 정도가 아니라


국을 제외하고 아예 젓가락만으로 밥을 먹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 어려워하는 것 같지고 않았다.


엄청 칭찬해줬다.


+


"빵은 단팥빵이 제일 낫지?"


빵이 떨어졌다.


그것을 달리 표현한 형님의 말이다.


"난 모르지. 형이 먹고 싶은 거 말해."


"다른 건 모양만 그렇고, 단팥빵이 젤 난 거 같아."


"그거 하나에 몇 천 원씩 하는 거야. 단판빵도 2천 원 넘어."


"......"


실제 단팥빵은 2,500원이다.


단팥빵 4개와 크림빵 2개를 사 왔고


옆 침대에 단팥빵 하나씩 나눠줬다.


며칠 전부터 서로 먹을 거 있는지 알면서도


이것저것 사소하게 나눠 먹고 있다.


+


병원비 중간 결산이 끝났다.


310여만 원이었다.


실손보험이 있음에도 노골적(?)으로 병원비를 걱정했다.


누님과 내가 각각 100만 원씩 보탰다.


"형 아프니까 선물로 해주는 거야. 나중에 실손 청구해서 나오는 건 형 가져."


+


곧 병원 생활 3주 째다.


지난 토요일, 오전부터 나갔다가 저녁 식사 전에 복귀를 했었다.


어제(24일)는 오전 일찍부터 미팅이 있어서


아침 식사 직후 식기를 치워준 후


곧바로 병원을 나와서 저녁 식사 직전 돌아왔다.


최장시간 병원을 비운 셈이다.


그리고 형님 저녁 식사 후 다시 병원을 나왔다가


친구들과 저녁 식사 후 11시 무렵 병원으로 돌아왔다.


오늘 아침밥을 먹고 잠시 보호자 침대에 앉았다가 이런다.


"어제 어디 갔다 왔어? 이거 긴 머리카락 봐라."


병실 바닥에 긴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었던 모양이다.


그게 왜 나에게서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걸까?


+


사실 이제 내가 없어도 병원 생활이 가능해 보인다.


빨리 재활 병원으로 옮기거나


아예 천천히 재활 병원을 찾아보는 것도 괜찮을 듯.


서서히 나도 일상 복귀가 필요한 시점이 다가오는 느낌이다.


형님이 싫어하겠지만.



병원 일기 14(20191226)


+


형님의 병간호를 시작한 나를 만났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했던 말이 있다.


"병간호하는 거 맞아요? 얼굴이 너무 좋아요."


으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난 그런 생각을 한다.


내 미모는 타고났군.


크하하.


+


오늘부터 반쪽 병원 생활을 시작했다.


형님 거동이 자유로워지면서


마치 좁은 방에서 두 명이 생활하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


나도 불편하고, 형님도 불편하고.


본래 어제저녁 의견은 완전 퇴원(?)이었다.


하지만 형님을 24시간 혼자 두는 건 아직 불안했다.


더욱이 병원과 소통이 필요할 때도 있을 테니까.


그리고 어제저녁 잠자리에서


새벽까지 왼쪽 다리 경련하는 것을 보면서


불안감이 더 커졌다.


첫 섬망 증세가 있던 날도 다리 경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섬망 증세가 나타날까 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그리고 여전히 낮과 밤은 어딘가 모르게 달라진다.


밤새 고민하다가 잠만 병원에서 자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아침에 나와서 저녁 식사 후에 돌아가는 것.


형님도 내심 그러길 바란 모양이었다.


"여기는 원래 보호자 있으라고 하잖아."


"형만 그런 거야. 다른 환자 보호자 자는 사람 어딨어?"


+


병원 잠자리도 불편하고


테이블은 휴게실에만 있어서 자세가 늘 좋지 않았다.


결국 목 디스크가 재발했다.


오늘 병원을 나와서 상암동 후배 한의원을 찾아갔다.



병원 일기 15(20191230)


4일 전, 마지막 '병원 일기'를 썼다.


며칠 동안 병원 일기를 쓰지 않으니


궁금해하시는 분도 계시고


형님이 거의 완쾌(?) 된 것이라 생각하시는 분도 계신 듯하다.


지난 토요일(28일)이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재활 치료가 없는 날이다.


이미 이틀 전, 잠을 자는 바람에 오후 재활 치료를 빼먹었고


금요일도 변비 때문에 제대로 재활 치료를 받지 못했다.


낮에는 일을 보고 저녁에만 병원에서 잠을 자기로 한 다음날부터 벌어진 일이었다.


토요일 아침 식사를 마친 후 곧바로 누워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변비 때문에 새롭게 바꾼 약이 나온 날이기도 했다.


전에는 알약이었고 바뀐 약은 시럽이었다.


변비 때문에 재활 치료도 제대로 가지 않았는데


새롭게 바꾼 변비 약을 한사코 먹지 않겠다고 했다.


복용 방법에 '아이들' 용도로 되어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변비 심하다고 해서 약 바꾼 거잖아. 이거 먹다 안 먹다 그러는 약 아냐. 아침저녁으로 복용하는 약이야."


"얘들 먹는 약이야. 그리고 지금 괜찮아. 괜히 그거 먹고 또 이상한 증세 올지도 몰라."


"형이 의사야?"


"그럼 여직 낫지도 않는 변비약을 준게 의사냐?"


짜증이 확 밀려왔다.


그전부터 형님에 대한 불만이 차츰차츰 쌓이고 있었다.


화장실 갈 때 아니면 좀처럼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나마 재활 치료가 있으니 움직이는 셈이었다.


가장 문제는 저녁 식사 후였다.


저녁 먹고 나면 불과 6시 30분.


이도 닦지 않고 그대로 잠자리에 들었다.


결국 새벽 2시, 3시면 깨서 아침까지 엎치락뒤치락.


운동을 안 할 거면 제발 TV라도 보다가 9시 넘어서 자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저녁을 먹은 후임에도 누님이 사식을 사 오는 날에는


또 한 번의 저녁을 먹어치웠다.


그나마 그런 날이 늦게 잠드는 날이었다.


3주 사이에 배가 어마어마하게 나왔다.


전에는 누우면 간디 같던 배가 이제는 위로 옆으로 퍼졌다.


토요일은 재활 치료도 없는 날이었다.


그러니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누워만 있어야 하는 날.


아침 식사 후 이도 닦지 않고 누웠고,


더욱이 변비 약도 먹지 않고 버텼다.


"형 맘대로 해!"


병원을 그대로 나와버렸다.


그동안 쌓인 불만이 폭발하고 말았다.


그리고 아직 병원에 돌아가지 않고 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누님도 병원에 가지 않았다.


혼자서 이틀을 보낸 셈이다.


지금은 월요일 저녁.


병원에 가야 하는지 결정하지 못했다.


형님 역시 전화가 없다.


누님에게 올 것인지 묻지도 않았다.


환자가 의지를 갖고 움직여야


간호하는 사람도 보람이 있는 법이다.


나이 많은 환자를 언제까지 다독여야 하는 것일까.


사실, 병원이 궁금하고 걱정도 되지만


안 가고 버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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