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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목 Oct 06. 2022

내 머릿속 설경구

읽기와 쓰기의 템포

    영화 자산어보는 정약전으로 분한 설경구의 내레이션으로 마무리된다. 약 2분에 걸쳐 이어지는 이 낭독은 자산어보의 첫 문장으로 시작해서 정약전이 창대에게 남긴 편지로 이어진다. 처음 영화를 보고 나서는 이 마지막 낭독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영화를 다시 한번 보았다. 짧고 간결한 문장이 느린 목소리로 읽히는데 여러 감정이 들었다. 


    글을 읽다 보면 글에서 작가의 속도가 느껴진다. 오늘 읽은 나카가와 히데코의 '음식과 문장'이 그렇다. 실용서에는 그런 게 느껴지지 않지만 에세이를 읽을 때는 작가가 의도한 맛깔스러운 템포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한 줄을 읽는 속도가 빨라서는 그녀의 글에 느낌을 실을 수 없을 듯하다. 만약 설경구가 영화의 마지막에서 낭독을 조금이라도 빠르게 했다면 나는 "에이 영화 망했네 망했어"를 연발했을지도 모른다. 


    그 후로는 글을 쓰는동안 설경구가 내 글을 낭독하는 목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러면 여지없이 내 글의 허술함이 드러나 버린다. 내 글은 대체적으로 템포가 빠르고 듬성듬성하여 문장이 자연스럽지 않고 대체적으로 서두르는 느낌이다. 언제나 설경구보다 빠르다. 빨리 결말을 짓고 싶은 조급함이 묻어나며 글이 빠를 때는 어김없이 설명하는 식으로 글이 써진다. 갑분 사전식 문체로 변하기 때문에 써놓고도 다시 쓰는 경우가 많다. 지금도 에세이를 작업하는 중인데 다시 써야 할 판이다. 그 글을 쓰는 동안 침착한 템포의 내 머릿속 설경구는 어디로 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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