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나를 알면 못난 나도 품어줄 수 있다

by 무우지렁이

4월부터 수강 중인 숲해설가 수업은 참석만 할 수 있다면 너무 좋은 수업이다. 공부가 아니라 산으로, 공원으로 놀러 다니는 기분이다. 선생님께 식물의 명칭과 특징, 쓰임부터 다양한 과학적 지식과 설화, 역사, 심지어 철학 등 재미있는 이야기까지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저 많은 것들을 어떻게 외우신 거지..' 싶어지면서 나는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체력이 없는 내게 회당 3시간씩 걸리는 산행과 공원 탐방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총 12주라는 수업 기간은 생각보다 꽤 긴 시간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학습관 근처에 있는 산 위주로 다니던 수업은 부산 전 지역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한편, 대부분의 수업과 마찬가지로 이 수업도 수료증을 받으려면 80% 이상의 출석률을 달성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횟수로 환산하면 2번은 수업에 빠져도 수료가 가능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수료증을 목표로 수업에 임했던 나는 이 사실을 적극 활용했다.


그렇게 '너무 멀어서', '비가 와서'라는 핑계로 2번의 기회를 아낌없이 사용해 버렸다. 이제라도 모든 수업에 열심히 임해야 한다. 하지만 바로 다음 회차에 '늦잠을 자는 바람에' 한 번 더 불참하게 되었고, 수료증은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수업을 듣는 가장 큰 목적이 사라졌다. 그때부터 이런저런 핑계로 수업에 더 쉽게 불참했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 또 '비가 와서', '그냥 가기 싫어서' 등등. 그렇게 수업을 아예 포기하려 했다. 하지만 수업마다 학습매니저 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늦어도 괜찮으니 올 수 있으면 언제든지 오라고.


처음에는 귀찮았다. 그냥 내버려두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계속된 챙김에 죄송해지기 시작했다. 늦더라도 일단 수업에 참여는 하기로 노선을 변경했다. 너무 컨디션이 좋지 않아 조퇴하는 한이 있어도 일단 얼굴은 비추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수업을 따라갔다.


마지막 야외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다짜고짜 학습매니저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전했다. 덕분에 좋은 수업을 조금이라도 더 들을 수 있었다고.


그 말을 듣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본 첫날부터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아 신경 써줘야겠다고 생각하셨다고, 내게서 선생님께서 수업 가시는 복지시설의 지적 장애인분들과 비슷한 느낌을 받으셨다고 말이다. 그리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적 장애인분들의 일상을 상세히 말씀해 주셨다. 동공이 흔들렸다.


기분은 나빴지만 '특이하다', '멍청하게 생겼다' 등의 말들을 종종 들었던 터라 이제는 받아들여야 할 때도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때 선생님께서 말씀을 이으셨다. 내게서도 지적 장애인분들의 순수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이다. 좋은 의도로 하신 말씀 것은 알지만 그래도 지적 장애인분들과 비슷한 느낌이라니. 침울해졌다.


'내가 그렇게 심각해 보였다고? 난 역시 손이 많이 가는, 결국 1인분의 사람은 될 수 없는 건가.'


잊고 있던, 외면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죽어버리고 싶은 욕구가 고개를 치켜들었다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나도 쓸모가 있다는 사실을 안 덕분에. '어딘가 일반적이지 않은, 1인분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나라는 이 불편한 진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잘난 나를 알게 되면서 못난 나도 품어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못난 나만을 알고 있던 때에는 항상 죽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좀 더 살아있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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