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모전 출품을 목표로 집필 중에 있습니다. 중간중간 편집/보완되며 내용이 수정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작고 예쁜 수첩에 할 일 목록을 적는다.
삼시세끼 잘 챙겨 먹기.
산책 다녀오기.
집안일 (약간이라도).
항상 적는 목록이다. 평일인지 주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직장을 다니고 있지 않는 데다가 직장을 구할 생각도 없기 때문이다.
기분이 처지지 않기 위해 매일 삼시 세끼를 잘 챙겨 먹으려 노력 중이지만 실상은 하루 2끼를 배달음식과 레토로트 식품으로 때우면 다행이다.
하루 한 번 산책도 나가려 목표는 잡지만 일주일에 3일 정도만 나가도 다행이다.
하지만 괜찮다. 모름지기 계획이란 어기라고 있는 것이니까.
아차, 할 일 목록에 한 가지를 추가해야 한다. 펜을 들어 목록의 제일 끝단에 휘갈긴 후 동그라미와 별표를 쳤다.
'새 집 알아보기'.
오랜 백수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간의 성실함이었다.
회사를 다니며 전셋집을 구했고, 전셋집이 구해지고 돈을 모으는 속도가 빨라졌다. 이대로 열심히 버티면 한 20년 후에는 작으나마 내 집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인생은 언제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잘 다니고 있던 직장은 갑자기 내게 해고 통지를 했다. 사유는 업무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5년이나 다녔는데 이제 와서 업무 능력이 부족하다는 말은 어느 나라 말일까?'
어이가 없었지만 퇴직금과 함께 구직급여를 약속해 주셨기에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그렇게 일을 하지 않고 지낸 기간이 어언 2년이다. 그동안 모아놨던 돈은 모두 떨어졌고, 다시 일을 하기도 두렵다.일은 하기 싫은데 돈은 구해야 한다.
수중에서 돈이 나올만한 구멍을 찾아야 한다. 마침 만기가 다가오는 전세자금으로 눈길이 갔다.
'전세에서 월세로 이사하면 최소한 2년은 더 쉴 수 있잖아?'
집주인에게 이번 계약 만기에 맞춰 집을 나가겠다고 통보했다. 이제 집을 알아봐야 하는데 막상 움직이려니 쉽지 않다. '당장 급한 일도 아니니까.' 그렇게 또 미적였다.
그리고 오늘, 벌써 10월이다. 전세 만기까지 남은 기간은 이제 약 세 달. 며칠 뒹굴거리며 머릿속으로 계산해 보니 시간이 많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은 참이었다.
'집도 알아봐야 하고 이사 업체도 알아봐야 하네. 너무 오랜만에 이사하려다 보니 깜빡했잖아?'
부랴부랴 부동산에 연락해 당장 볼 수 있는 집을 몇 군데 알아봤다.
"이 집은 어떠세요?"
부동산 중개인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물었다. 나는 집 안을 대충 둘러보며 물었다.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보증금이랑 월세는 얼마나 되나요?"
"천에 65만 원입니다."
'으에에엑.' 속으로 소리를 한 번 지른 후, 침착한 척 대답했다.
"음, 비슷한 조건에 조금 더 저렴한 집은 없을까요? 예를 들면 보증금 5백에 40 정도 되는 집이요."
"손님, 그건 비슷한 조건이 아닌데요. 일단 말씀하신 조건에 맞는 다른 집을 보여드릴게요."
그렇게 부동산 중개인의 차를 타고 다음 집을 보기 위해 이동했다.
"이 집입니다. 5백에 45에요."
중개인은 이제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 집을 본 나는 입이 떡 벌어졌다. 집의 평수는 먼저 본 집보다 절반이나 작아 보였고, 너무나도 노후되어 보인다. 돈은 절반이 아닌데 집의 평수는 절반이고 컨디션은 절반 이하다.
"혹시 다른 집은...."
말끝을 흐리는 내게 중개인은 한숨을 한 번 쉰 후, 어딘가에 전화를 걸더니 다른 집을 보여줬다. 이전의 집보다 컨디션은 조금 나아 보이지만 더 작은 집이다. 도대체 집은 어디까지 소멸할 수 있는 걸까. 그때 중개인이 말했다.
"이 가격에 이 집이 최선이에요. 금액은 방금이랑 같아요."
집이 마음에 들면 조건이 비싸고, 조건이 저렴하면 사람이 살 수가 없는 집으로 보인다. 그렇게 사람이 살만한 최소한의 환경이자 그나마 가장 저렴한 집인 마지막 집으로 계약서에 싸인을 했다. 이사 날짜는 전세 만기날이다.
좋다. 이렇게 또 하나의 큰 산을 넘겼다. 이제 남은 일은 이사 업체를 정하는 것과 날짜에 맞춰 이삿짐 싸기 뿐이다.