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등가교환의 법칙으로 돌아간다. 나는 세상에게 돈을 원한다. 협상 테이블에 앉은 세상이 내게 물었다.
'좋아. 당신은 내게 돈을 원해. 그렇다면 이 협상을 위해 당신은 무엇을 준비해 왔지?'
말문이 막혔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투자를 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알면서도 여태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고 나의 요건이 부족하다면, 도전해야 했고 투자하고 노력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항상 불평불만만 일삼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당장 내가 원하는 것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치며 세월만 축내고 있었다.
먹고살기 급급해 준비할 시간과 돈이 없었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사정이지 그들이 고려할 문제는 아니었다.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있는 나의 것에 상응하는 만큼 돈을 벌 수 있는데, 세상이 원하는 것 중에 내가 가진 것이 없다.
일을 하면서 배운다는 말도 업무를 하기 위한 기본적인 준비가 된 사람들이 일을 하며 성장한다는 뜻이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회사가 돈까지 줘가면서 가르쳐 준다는 말은 아니니까. 회사는 학교와 부모님의 역할을 하는 곳이 아니고 나는 밥값을 해야 한다.
이제 와 후회됐다. 돌이켜보니 준비할 돈은 항상 없었을지언정 시간은 충분했다. 그 많은 시간 동안 불안에 떨고 초조해하기만 하고 준비하지 않은 탓으로 이렇게 벌을 받는 모양이다.
구직만 하고 있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구직과 동시에 취업에 도움이 되는 자격증 공부라도 하고 있어야 했다. 거리에 나앉지 않고 굶지 않을 최소한의 요건만 챙겨두고 배팅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배팅하기보다는 있는 돈을 끌어안고 가만히 앉아 아껴 써가며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아사 직전까지 왔다.
이판사판이다. 가만히 있다가 굶어 죽거나 뭐라도 해보다가 죽거나. 돈을 끌어안고 그냥 쓰고만 있으면 100% 확률로 굶어 죽는다. 배팅한다면, 도전한다면 하루라도 더 살 수도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불안에 떨며 엄습하는 죽음을 기다리느니 뭐라도 해보고 죽는 편이 낫다.
'그때 할걸….' 후회만 하며 시간을 보내는 짓은 과거의 반복일 뿐이다. 후회가 된다면 또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보면 된다.
그러고 보니 요즘 나라에서 해주는 다양한 원데이클래스 참여를 통해 손재주와 손으로 이것저것 만드는 행위의 즐거움도 기억났다.
'캘리랑 이거저거 소품이나 악세사리를 몇 개 만들어서 팔면서 돈 벌 수 있으면 진짜 좋겠다.'
다시 창업 생각이 슬금슬금 올라왔다. 하지만 이제는 예전의 몸이 아니다. 공장을 다니며 많이 상한 손목으로 대량생산은 무리다. 정신 차려야 한다. 하지만 이미 만들기 관련 창업으로 틀어진 마음은 어떻게든 관련 일을 찾아보려고 노력했다.
'대량생산이 힘들고 적성에 맞지 않다면, 만들기 원데이클래스는 어떨까?'
하지만 이쪽도 역시 아닌 것 같다. 몇 명이나 와줄지 모르는 수강생을 위해 재료비를 미리 사놓는 것부터가 자원 낭비 같고, 자기표현을 하고 싶지 교육자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역시 예술인데 자꾸 먹고살기 어려운 일에만 욕심이 난다. 좀 더 생각해 봐야겠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다가 문득 하고 싶은 일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태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하고 싶은 일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돈이 될 만한 일 중에 하고 싶은 일이 없는 것이었다.
엄청난 폭염에 침대에 널려 반건조 오징어가 되고 있는 8월 중순, 웹소설 모임장님께서 예술교육 아카데미 수강생 홍보 포스터를 공유해 주셨다.
예술교육 아카데미? 세부 과정을 보니 예비 인력과 전문가 아카데미를 운영한다. 문화예술 강사가 정확히 어떤 것을 가르치는 강사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아카데미 소개를 보니 관련 학과 졸업생이 아니더라도 이 아카데미를 수강한다면 문화예술 강사로 활동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경험한 다양한 원데이 클래스를 통해 내가 손재주도 있는 편이고 창의력도 있는 편이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 그러고 보니 대학 시절 초등학교 경제 교육 봉사활동이 재밌었던 경험도 생각이 났다. 사람들과 체험형 프로그램을 하며 어울리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가가 아니면 어떠한가. 예술 강사도 괜찮을 것 같다. 어쨌든 예술 관련이고 강사 일도 나쁘지 않다. 게다가 관심 있는 일 관련으로 돈도 벌 수도 있다.
심지어 수강 특전으로 기획 발표에는 상금도 걸려있다. 수상을 한다면 상금으로 당장의 생계에 숨통이 트일 수도 있다. 커리큘럼을 훑어보니 예비 인력 아카데미에서 시장 진입 관련 수업을 할 것 같고 전문가 아카데미에서 업그레이드를 위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예비 인력 아카데미의 기획서 작성 실습이 궁금하다.
'이거다!!'
수강 신청을 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일정과 장소를 확인했다. 커리큘럼은 무난해 보였는데 여기서 조금 난감해졌다. 무려 2달이나 소요되는 데다가 수업 요일도 시간도 장소도 완전 제멋대로인 것이 아닌가.
주중 저녁 6시에 외진 곳에서의 수업이 대부분이지만 주말 수업도 있고 주중 낮 수업도 있다. 수업을 듣는다면 수강 중에 구직에 성공할 경우, 취업과 교육을 저울질해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두 수업에 모두 수강 신청을 했다. 배팅을 해봐야 한다. 수입과 직결되어 있으니까. 그렇게 세상과의 협상 테이블에 내놓을 요건을 맞추기 위해 2개월을 온전히 투자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