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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이쓰 Aug 09. 2021

파괴 대신 위로

(feat. 금쪽같은 내 새끼)

<금쪽같은 내 새끼>를 처음부터 쭈욱 보고 있다. 딸이 있는 언니는 자꾸 감정이입이 돼서 보기 힘들다고 한다. 나는 가끔 눈물짓지만 아직 자식이 없어서인지 보기 힘든 정도는 아니다. 그러면 나중에 자식이 생길 때를 대비해 미리 공부하는 거냐고 몇몇이 묻는데 그것도 아니다. 처음엔 뭐 저런 애가 다 있나 하고 보다가 아주 작은 처방 몇 가지에 극적으로 변화하는 아이와 부모가 신기했다. 그러다 점점 위로를 받았다.


아이들은 잘못하는 게 없어요.
뭐든 모르는 게 당연하고 모르는 걸 가르치는 게 부모 역할이에요.
잘못했다고 혼내고 사과받으려는 부모가 잘못하는 거예요.


오은영 박사의 말 몇 마디로 시작된 위로는 매 회마다 내 마음을 툭툭 건드린다. 누군가의 기준에서 나는 항상 나쁘고 못된 아이였다. 잘못한 것 없이 잘못을 빌고 용서를 구하고 감정을 숨겨야 했다. 배고프고 기죽은 아이. 아무것도 해달라고 말하지 않는 아이. 아픈 것도 내 잘못이어서 아픔조차 숨기기에 급급했던 아이. 힘든 기억은 잊고 사는 것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의지적으로 잊다가 어느새 진짜로 잊은 줄 알았던 어린 나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원망하지 않는다. 여전히 어떻게 해달라고 바라는 것은 없다. 다만 나는 알아줘야 할 것 같아서, 다른 이에게 말할 수 없지만 스스로는 보듬어줘야 할 것 같아서, 본의 아니게 떠오르고 드러난 그때의 나를 외면하지 않는다.




한때는 어떻게 해서든 한 사람을 망가뜨리고 싶었다. 그를 망가뜨릴 수 없다면 나 자신을 파괴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겁쟁이이자 지나치게 마음 약한 평화주의자였기에 내 마음을 다치고 그걸 참아내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다행히도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가 바라던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바람이었는지. 누군가를 증오하고 복수를 꿈꾸다 보면 어느새 그를 닮게 된다. 어떠한 일이 닥칠 때마다 그와 똑같이 반응하고 그가 했던 말이 내 입에서 나올 때마다 절망스러웠다. 정말 나 자신이 파괴되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사랑하는 이에게 들켰을 때는 진부한 표현이지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몸은 벗어났으나 마음은 벗어나지 못했던 시간 동안 나는 나만의 삶을 살기 위해 부단히 애써야 했다.




며칠 전 신랑과 대화를 나누다가 돌아가고 싶은 순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예전에도 시간여행에 대한 책이나 영화를 보며 몇 번 생각했지만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단 하나도 없었다. 지금도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없다. 하지만 조금 변한 것이 있다. 어떤 때로든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할 때마다 당시의 상황 역시 힘겨웠지만 지금은 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날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외롭거나 힘이 들 때 신호를 보낸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신호를 알아차리고 그들의 필요를 할 수 있는 만큼 채워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럴 수 있을까.

증오로 가득 찼다가 나를 사랑하는 법을 몰라 허우적거리다가 "행복해", "사랑해"라는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오늘을 살고 있으니 희망이 있다고 믿고 싶다. 여전히 헛헛한 마음을 안고서 위로가 되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고 있지만 어떻게든 삶은 살아지고 조금씩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나의 글도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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