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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이쓰 Jun 04. 2022

덮어둔 슬픔

인생은 원래 그런 거야.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눈물이 가득 차올라 펑펑 쏟아져 나오는데 눈을 떴다. 꿈에서 울다가 잠이 깬 나는 정말로 울고 있었다. 눈시울이 뜨거웠던 건 실제 감각이었다.


 10분을 넘게 꺼이꺼이 울었다. 돌아가신 이모부가 꿈에 나왔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지 7~8년이 되었지만 꿈에 나온 건 처음이었다. 몇 달 전 역시 돌아가신 지 7년 된 작은 이모가 처음으로 꿈에 나왔다. 그때는 살아계신 큰이모가 작은이모와 함께 있어, 눈을 뜨자마자 큰이모께 안부 전화를 드렸었다. 그리고 오늘은 무엇 때문인지 한참을 울었다.


 어릴 때부터 추억보다는 힘든 기억이 많아 잊으려고 애썼더니 어린 시절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나이가 들어서도 힘들었던 당시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부산에서 제주로 살러 오기 전, 2014년부터 2016년 초까지 약 2년 동안 할아버지와 큰외삼촌, 큰이모부와 작은이모가 돌아가셨다. 작은이모가 돌아가신 지 한 달여 만에 제주에 온 건 알지만, 할아버지와 큰외삼촌과 큰이모부가 돌아가신 순서는 잘 모르겠다. 할아버지는 한 번도 할아버지라고 불러본 적이 없을 만큼 남보다 못 한 사람이었고, 큰외삼촌은 친근하진 않아도 말없이 챙겨주는 분이었다. 큰이모부와 작은이모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어른들이었다. 이모부가 아빠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얼마나 많은지 이루 말할 수 없고, 작은이모는 마냥 예쁘고 좋았으니까.


 엄마는 5남매 중 넷째 딸이다. 5남매 중 둘째인 큰이모와 엄마를 제외하고 모두 세상을 떠났다. 요즘은 환갑잔치의 의미가 무색해져 버렸지만, 엄마의 형제자매 세 사람 중 두 사람은 무엇이 그리 바쁜지 육십을 채 넘기지 못했다. 큰외삼촌은 70을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작은이모와 그보다 먼저 돌아가신 작은 외삼촌은 50대였다. 그중에서도 작은이모는 형제자매 중 막내여서 엄마의 상심이 더 컸다. 엄마의 상심이 클수록 나의 상심도 커져서 그런 엄마를 보는 것조차 힘에 부쳤다.


 남은 두 자매는 서로를 깊이 의지할 수밖에 없다. 엄마도, 큰이모도 같이 오래오래 사셔야 할 텐데. 노파심에 자주 전화를 드린다. 나는 제주, 엄마는 부산, 큰이모는 강원도. 모두 뚝뚝 떨어져 있으니 더욱 그렇다.


 어릴 때 형편이 안 좋아 외가 식구들이 모두 있는 강원도에 3~4년에 한 번 겨우 다녀올 수 있었는데, 1년이 채 안 되어 여러 번 만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큰외삼촌은 심장마비로 어느 더운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났지만, 다른 두 분은 돌아가시기 전 위독할 때 두어 번씩 더 다녀왔으니까. 살이 모두 빠지고 숨만 겨우 붙어 있는 사랑하는 이들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오히려 눈을 감는 것이 낫겠다 싶을 만큼 아프고 괴로워 보였다.


 애정이 얼마큼 있든 아예 없든, 네 사람의 잇따른 부고 소식은 힘든 일이었다. 2016년 봄, 제주로 독립한 후 자유를 외치며 사방을 돌아다닐 때도 마음 한구석은 슬펐다. 잊으려 할수록 더 마음이 아파서 한동안은 세상을 떠난 이들,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글을 많이 썼다. 누구도 알 수 없는 마지막이 닥칠 때 후회하지 않도록 오늘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치열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글로 비워내고 비워내다가 어느 순간 괜찮아졌다고 믿었다.


 일상에서 지배적으로 뇌리에 박혀있던 시기를 지나, 티브이 드라마나 친구의 일로 친척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 가끔 생각나는 정도로. 이제는 눈물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정도로 괜찮아졌다고 생각했건만. 이 아침엔 쉽사리 진정되지 않는다. 꿈에서 분명 큰 이모가 계신 곳으로 인사를 갔는데 그 자리에 큰이모부가 계셔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더욱 놀란 걸까. 오랜만에 만난 이모부는 활짝 웃고 계셨는데, 나는 놀라고 울기만 할 뿐 같이 웃어드리지 못한 채로 잠이 깨서일까. 어쩌면 그저 곱게 덮어둔 슬픔 위로 바람이 불어, 지나온 시간을 걷어내 준 것이리라.


 울음을 멈추지 못하는 나에게 다음에 만날 땐 로또 번호를 꼭 물어보라는 남편이 곁에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장례식장에서 밥만 잘 먹는 나 자신이 미울 때 인생이 원래 그런 거라며 같이 먹자고 말해준 이가 있었는데. 누군지 기억은 안 나지만 참 고마웠다. 그때나 지금이나 옆에 있는 사람 때문에 다시 웃을 수 있으니, 인생은 원래 그런 거고 주어진 오늘은 언제나 고마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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