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아도_15화

by 무우지렁이

※ 공모전 출품을 목표로 집필 중에 있습니다. 중간중간 편집/보완되며 내용이 수정될 수 있습니다.


"사장님!!"

"오랜만이구나. 잘 지냈니?"


유리에게는 사장님의 목소리가 그간의 고생을 토닥여주는 듯했다.


"네가 올 줄은 몰랐어서 오늘은 식사 준비가 조금은 늦겠구나."


사장님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치이이이익.'


유리가 옷을 걸고 식탁에 앉는데, 주방에서 무언가 튀기는 소리가 난다.


"오늘은 뭐 만드세요?"

"돈가스 정식. 혼자였다면 돈가스만 대충 튀겨서 먹으려 했는데 말이야. 유리가 왔으니 정식으로 메뉴 조정을 좀 해야겠어."


유리는 요리하시는 사장님의 뒷모습을 보며 어제의 대화를 곱씹었다.


'세상 속의 부품 하나가 아니라, 윤택하게 만드는 사람....'


그러고 보니 치킨집 사장님이 유리에게 딱 그런 사람이었다. 본업으로 유리가 가장 좋아하는 치킨을 만드시는 분이시고, 이렇게 유리가 힘든 때에 식사와 일거리를 제공은 물론이고 대화 상대도 해주시는 사람.


"고마우신 분...."

"응?"


유리의 중얼거림과 함께 눈앞에 커다란 치킨 접시가 놓였다.


접시 위에는 양념치킨 소스가 뿌려진 바삭하게 튀겨진 돈가스와 밥공기를 엎어 나름 동그랗게 만든 밥과 치킨 샐러드가 있다.


"방금 뭐라고 하지 않았니?"

"아, 사장님. 감사합니다!"

"그래, 그래. 맛있으면 좋겠구나."


조금은 어긋난 대화였지만, 아무튼 자연스러운 대화였다.


유리는 포크와 나이프로 바삭한 돈가스를 썰어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말했다.


"사장님, 사장님. 저 이번에 부품조립 아르바이트 하면서 별거 아니지만 뭔가 배워왔어요."

"생활의 지혜 같은 거 말하는 거니?"


유리의 말에 사장님께서 질문하셨다.


"지혜라면 지혜 같아요. 우선, 단순 조립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었어요.


부끄럽지만 사실 되게 무시하던 일이었어요. 누구나 할 수 있고, 저도 처음부터 오래 일하신 분들만큼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오만했어요. 첫날에 손이 너무 느려서 얼마나 민망했는지 몰라요. 근무 기간이 다 끝날 즈음에도 결국 오래 일하신 분들의 속도를 완전 따라잡지는 못했어요.


이번 일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일을 무시하지 말아야겠다.' 다짐했어요."


"멋진 걸? 엄청난 것을 배워왔구나!"


유리의 말에 사장님께서 박수를 쳐주셨다. 유리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공장 일을 하고 있으니까, 제가 꼭 공장의 부품이 된 기분이 들더라고요. 하루 종일 똑같은 일만 반복하고 있다 보니, 제가 공장 일을 넘어, 세상 속의 부품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는 굳이 왜 사는 걸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런, 위험한 생각을 했구나."


유리의 말에 사장님께서 먹던 수저를 놓으시고 근심 어린 시선으로 대화를 들어주셨다.


"그런가요? 하긴. 그렇게 생각되니까 엄청 우울해지더라고요. 그런데 일하시는 분들께서 '우리는 세상을 윤택하게 하는 데에 일조하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프레임이 바뀌니까 갑자기 없던 자존감도 생기고 신기하더라고요.


그래서 두 번째로, '모든 사람들은 세상을 윤택하게 만드는 데에 일조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배워왔어요."

"좋은 말을 듣고 왔구나. 맞는 말이기도 하고."


사장님께서 미소 지으셨다.


"그리고 제게는 사장님이 '저의 세상을 윤택하게 만들어주시는 분'이세요."


수줍은 유리의 말에 사장님의 마음에도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그런데 갑자기 유리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왜, 왜 그러니?"


갑자기 눈물을 보이는 유리를 보며 당황한 사장님이 급하게 티슈를 꺼내 유리의 앞에 놓아줬다. 유리는 티슈로 눈물을 찍어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사장님. 사실 제가 오늘도 알아보고 왔는데요. 답이 없어요."

"차근차근 말해보렴."


사장님의 말씀에 마음이 놓인 유리는 말을 하며 점점 감정에 북받쳐 결국에는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말했다.


"지금 이사 준비도 마쳤는데요. 원래 살고 있던 집의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것 같아요.


일단 오늘 '내용증명'을 발송하긴 했는데요. 돌려받을 가능성이 희박하더라고요. 저는 세상을 윤택하게 만들기 위해 '전세금을 떼이는 역할'을 하는 사람인가 생각 들어요."


말을 마친 유리는 눈물을 닦으며 끅끅 울었다. 사장님께서 유리의 등을 토닥이며 말씀해 주셨다.


"뭐라고? 그런 말이 어디 있니. 그리고 그런 일이 있으면 진작에 말을 했어야지. 내 아는 변호사 중에 도움이 될만한 변호사를 찾아볼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오늘은 밥 먹고 집에 들어가서 좀 쉬거라.


그동안 쉬지도 못하고 혼자서 얼마나 고생이 많았니."


사장님의 따뜻한 말씀에 유리는 마음속의 무언가가 '탁' 놓이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목놓아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그래, 그래. 울고 싶을 때에는 울어야지. 괜찮다. 괜찮아."


사장님의 따스한 손길이 유리의 등을 쓰다듬었다. 유리의 마음속 슬픔이 최대한 많이 씻겨 내려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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