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끝으로 여는 작은 세상
‘아주 먼 미래에는, 머리만 크고 몸통은 작아진 사람들이 가득할 거’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무지막지한 과학화로 인해 모두가 머리만 쓰고 몸은 쓰지 않아 쓰지 않는 몸뚱이는 퇴보하고 자꾸 쓰는 머리만 커질 지도 모른다는. 중학교 1학년 교내 논술대회에서 쓴 글이었다.
그때 잠깐 연필을 멈추고 생각했다,
그럼 나는 분명 오른손도 엄청 커질 거야!
그녀는 그렇게 꿈을 확신하고 있었다.
*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집 앞엔 깊은 강이 흐르고 뒤로는 동산이 솟아있는 시골 동네이다.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초등학교를 오가면서도 힘들다는 불평은 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함께 길가에 서있는 해바라기 씨를 골라먹고 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와 노래하는 건, 도시에서 버스를 타고 편히 다니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멋과 맛이 있었다.
무릎까지 여름 장마가 지면 저수지 둑이 범람해 방 안까지 물이 차서 마을회관으로 피난을 가고 구호품을 받아 생활했다. 겨울이면 어른 무릎 높이까지 쌓이는 눈 때문에 꼼짝없이 방 안에서만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꽃과 나무, 동물과 인간 모두가 어우러지는 세계였다.
담이 있으나 높지 않고, 대문이 있어도 걸어 잠그지 않았다.
너와 내가 아니라 우리가 만나 마음을 주고받는 그곳에서의 어린 시절은, 그녀가 아직까지도 어느 정도의 순수함을 간직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었다.
*
그녀가 11살이 되던 해부터 이곳저곳 이사를 다니게 된다. 하우스 농사 품앗이만으로는 집의 빚을 해결하며 살림을 꾸리기도 어려웠고, 심할 땐 반신이 마비가 되어 말도 할 수 없는 어머니의 증세를 봐 줄 큰 병원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집안 형편과 낯선 도시 생활에 외로움을 알게 된 그녀는, 친구들과의 웃음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마음을 직접 풀어내기 시작했다, 글이라는 도구를 통해.
처음엔 일기였다. 남들은 방학 때에도 밀려서 한꺼번에 써대기 바빴지만 그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일기를 썼다.
글은, 가장 비밀을 잘 지키는 친구였으며 가장 잘 들어주는 벗이었다.
글에 의지하는 일이 많아졌고 그러자, 잘 쓰고 싶어 졌다.
그녀가 받은 위로를 다른 이에게 돌려주고 싶어 했다. 글이라는 매개체로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싶어 했다.
대학에 진학해서 공부를 하고자 했으나, 나아지지 않는 형편 때문에 어머니의 숨겨진 눈물을 보고는 그 길을 가지 않기로 한다. 가고 싶은 길인데 갈 수 없는 심정은 괴롭고도 썼다.
그런 그녀에겐 글과 대화하는 시간이 자신을 위로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상고에 진학해서 좋았던 건 시간이 더 여유 있게 주어졌다는 점이다.
‘신문(편집) 부’ 동아리 부장으로 3년을 지내면서 열심히 뛰어다녔다.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외에서 활동하는 ‘학생 신문사’에서도 열심히 기자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은 달콤했지만 너무나 짧았고, 곧 생계형 직장을 구해야만 했다.
꿈에 물도 주고 거름도 주며 잘 키울 생각이었다. 아름드리나무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릴 적부터 부러웠던 제제의 라임 오렌지 나무 만큼 사랑스러운 그녀만의 나무로는 자라게 해 주고 싶었다. 세상에 둘도 없을 특별한 100人 뭐 이런 목록에 들진 못하더라도 자신에게만큼은 떳떳하고 자랑스럽고 싶었다. 닥치는 대로 책도 읽고 턱없는 실력이지만 신춘 문예니 드라마 극본 공모전이니, 마구 기웃거리기도 했다.
많은 빚 때문에 직장이 끝나고 나서도 새벽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몇 시간 잘 수 없었을 때도, 매 해마다 입학하려던 야간 대학교 입학금이나 등록금을 고스란히 그 빚 이자로 넣었을 때도 슬펐으나 웃을 수 있는 그녀였다.
힘겨운 일이 있어도 이겨낼 수 있다고 믿었고, 어떤 일이든 성실하게 흘린 땀은 헛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눈물도 웃음도 많았지만 그런 진심을 보여주고 또, 그렇게 사람을 대하는 게 창피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하지만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봄은 찬란하지만 짧았으며 봄이 아름다운만큼 겨울은 더 호되게 추웠다.
그녀가 스물여덟이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죽음 자체는 견딜 수 있었다. 힘든 시절, 불평이나 포기하지 않던 그녀였지만 이번엔 그럴 수가 없었다. 폐암으로 폐의 3분의 2가 다 없어질 만큼 괴로우시면서 병원에서 치료 한 번을 받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였기에.
열심히 살았고 부지런히 달렸지만 꿈을 가지고 있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런 것 자체가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고 싶었지만 쓸 수 없었다.
쓰는 것도 고통이었고 쓰지 않는 것도 아픔이었다. 그렇게 유일한 위로를 잃고 그저 생계형 직장에 매달려 살아내야만 했다.
몇 년이 흘러 서른을 훌쩍 넘기고 그렇게 살아가는 게 습관이 되었다.
아무것도 쓰지 않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살아내는 게, 아프지 않다고 말하게 되었다. 다른 이들의 글을 읽고 싶기도 했지만 쳐다보는 것조차 힘들기도 했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글을 쓰지 않고 열정 없이 살아가는 게 괜찮다는 생각은, 교만이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
꿈은, 그녀 옆에 있었다.
아주 가깝지만 절대 닿을 수 없는 곳.
한치의 오차도 없이 나란히.
바라보는 것만이 허락되는, 만나 지지 않을 지독한 평행선.
그런 그녀에게, 어쩌면 일생일대의 기회가 될지도 모를만한 문이 나타나게 된다. 그 문을 보자마자 죽어있던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간절함이 하늘에 닿는 일이 있을 수도 있다고, 한 번 믿어보기로 한다.
얼마나 부족하고 얼마나 자격이 없는지 알기에 망설여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당연히 가능성이라고는 번개를 맞고 초능력이 생겼다는 사람을 보는 것만큼 뿐이라는 것도 모르지 않기에 그냥 쓰게 한 번 웃고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수 없었고 그러지 않았다.
힘든 세상 질기게 살아내면서 버렸지만 버리지 못하고, 외면했으나 차마 외면하지 못한 그녀의 꿈이 말을 걸었다.
나는 여기에 있어,
그래서 그녀는 다시 살아보기로 한다, 어린 시절부터 갖지도 못했으면서 보내주지도 못한 그녀의 꿈을 계속 꾸어오던 것처럼.
만나 지지 않을 것처럼 지독한 평행 점, 꿈에게 아주 살짝만 다가서기로 한다,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