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 Up]
-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별 통보를 받았다. 지금부터 실연에 대한 이야기를 써 보자.
[ 문장의 시작: 그 사람과 나 사이에 ]
ㅁ 첫 번째) 3.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사용해야 하는 관용구) :
그 사람과 나 사이에, 대체 무엇이 있었던 걸까.
오래도록 함께였다.
몇 년이 흘렀는지 모른다.
따뜻한 봄을 맞은 기억도, 더운 여름날 수박을 베어 물던 기억도, 고추잠자리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며 투덜대던 가을의 바람도.
흰 눈이 처음으로 내리던 날엔 어디 어디쯤에서 어느 어느 시간에 만나 데이트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니냐며 핀잔 겸 웃음을 보이던 것도.
그런 계절이 수 없이 흘렀다.
하지만 네가 싫어졌다, 이리도 짧은 말 한마디에 그 사람과 나 사이의 모든 것에는 금이 갔다.
맞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내가 그를 얼마나 많이 보듬어 안았는지.
그도 그랬겠지, 나를 위해 수많은 것들을 참아왔노라고.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새도 없이.
순식간에 금이 가고 그 사이로 이별이 불어왔다.
참 추웠다. 아니, 춥다고 표현하기엔 그 서늘함이 달랐다.
두려웠다, 실은.
우리가 언제나 함께 걷던 그 가로등 아래를 홀로 걸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다음 해가 뜨는 아침이면, 게으름뱅이는 일어났는가 궁금도 하여 짧은 카톡으로 인사를 해 오던 그 시간이 그저 공백으로 남아야 한다는 사실이.
그런 사소한 부재가 무서웠다.
사랑이 길어지면 습관이 되는가.
사랑이 쌓이면 그저 일상이 되어 버리는가.
그와 나는 그저 삶이었다.
설렘과 사랑으로 시작하여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내딛다 보니 어느새, 그와 나는 서로의 살내음을 맡으며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그런 일상이었다.
매일같이 보고 싶고, 찾고 싶고.
손을 붙잡고도 싶고.
안고 싶고.
그런 ‘-싶다’ 가 아니었다.
매일 보고, 같이 밥 먹고, 같이 웃고, 울고.
싸우기도 하고, 서운하지만 그러려니도 하고.
그러다 같이 발가벗고 살 부비기도 하고.
어느 달 어느 날 쯤은 서로의 일상이 바빠 소원해지기도 했으나.
그래도 너는 내 남자이려니, 나는 네 것이려니.
그런 ‘사람, 사랑’이었다, 우리는.
헌데.
이제 그 모든 것들을 덮자한다.
한 권 책을 다 읽고 집어던지고. 다른 책을 주워 드는 것처럼.
‘그저’ 덮자 한다.
그래, 그래 버려라. 그래 버리자.
나는 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을까.
그리도 당당하게 이제는 내 등을 보여주마, 하는 네게.
나는 왜.
그래 헤어지자, 대답을 내어주지 못했을까.
나는 왜.
이렇게 바람 부는 커다란 언덕 위에 홀로 서서 쌔엥쌩 이별 바람을 맞고 있는가.
억울, 하다. 매우 억울하구나.
슬픔은 언제 오려는가. 그저 억울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